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귀성은 모든 게 '역'인가?
어쩌면 모든 것이 편견일지 모르겠다.
나는 면소재지에 귀촌했다.
시부모님은 전라도 광주 도심 한복판 역세권 아파트에 사신다.
5년 전 도심 빌라에서 이리로 이사오자마자 시어머님은 나에게 제사를 넘기셨다.
제사를 내가 차리게 되니 시부모님께서 명절이나 제사 즈음에 역귀성을 하시는데 단순히 이동하시는 것만 역으로 되신 게 아니라 마음도 그렇게 되는 듯하다.
내가 생각했던 시댁은 시골에 (나는 그 당시에 서울시민이었음) 있는 굉장히 시골스러울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아파트 생활을 몇십 년 이상 하신 우리 시부모님과는 전혀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이것도 나의 편견.
매번 되돌아가시는 길에 가지고 가고 싶으신 게 많은 우리 어머님께서는 꾸역꾸역 케리어에 넣느라 바쁘시고 캐리어를 끌고 가시는 아버님은 귀찮은데 뭘 챙겨가냐고 내버려 두라고 싸우시는 게 명절풍경.
바리바리 챙겨주시는 시부모님과 안 챙겨간다고 싸우는 자식들의 모습을 상상하던 나는 이 또한 내 편견이었구나 생각했다.
매번 오실 때마다 그러시니 이번에 올라오실 때는 케리어를 좀 큰 걸(그전에는 기내반입용으로 가지고 오심) 가져오셔서 들고 가시라고 그래야 뭐라도 넉넉히 가져가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는데 그다지 호응이 없으셔서 그리 말한 걸 까먹었다. 원하시던 화장품 세트도 박스채 가져가면 짐이 많아 박스는 빼서 챙기시고 추석 아침까지도 별말씀이 없으시더니 가시기 전 지나가듯 한마디 하신다.
"네가 뭐 많이 가져가래서 큰 가방 가져왔는데 뭐 별게 없네"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식사를 앞두고 저 문장은 나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아.. 그러셨어요? 가져가실 수만 있으면 감자, 고구마, 땅콩, 양파 필요한 거 다 챙겨드릴게요."
어머님 새끼손가락 하나 보태지 않은 추석 차례상을 차려두고 나는 부지런히 하우스며 저장고며 들락날락 어머님이 원하시는 품목으로 봉지봉지 싸 드렸다.
거기에 붙이는 어머님의 한 말씀!
" 그 들기름 한병 있다며! 나 그것도 다오!"
화물용 케리어에 땅콩, 양파, 감자, 고구마, 흑마늘 만들어서 락앤락 2통 거기에 들기름 한병 추가!
케리어의 사이즈를 늘려서 꽉꽉 담았는데... 자꾸 차례상에 올린 과자가 맛있다고 하시길래.
어떤 맛이 가장 좋으시냐고 물으니 미니 꽈배기가 맛나다고 하셔서 꽈배기 남은 한봉투 모두 싸서 케리어에 백팩에까지 모두 꽉꽉 채우시고 그제사 아버님을 재촉하신다.
"어서 갑시다!"
그저 웃음이 난다. 정겨울 시골풍경, 도시 사는 자녀, 싸 주시는 어머님의 모습 그런 것도 다 내 편견이었다.
도시 사는 어머님은 시골 사는 우리 집에 와서 매번 뭔가 가져갈 거 없나 딸이 친정에서 하듯 둘러보고 챙겨가신다. 귀성만 역귀성이 아니고 역할도 어머님이 딸 같다. 매번 뭔가 자꾸 달라하시고 나는 매번 싸주고.
지나가시면서 잡초 한 포기 뽑지 않으시는데 가져가야 할 건 너무 많고 해야 할 말씀도 많으시다.
"피는 씨가 떨어지면 못쓴다. 가서 가새로 툭툭 잘러!"
어머님 ~~ 저희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고요. 논이 뻘이라서 발은 푹푹 빠지지 벼 안 건드리면서 움직이려면 어렵지 대체 농사를 지어보신 건지? 듣기만 하신 건지? 차라리 말 보태지 말고 가져가기만 하시면 안 될까요?
길고 긴 말들이 입 속에서만 맴돈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 무관하게... 결론은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거다. 내가 줄 수 있는 환경임에 감사하자 마음먹는다.
내가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