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14화 2024년 7월 18일 폭우속 치즈돈까스와 예기치 못한 송별회 2

by MAMA


송별회라 하기엔 그 경력이 참으로 부끄러울만치 짧다. 송별회는 전보신청을 낸 조리장님이 하셔야 했다. 난 그저 명자 언니 말대로 “나쁜 기집애” 일 뿐인데... 너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죽을만큼 힘들어도 재미있는 일이라 여길 만큼 활기 넘치는 직장일거라 우기며 살아도 되는 그런 하루였을텐데....


조리장님의 제안으로 내 송별회가 급조되었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던 일들에 대한 미안함에 조리장님께서 송별회를 제안하셨고, 실무사들 모두 방학이 되기 전에 모이려면 유효한 날짜가 오늘뿐이라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심지어 명자 언니는 병가로 휴가를 낸 상황이었으나 꼭 나오라고 조리장님께서 말씀하셔서 언니한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어떡해! 얘들한테 문자 온 거 봐봐.”

“어머! 등교 못하겠는데?”

“등교하지 말라고 하네.”

“비가 많이 와서 굴다리 밑 다 잠겼네.”

“어머머머! 우리 아파트 1층 물 들어 오나봐요. 여기 사진 봐봐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 학교에서는 아무 말이 없잖아.”

“아이고! 우리 아들 학교 잘 갔나 몰라. 전화해봐야지.”

“응! 딸! 학교 도착 했어?”


폭우였다. 새벽 빗소리는 공포영화였다. 과연 출근을 할 수 있을까?

열린 베란다 창문을 새벽에 닫으면서 세찬 비바람에 휴교령을 바랐으나 바람과는 달리 퍼붓는 비를 뚫고 모두 출근을 했다. 휴게실은 난리가 났다. 송별회고 뭐고 집에 가야 할 판이었다. 집에 남아 홀로 등교 준비를 할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다들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 학교는 등교시간을 늦춰 주었고, 어느 학교는 일찌감치 휴교령을 내렸다. 그 때, 큰 딸에게 사진이 왔다. 등교 중에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버스 안으로 물이 차 오르는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재난 뉴스인 줄 알았다.


‘엄마! 나 죽는 거 아니겠지?’


그 사진을 보고 나니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회식은 취소될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등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곳곳에 물이 넘쳤다. 아무리 폭우라 해도 등교 못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8년동안 살던 동네에서는 말이다. 허나 지금, 아파트 앞 도로의 맨홀 뚜껑은 시도 때도 없이 물이 넘쳐 콸콸 솟구치기가 일쑤고 비만 오면 동네 곳곳의 지하도는 차단되었고, 안전문자는 계속 띵똥거리며 왔다.


“언니! 이 사진 좀 봐봐! 실시간이야. 지금.”

“지금? 이렇다고? 아파트 1층인데?”


타인의 집에 물이 넘치든 말든, 나의 걱정은 오로지 흙탕물에 둥둥 떠가는 버스를 탄 딸래미의 안전이었다. 8시 40분 즈음 되었을까. 천재지변에도 중학생들은 등교를 했다. 중학교에서는 방학을 앞두고 웬만해선 휴교령을 내리진 않는다. 학교에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의 문자가 속속 왔고, 급식실엔 평화가 찾아왔다. 어떤 학교는 급식실에 누수가 있어 업무를 종료했다고 하는데 그런 예기치 못한 행운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아! 천재지변 휴가라니!”

“부러워. 우리 학교는 어디 누수되는 곳이 없나?”

“없어요. 우리 학교는 튼튼하게 잘 지었나봐요. 하하하”




폭우에 불안감이 파도를 치던 휴게시간이 지나자 급식실은 다시 분주해졌다. 주찬팀에서는 굵고 뚱뚱한 치즈 돈까스와 오븐 앞에서 씨름을 했고, 오이지를 아주 맛깔스럽게 무쳐 보겠다 호언장담하던 미현이는 오이지 물을 빼느라 애를 먹었다. 심지어 국은 닭살 들깨국. 닭이 들어가는 음식치고 쉬운 게 없다. 닭을 삼고, 건져서 뼈를 바르고, 닭살을 찢고. 여하튼 오늘도 메뉴에는 자비가 없었다.


“난 이 바지 때문에 더 더운 것 같아. 버려야지. 기능성은 개나 줘버려.”

“개는 입겠냐?”


비가 와도 시원하지 않았다. 습기가 자욱히 내려 앉은 급식실. 땀과의 씨름은 이제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지만 싸워서 이겨 본 적이 없는 싸움엔 포기도 최선임을 깨달았더니 젖은 옷을 입고도 살만했다. 죽은 듯이 살만했다.


밭에 일하러 가면 늘 잡초와의 전쟁의 연속이었다. 어머님은 가족 먹거리를 재배하면서 무슨 제초제냐 밭이며 물이며 다 망가진다고 유기농을 고집하셨다. 덕분에 비온 뒤 잡초는 대나무숲을 이루었다. 겨우 한 달에 두 어 번, 시간을 내어 작물들을 돌보러 가면 주인의 발소리를 잊은 작물들은 잡초들에 뒤덮여 힘을 못쓰고 시름시름대었다. 남편은 풀하고 씨름하는 거 아니라 하였지만 저는 그 쓸데없는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예초기도 사고 낫으로 베고 호미로도 파보고 별의 별 수단을 썼다.


잡초들의 뿌리가 밭작물보다 더 튼실하고 깊었다. 작물들은 주인의 애지중지에도 불구하고 픽픽 쓰러지는데 잡초에게 의기소침이란 없다. 그래도 가을이란 녀석이 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나마 무서운 속도를 자랑하는 잡초의 폭풍 성장기는 주춤해진다.



급식실에서 땀과의 싸움은 그냥 잡초와의 싸움처럼 무의미할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진다. let it be



내일은 미현이와 주찬 담당이다. 세척실에 남아 끝없이 들어오는 식판과 바트들을 생각만해도 한숨부터 나오지만 앞선 걱정이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나 습기를 떨어트려 줄 수 없기에 심신을 상하게 하는 생각은 미리 하지말자 곱씹었다.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걱정스럽다 입으로 내뱉어버리는 순간 더 고통스럽고 더 짜증이 난다. 삼켜버리면 모기에 물린 가려움 정도의 그뿐인 통증이라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 사정이 겉 감정이 되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덥고 미칠 것 같이 포기하고 싶은 극한 직업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순간마다 모두 좋은 하루가 어디있단 말인가. 하루 하루 다크초콜릿과 같이 쓴 우여곡절과 모기 물린데처럼 근질근질 억누른 감정이 스멀스멀 넘어오는 그렇지만 그냥 참다보면 목구멍 어딘가 다 넘어가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어버리는 급식실. 딱 그 정도로 힘듦이란 두 글자를 지울 줄 아는 다스림이 필요했다.


“비가 다 그쳤네.”

“아침에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그러게 송별회 가야겠구만.”

“혜진언니! 오늘 치즈돈가스랑 오이지 그거 어디서 파는지 좀 알아봐봐.”

“영양사 선생님한테 물어봐야지.”

“치즈 돈가스가 정말 실하더라.”

“오이지가 더 맛있었어.”

“그런데 치즈돈가스가 잔반통에 얼마나 많았는 줄 아니?”

“너무 뚱뚱해서 얘들이 한 입만 먹고 다 버린 것 같아.”

“아이고! 아까워라.”


어느덧, 두시. 비는 그쳤다. 송별회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갈팡질팡 진흙 구덩이의 감정 싸움에 핑계치 못할 햇볕이 드리워졌다.



“혜성아! 어디야?”

“언니! 가고 있어요. 스타벅스 앞이에요?”

“응! 저번에 내려줬던 곳이야.”

“미안해요. 나 때문에 쉬는 날 나오게 하고”

“괜찮아. 오늘 어땠어?”

“오늘? 비오고 덥고 힘들었고 그렇지 뭐.”

“혜성아! 여기 여기”


명자 언니를 데리러 갔다. 폭우 때문에 송별회를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이지를 무치고 삶은 닭살을 찢는 동안 날은 게었다. 시원한 바람 한 오라기라도 불어 코의 숨구멍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적셔주면 좋겠지만 점점 화가 나는 듯한 날씨에 너그러움이 없다. 무자비했던 인간에게 되갚음이라도 하듯 매년 여름은 길어지는 것 같다. 지겨워진 여름날의 맑은 파란 하늘은 잔인해 보인다. 저 멀리 손 끝으로 가려보는 햇살은 눈부심이 아니라 살벌함이 느껴진다.


“언니 좀 쉬었어요?”

“그럼. 병원도 가고”

“검사 잘 받았어?”

“응.”

“고마워. 쉬는 날인데. 나는 송별회도 괜찮은데 언니한테 미안하게.”


월차로 쉬고 있던 언니를 태워 근처 보쌈집으로 갔다.


“아직 아무도 안왔나?”

“아니야. 저기 혜진언니 차 보이잖아.”

“어! 그러네.”


혜진언니와 조리장님의 관계는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리장님이 기독교인이라서 새벽기도를 다니시면서 충격으로 와 닿은 혜진언니와의 매일의 신경전에서 어른으로 감정을 추스르려고 하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는 예전같을 수 없었다. 단지,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둘은 서로 웃지도 않았고 전처럼 급식실 토속 반찬도 구경할 수 없었고 그렇게 그렇게 자꾸만 멀어졌다는 것. 사회 나와서 사귀게 된 직장 동료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들에 나는 마음을 보이지도 않았고 대화도 나누려하지 않았지만 삽질에 샤워까지 같이 하게 되는 매일의 일상은 감출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끔 군대 복무를 하고 있는 중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덮을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낯섬은 정이 되고 정은 애정이 되는 곳. 그래서 지금 조리장님과 헤진언니, 둘은 서로 서운한 중이다. 무척.


“혜성아! 일은 구하고 있어?”

“그냥 좀 보고 있어요.”

“무슨 일 하게? 저번처럼 병원가게?”

“생각 중이에요.”

“제빵 자격증도 있으니 그쪽으로 갈 수도 있겠네?”

“제 맘대로 되나요? 뽑아줘야 가죠.”

“없으면 다시 와.”

“네?”

“없으면 언제든지 와. 우린 네가 좋아.”


훅 들어오는 한방의 사랑 고백. 무슨 기승전 급식실. 이 말도 안되는 전개에 그저 나는 웃고 말았다. 언니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그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 한 켠의 작은 일분 일초의 평화. 기댈 곳이 필요한 그들에게 낯선이에 대한 걱정과 우려보다는 자신조차 돌볼 수 없는 급식실의 일에 그저 익숙한 동료들에 대한 의지가 늘 보험으로 있었으면 했던 .......


“고마워요. 잘 해주셔서.”



비는 또 한 방울 두 방울. 막걸리 두 어 잔에 젖은 언니들은 억지로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솔직했다. 나한테 그들은 동료였다. 그러나 내가 가는 그 날까지 은숙 언니는 그들의 따돌림거리였다. 그런데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다보니 나도 그 사람에게 싸늘해지고 있었다. 싫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는 거다.


“혜성아! 잘가! 내일 보자! 곧 못 보겠지만....”


술기 오른 혜진언니가 말 끝을 흐리며 웃는다.


떠남이란

보고픔의 시작

떠남이란

돌아봄의 시작

떠남이란

늘어진 고무줄을 당겨보듯 돌아갈 수 없는 탄성의 관계에 기대봄의 시작


그래서 떠남이란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라 돌아가지 않는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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