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손가락 한 마디뿐이었다. 길어야 겨우 5센티미터 정도 밖에 안되었던 녀석은 2미터 장대만치 자랐다. 고추 밭에 세우려고 했던 고추지지대를 꼽아서 줄을 메었다. 얼마 못 가 몇 개 살면 족하다 했던 아스파라거스 모종 50개는 전부 살아서 뿌리를 내렸다.
작년, 모종을 한 판 사서는 어디에 심을까 고민하다가 농장 입구 옆 작은 밭에 심었더니 여름쯤 되자 입구를 가로 막을 정도로 자랐다. 시어머님이 이건 도대체 뭔 채소냐고 농장 머리에서 나풀거리니 정신이 없다하셔서 구박을 받는 아스파라거스를 이제 막 일년 정도 되었을뿐이지만 옮겨 심기로 했다.
일단, 열 개 정도만 파서 뿌리를 나누어 심기로 했다. 농장 안 쪽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땅을 갈아 잘 정리한 다음, 골을 내어 비닐을 씌웠다. 1년정도 되어서 뿌리가 뭐 얼마나 내렸겠나 싶어서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 뿌리가 제법 힘있게 땅에 내려져있었다. 얼마나 뿌리가 힘이 세고 땅 속 깊이 번식했는지 남편과 케내어 내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그래도 파릇파릇 순이 나며 쭉쭉 키가 자랄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기시작했다.
"아유! 언제 크냐!"
"야! 걱정 말어. 지금이야 잠도 못자고 힘들어서 그렇지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쏜 살 같이 가버려. 돌아서면 크고 돌아서면 크고"
한 달이 지났다. 마흔 중반에 둘째를 낳아 정신없이 갓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남동생의 푸념에 퇴근 길 대화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기가 밤 낮이 바뀌었는지 낮에는 잘 자다가 밤만 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고 했다. 출근하는 가장과 어린이집으로 쫓겨가는 첫째 아이는 자야하는데 갓난쟁이 녀석때문에 잠을 설쳐 종일 정신이 몽롱하다고 투덜투덜거렸다.
"이제 4주된 아이가 밤 낮을 어찌 가리냐? 아직 조금 더 있어야지. 하하하"
어떻게 두 아이를 미국에서 돕는 손길 하나 없이 키웠는 줄 모르겠다.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어 그저 품에 안고 다녔던 두 아이는 장정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덩치가 남달랐던 남편을 닮아 두 딸들은 아들 부럽지 않은 체격을 자랑한다. 바람불면 날라갈 듯한 꽃 잎같이 여리 여리한 강수지 언니처럼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씩씩하게 도전하고 용기있게 해내는 베포와 모델같은 기럭지를 가졌다.
남편은 공부를 하느라 밤을 자주 샜다. 재즈 드럼 전공자였지만 시창 청음 수업을 듣느라 밤새 피아노와 씨름했고, 음악사 수업이 필수라 두꺼운 음악 역사책을 보고 축약하느라 전자사전을 보며 끙끙댔다. 그 때, 남편의 품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 낮에 쉬지 못하고 아이를 돌보았던 나를 위해 학교 다녀와서는 아이를 끌어 안고 공부를 했고, 피아노를 쳤다. 그러다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할 때면 아이를 품에 안고 책상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빠 품에서 곯아 떨어졌다. 남편 품이 내 품보다 푸근하기에 온 몸이 벌게지도록 땀을 흘리면서 잠이 들었다.
지금이야 제 혼자 큰 줄 알고 부모의 호령에도 반항을 하고, 어느 날은 또 성큼 성큼 다가와 작아진 엄마를 안아주기도 하지만, 아직 내 눈에는 아빠 품에 안겨 자던 갓난 아기같다. 그렇게 키운 두 딸이 마치 아스파라거스 같다. 태어났을 때, 2.6킬로그램. 두 녀석 모두 작았다. 태변을 빼고나니 2.5킬로그램. 0.1만 모자랐어도 미숙아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야했다. 임신했을 때, 거두어 먹이는 친정엄마가 계신 것도 아니고 마음껏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벌이도 없는 유학생 때 아이를 가졌으니 마음은 더욱 여유가 없었다. 많이 먹지는 못해도 예쁜 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SAFE WAY에 가서 HONEY CRISPY 라는 사과를 사서 먹었다. 아이도 나도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같은 시기에 임신한 교회 친구는 내가 출산한 후, 일주일 지나 출산을 했는데 아이 몸무게가 자그마치 3.9킬로그램이었다. 괜시리 작게 태어난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쩜 그렇게 똑같이 두 아이모두 똑같이 2.6킬로그램으로 낳았는지. 그러나 작게 낳아 크게 키우라는 명언처럼 정말 두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크게 키웠다. 엄마의 정성은 거짓이 없는 결과를 만든다.
"엄마! 배고파!"
"야! 지금 많이 먹어둬. 더 클 수 있어."
요즘 막둥이가 크려는지 우유를 하루에 1리터씩 마시고 뭐든 무진장 많이 먹는다. 크려는 모양이다. 막둥이의 먹성에 큰 녀석이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준다. 저도 몇 년전 그럴 때가 있었다나. 학생 형편에 옷도 많이 얻어 입히고, 오롯이 남편과 둘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면서 키우다보니 더 엄격하게 키웠다. 혼도 많이 냈고, 매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여리게 태어나 어찌 클까 싶었고 남들보다 모자라 뭐든 쪼개고 나누며 키운 아이들은 뿌리가 아주 단단하게 컸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이지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옮겨 심은 1년생 아스파라거스들이 새로운 터전에서 또 뿌리를 잘 내리기를 기대한다. 더 든든하고 더 우직하게 뿌리를 내려 굵은 아스파라거스를 결실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