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급식실

12화 2024년 7월 15일 복날에 일 복 터진 삼계탕 2

by MAMA

"혜성아! 닭 왔다."

"네!"

냉동 탑차에서 내려지는 닭다리를 4m 정도 되는 대형 스테인리스 개수대에 받기 시작했다.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었다. 두 개의 개수대가 가득 찼고, 바로 포장을 뜯어 해동 준비에 돌입했다.



휴가 턱을 제대로 쏘았다. 온 몸과 정성을 다 하여...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삼계탕에 당첨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전처리가 끝나고 휴게시간 겨우 30분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었다. 이미 머릿속에는 허연 닭다리로 가득차있었다. 배식시간 전까지 산더미 같은 닭다리를 해결해야만 했다.


"혜성아! 쉬었다가 해.하하하"

"그걸 말이라고 해! 쉴 시간이 어딨어. 어여가!"


놀리는 시어머니 옆, 혜진 언니. 역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미현이뿐이다. 닭다리를 향한 애타는 마음에 구론산 한 병을 단숨에 들이키고 장화를 다시 신었다. 불순물 제거를 위해 1700개 닭다리를 물 속에 쏟아 부으니 솥단지 하나로는 버거웠다. 버얼건 핏기와 기름기가 철철 넘쳐 흘렀다.


"으! 기름기 좀 봐봐. 징그러워."

"언니! 뜰채!"


급식실에는 뜰채가 있다. 어부의 뜰채에는 활어들이 파닥거리지만 급식실 뜰채는 남다르다. 빨간 뜰채는 육고기용, 파란 뜰채는 해산물용, 녹색 뜰채는 야채용. 건져 올려지는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육고기용 뜰채는 사용 후, 뒷 손질이 번거롭다. 핏물 빠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건져 올리다 보면 기름기가 뜰채 사이사이에 껴 여간 빼기 힘든 일이 아니다.


"어유! 무거워!"

"언니! 거의 다 했어요."


닭다리를 몇 번이나 퍼 올렸는지 모른다. 깨끗한 물에 닭다리를 몇 번이나 씻었는 지 모른다. 다 씻어 건져 올린 녀석들의 잡내 제거를 위해 청주를 넣고 한 번 데치기로 했다. 가만 보아하니 이 엄청난 양을 국 솥 한 개로 끓이는 건 불가능했다. 솥 한 개는 이미 무,양파,마늘,황기등을 넣고 육수 용으로 푹 끓이는 중이었고, 데친 닭다리를 그 육수에 부으면 끝인 줄만 알았다. 계산착오였다.


"언니! 일단, 반만 데쳐서 육수에 넣어요. 한 솥에 저 닭다리 전부 다 넣으면 넘쳐요."

"그럴까?"


진선언니의 초점 잃은 큰 눈동자는 굴러 나올 것만 같았다. 언니가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했다.

진한 육수를 우려내기 위해 닭다리를 반 정도만 먼저 데쳐 각종 재료가 끓고 있는 육수 용 솥에 넣었다.


와우! 와우! 워-워-


반만 넣었는데도 솥은 넘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육수 용 국물에 빠트린 닭다리 800개는 30분정도 익힌 후, 건져내야 했다. 번거롭지만 있는 힘을 쥐어 짜야했다. 국물 맛을 낸 다음, 뜰채로 건져 바트에 담아 온장고에 넣기로 했다. 시간이 몇시지?


10시다. 이제 닭다리 반을 겨우 데쳤을 뿐인데....

솥 한개로는 제 시간에 끝낼 수 없다.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진선언니! 솥 하나로는 안 되겠어요. 도저히 안돼. 두 솥에 해야해.”

“그.. 그...그럴까?”


솥이 더 필요했다. 급식실 솥은 4개. 보통 국솥 하나, 고기나 해물을 볶는 주찬이 두 개, 나물을 데치는 등 부찬이 하나를 사용했다. 그런데 오늘 삼계탕은 솥 하나로는 될 양이 절대로 아니었다.


“혜진! 우리 솥 두 개 써야겠어.”

“아! 우리도 안되는데....”

“하나에 해봐. 부찬꺼 쓰던지.”

“에잇! 오늘 봐줬다. 삼계탕이 메인이니까.”



주찬이 쓰기로 했던 두 개의 솥 중 하나만 쓰라고 진선언니가 혜진언니에게 부탁을 했다. 평상시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였지만 중복에 닭다리 1700개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에게 헐크 혜진언니는 관대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닭다리 삼계탕의 양은 가늠이 안 될 정도였고, 여리여리한 짝꿍 진선언니의 큰 눈에는 겁이 가득했다. 닭다리 800개를 육수 용 솥에 넣고 끓이고 있는 동안, 데침용 솥에 나머지 900개를 데치고는 대형 스테인리스 소쿠리 일명, 빵빵이에 잠시 두었다. 그리고 얼른 데침용 솥에 끓던 물을 쏟아버렸다. 원래 닭만 데치고 주찬에게 내주어야 했던 솥을 그냥 우리가 계속 쓰기로 했다. 달구어졌던 솥을 비우고 옆에서 닭다리 800개와 함께 끓고 있는 육수를 반 정도 퍼날라 담았다.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나서 재빠르게 빵빵이에 있던 900개 닭다리를 퍼담아 날른 육수와 함께 끓이기 시작했다.


"혜성아! 세게 불 올려라!"

"네!"


현주선생님이 어깨를 힘있게 두드려주고 지나가셨다.

정신줄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땀인지 눈물인지 줄줄 흘러 눈과 입으로 들어왔다. 어느 밥 짓는 아줌마가 이런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을까. 내게 이런 사명감이 있는 줄 몰랐다. 내 정신줄이 이토록 강하게 두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줄 몰랐다.


10시 30분.


30분 남았다. 결국, 두 솥의 삼계탕을 만들었다. 먼저 끓이고 있던 솥에서 닭다리를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800개. 뜨거웠다. 얼굴이며 손등이며 뜨거웠다. 이미 얼굴은 열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목장갑과 고무장갑 두 겹으로도 손을 에워쌌지만 펄펄 끓는 솥의 열기를 막을 수 없었다. 뜰채로 건져 손으로 일일이 닭다리 800개를 바트에 옮겨 담았다. 감각이 없어졌다.


'10시 40분'


두번째 솥의 닭다리 900개를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오늘 눈을 뜬 이후로 단, 한번도 쉼이 없었다. 내 몸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쟁 중이었다. 인삼내가 진동하는 전쟁터에서.


"언니! 힘내요! 끝이 보여요!"

"응! 혜성쌤!"


배식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정확히 닭다리 하나씩 식판에 넣고 국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닭다리가 으스러져서는 안됐다. 닭다리를 한 개도 잃을 순 없었다. 몸이 바빴다.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미 땀에 절여진 마스크를 한 들 무슨 위생에 도움이 될까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냉감바지는 이 순간에도 종아리를 휘감아 더 찐득거렸다.


진하게 우려 낸 삼계탕 국물에 마늘, 파를 넣고 소금, 국 간장 마지막에 인삼가루를 부어 마무리. 내 평생 그렇게 실하고 굵은 인삼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좋은 인삼을 아이들이 걸러낼까봐 전부 갈아 국물에 넣어주었다. 임금님 수라상이 이런 정성에 비할 수 있을까.


"다 했다."

"혜성아! 이거 배식 온장고에 내가 넣을게. 국 퍼 담아."

"응!"


번개같은 미현이가 건져 올린 닭다리 열두바트를 배식 온장고에 넣어주었다. 진선언니와 나는 국 배식차에 삼계탕을 퍼 담기 시작했다. 양쪽 솥에서 국물이 부글부글 끓으니 인기 많은 삼계탕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이 와중에 뿌듯함이 끓어 올라왔다. 온 몸이 끓고 있고, 뿌듯함도 끓어 올랐다.



“와! 인삼향이 죽인다.”

“우와! 얘들 좋아하겠다. 정말 맛있겠다.”

“어떻게든 해냈구나. 대단해”


옆 솥단지 혜진언니네도 낚지 볶음이라 데치고 볶고 하느라 삼계탕에 품앗이 올 인력이 없었다. 아침에 호탕하게 웃으시던 현주 선생님의 얼굴도 앞치마도 낙지볶음의 벌건 양념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주찬을 솥 하나에 하느라 진땀을 뺐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주선생님과 혜진언니는 우리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우와! 국물 끝내주는데.”

“밥이 모자라겠어. 아이들이 추가 배식 많이 오겠는걸.”

“혜성아! 진선아! 수고했어.”


우리에게 허락된 점심시간은 5분! 수저를 뜰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밀어 넣어야 했다. 배식과 지옥의 세척실이 남아있다. 여기저기서 칭찬의 소리가 들렸다. 맛이고 뭐고 이 더운 날 그 엄청난 양의 닭과의 사투에 살아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승리였다. 어차피 잔반통에 들어 갈 밥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복날이라고 아이들 잘 먹인다는 생각에 혼신을 갈아 넣은 음식이 완성되자 언니들의 영혼도 갈아 넣었는지 모두 초죽음 상태였다. 이미 샤워실에 다녀온 듯 했다. 제 시간에 나오기가 어렵다 단정지어 험난할 것만 같던 삼계탕은 의외로 순조롭게 완성되었고, 모두들 걱정했었지만 보란 듯이 해냈다.



엄지 척.


아이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삼계탕을 배식할 때, 뜨거운 김이 올라와 안경에 서려 앞이 보이질 않았다. 온 몸에서 육수가 흘러 나왔다.


"선생님! 맛있어요. 진짜 짱이에요."


이러려고 법대를 나오지 않았고, 가르쳐 본 적도 없는 얘들에게 선생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인생 사 오늘처럼 땀을 흘려 본 일도 사투를 벌여 본 일도 그 어린 녀석의 칭찬에 눈물이 흘려 본 일도 없었다. 별의 별 기록으로 남을 오늘, 국 배식차는 텅 비었다.


완판!


복날 땀에 흥건하게 젖은 기능성 냉감바지,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오는 인중을 타고 흐르는 땀, 위생모에 숨겨진 절은 머리, 오늘 모든 순간이 버거웠지만 수월하게 끝난 하루에 감사했다. 마침내 거추장스러운 마스크, 모자, 고무장갑, 방수 앞치마, 토시 그리고 장화를 벗어 던졌다.


"혜성아! 오늘 진짜 수고했어."


조리장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었다. 진심을 꾹꾹 담아하시는 격려의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다.

그 어떤 날이 되었든 숨 가쁘게 빈틈없이 돌아가는 초를 다투는 압축 노동의 일과는 샤워실에서 물을 뒤집어 쓰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몽쉘통통 남았나?”

“언니! 이거 먹어요. 수박! 수박 많이 남았어.”

“삼계탕에 밥 말아 먹고 싶다.”

“오늘 하나도 안남았어.삼계탕 완판!”

“그럼 게토레이나 마셔야겠다.”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감정들도 달달한 간식과 에너지 드링크 한 모금에 날아가 버리고 온순해진 너와 내가 둘러 앉아 화기애애한 휴게실이 된다. 누군가 마법을 부리는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고 억세게 힘 좋은 아줌마들의 거친 입담들과 큰 목소리는 무장해제 되어 친절한 아가씨들이 즐비한다.

“어머! 립스틱 발랐네! 오늘 선미 어디 가나봐.”

“아니어유. 그냥 기분 좀 내보게.”

“우리 선미 언니 원래 멋쟁이야.”

“한의원에 침 맞으러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유.”

“하하하하하.”


아침 출근 길, 머릿속 언저리에 남아있던 경주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닭다리와 함께 사라졌지만, 모두가 맛있게 먹은 삼계탕의 인삼 향은 경주보다 더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앗싸! 집에서 삼계탕 안 끓여도 되겠네.”

“우리 얘들 학교도 오늘 삼계탕 했을거 아냐.”

“아이고! 급식실 다들 힘들었겠네.”

“치킨이나 시켜 먹어.”

“치킨 집 오늘 불나서 배달 엄청 기다려야할 걸.”

“그럼, 수박이나 한 통 사서 먹고 떼우지 뭐. 하하하하하”


큰 아이도 막둥이도 엄마가 끓여준 삼계탕보다 훨씬 맛좋은 삼계탕을 먹었으니 오늘 저녁은 간단히 라면이나 끓여 먹고 쉬어야 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수월하겠지.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강해지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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