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13화 2024년7월18일 폭우 속 치즈돈까스와 예기치 못한 송별회 1

by MAMA


“혜성쌤! 이제 정말 못 보는거야?”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고 있는 패전병의 느낌이랄까. 사직서를 내고 관둘 사람이 가타부타 말해서 무엇할까. 사직서를 냈는데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아이들의 한 끼를 위해 저토록 죽을 힘을 다하는 이들을 놔두고 나만 도망치고 있는 비겁한 느낌때문에...


“아쉬워서 어쩌니?”


서운함. 온 몸의 피멍 자욱이 사라질 때 즈음 돼서야 일이 손에 붙기 시작했다. 집기며 기계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인지하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불안한 시선들에서 멀어져 몸과 손이 제법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견뎌 볼 것을...


조리장님께서 전보 신청을 하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첫째는 아마 나의 사직서가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조리장님은 이 학교 박힌 돌인 은숙 언니를 못 마땅히 여기셨다. 한 달 내내 나와 짝이 된 은숙언니를 타박하셨고, 덕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은숙언니로부터 조리장님에 대한 불평불만을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의 불협화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까닭이 없지만, 조리장님이라는 위치가 주는 영향 탓에 언니를 향한 질책은 다른 이들에게는 집단 따돌림의 합리적 근거였음은 분명했다.


조리장님이 암묵적 따돌림의 수장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인데 나란 사람이 그러한 다수의 분위기를 타지 못한 게 원인이 되었다. 난 은숙언니가 어떤 사람이었든 관심이 없었다. 이 일은 고되고 하루에 단 몇 시간이지만 무사안일로 갈무리한 저녁을 맞이함이 오직 나의 관심사였을뿐이었다. 분위기 상 은숙언니를 염오하는 다수의 무리에 흡수되었어야 했는데 그들의 새카만 의도는 알지만 안 그래도 바닥이 없을 만한 일인데 인격까지 낮아져서야 쓰겠나 싶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즉, 내가 냅다 사직서를 던진 날, 조리장님은 은숙언니를 염오하는 무리들에게 분풀이를 하셨다. 이 후로부터 조리장님과 그 무리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조리장님도 ‘장’이란 호칭이 사람을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의 자리라 착각을 하셨던 것 같다. 주방에서 무쇠 솥단지와 몸 집만한 집기들을 닦아 던지는 언니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뭐야? 전보신청 했대? 왜? 일이 힘들었나?”

“현주 선생님도 매일 하시는 일을 나이도 그보다 어리면서 뭐가 맨날 힘들대?”

“방학식때까지 병가 내시다가 그만 나오시겠지.”

“언니들 그래도 조리장님이신데...”

“조리장님은 무슨...그냥 조리사지. 조리장이 되려면 자격증이 몇 개나 있어야지. 그리고 조리장도 이런 식수에서는 조리사랑 같이 일을 해야지. 맨날 허리 아프다 어디 아프다 하면서 수저만 닦고, 바닥청소도 한 번 안 하셨잖아.”


조리장님은 언니들에게 버림받았다. 죽이 좋아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했던 때가 불과 한 두 달 전이었다. 하찮은 관계였다. 언니들은 날이 갈수록 조리장님을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졌고 급기야 조리장을 조리사로 강등하여 ‘조리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은숙언니를 몰아세우던 무리는 조리장님을 몰아쳤고, 업무량과 호칭등을 걸고 넘어지면서 그 관계는 어그러졌다. 급식실은 어떤 날 살얼음판 같았다.


“아니, 조리사한테 맡길 일이 있고 본인이 하실 일이 있지. 그 소스를 그렇게 만드시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마음대로 조리사들 일을 간섭하셔도 되는 거에요?”

“그렇게 짜게 하면 안 돼.”

“염도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혜진언니의 양념장에 조리장님이 손을 댔던 그 날부터 둘 사이 언성이 높아지고 땀샘도 긴장감도 폭발했다. 조리장님은 은숙언니의 외로운 자리를 대신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은숙언니는 해방되었다.

조리장님은 경력 14년 동안 여러 학교의 급식실에서 이러한 저러한 일들이 많았겠지만 일이 이쯤되고 보니 상사로서 본이 되지 못했던 일에 대한 현실자각을 하신 것 같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눈치를 받던 은숙언니는 그런 조리장님을 위로했다.


“조리장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요즘 말로 현타를 제대로 맞은 듯, 은숙언니의 위로에 풀이 죽은 듯 했다. 이러려고 낸 사직서가 아니었다. 나만 나가면 은숙 언니에 대한 절정을 찍던 미움도 수그러들텐데 하였던 의도였는데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 같았다.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은숙 언니를 몇 년동안 괴롭혔던 집단적 따돌림은 결국, 해체 위기를 맞았다. 내 사직서 때문에? 아니 내 사직서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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