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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08. 2024

‘미친년’으로 시작하여!

즉각 대응이 가장 효율적 대응일 때가 있다.

시골살이하면서 매해 새로운 풀의 이름을 배운다.

늘 보던 식물의 이름을 새롭게 아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는데 작년에 배운 풀의 이름은 ‘미친년’이라고 했다. 넝쿨식물인데 줄기에 가시가 돋아 있어서 만질 때도 따갑고 뽑아서 마른 뒤에도 가시가 날카로워서 아이들에게 위험하여 보이는 족족 제거한다고 했는데 정말 미친 듯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

(글을 쓰려고 검색을 해 봤는데 미친년이라는 풀은 없고 며느리밑씻개 거나 며느리배꼽이라는 이름의 풀과 비슷한데 정확하게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미친년으로 알게 되었을까는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강렬한 이름이라 원래 이름을 알아도 이만큼 기억하긴 어려울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전에는 모르던 풀이니 보이지 않다가 이름을 알고 나니 보이는 걸 고려해도 작년에 놓쳤던 그 몇 개의 풀이 수백 개의 씨앗을 퍼뜨린 듯 여기저기 새초롬하게 올라와 있다. 이놈이 크면 얼마나 독한 놈이 될 줄 알기에 크기 전에 제거하리라 마음을 먹어서 시작했는데 장장 3박 4일간 풀이 난 곳을 제거했다. 

 여리디 여린 새순 ‘미친년’을 제거하기 위해 몇 년간 묵혀두었던 나무들을 다 들어내서 톱질하여 정리하고 작년에 모아 두었던 천 개 넘는 옥수숫대도 일일이 잘라서 정리했다. 신랑은 옆에서 올해 먹을 모종 심느라 바쁜 와중에 나는 '미친년'과의 싸움에 돌입하고 있으니 내 모습도 정상은 아니구먼. 하면서 전투적으로 뽑아버렸다. 환삼덩굴도 같은 가시덩굴풀인데 낮게 뻗으며 자라서 발목이나 종아리에 쓸리는 상처를 만드는 녀석이다. 이 녀석도 같이 제거한다. 그런데 뽑다 보니 너무나 허무하게 뽑힌다. 이 녀석들이 크면 잘 잡기도 어렵고 상처도 주는 가시 짱짱한 녀석들인데 새순 상태의 녀석들은 그저 엄지와 검지로만 잡아도 너무나 부끄럽다는 듯이 뿌리까지 뽑혀버리는 쾌감을 선사해 준다. 몇백 개가 넘는 새순들을 무념무상으로 뽑다 보니 아 어쩜 독하다 생각한 것들도 처음부터 독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미처 커버리기 전에, 더 독해지기 전에 제거한다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데 악을 키우고, 미움을 키우고, 원망을 키우다가 정말 독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쑥은 아무리 새싹이어도 뿌리줄기로 연결되어 자라기 때문에 하나만 뽑아버리기가 여간 어렵다. 질경이 새순도 뿌리가 짧지만 뻣뻣해서 땅이 부드럽지 않다면 손으로 뽑기도 어렵고. 그런데 자라면 맨손으로는 잡지도 못하는 이 가시풀들이 어릴 때는 너무나도 손쉽게 뽑혀버리니 내 주변의 독한 사람들을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둔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널 미친년으로 만든 것에 내가 일조했을 수도 있어. 미안해!

날 미친년으로 만든 것도 내 몫이 크다. 반성하자!


'미친년'을 뽑다가 미친년에 관한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많이 있다면 내가 그들에게 물 주고 영양분 듬뿍 줘서 키워버린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주고 있던 물과 영양소는 단칼에 없애야겠다고 다짐한다. 뽑은 지 10분도 안 돼서 봄볕에 말라 버리는 이 보잘것없는 풀들을 보며 기껏 3박 4일간 내가 없애버린 불행의 씨앗들을 세어보며 조금은 행복해진다. 덕분에 2평 남짓한 깨끗한 공간도 덤으로 얻었다. 

텃밭 땅이 넓은데도 막상 화로를 만들 곳이 마땅치 않아 맘속에만 소원으로 담아 두었는데 (매년 갈아버리는 밭이므로 트랙터의 이동구간을 피한 땅이어야 화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상황) '미친년' 풀 덕분에 방치해 둬서 모르고 있던 땅을 발견해 냈다. 화로를 만들기 딱 좋은 크기다. 


 그래 그런 사람들을 정리해야 내가 잘 지낼 사람들을, 내가 숨 쉴 정서적 여유공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연락처 목록에서, 카톡 대화방에서 삭제와 조용히 빠져나오기 기술을 사용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가시풀들이 알려준 팁 - 크기 전에 제거하기, 오해 키우지 않기! 발견했을 때 바로 대처한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대처가 가능함. 풀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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