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급기야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안개가 자욱해서 출근 길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녀석이 모두 핸드폰과 친근하지 못한 이 엄마를 닮아 울리는 전화를 단번에 받을 리가 없었다. 세번째 통화를 시도했다. 막둥이 녀석이 받았다. 아이들도 등교 준비를 하느라 바쁠 것을 생각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목소리가 들리자 목청이 급히 높아졌다.
"막둥아!"
"응! 엄마! 왜?"
"밖에 안개가 엄청 자욱해. 옷 단단히 입고, 약 있는 선반 위에 마스크 있으니까 마스크 쓰고 나가라고."
"알았어."
막둥이 녀석은 해결이 되었다. 다음은 큰 녀석.
"언니 좀 바꿔봐봐."
벌써 막둥이의 목소리가 쭈볏쭈볏해짐을 직감했다. 큰 녀석이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느니 학급 반배정이 마음에 안든다느니 거기에 감기기운까지 있어 짜증을 정도껏 부려야 할텐데 정도가 심해져 가족들이 모두 눈치를 볼 지경이었다.
"언니....."
말 끝이 흐려지는 막둥이의 목소리를 듣자니 나도 조심스러워졌다.
"아-왜?"
"안개가 껴서 옷 따뜻하게 입고 마스크 쓰고 가. 알았지?"
얼르고 달래며 말을 아끼고 욱하는 감정도 아꼈다.
퇴근 무렵, 안개는 걷히고 쨍하게 해가 뜬 것이 날이 참 좋았다. 퇴근 길이 신이 났다. 일은 고되고 사실, 집에 가도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또 다른 출근이라 신이 나야할 이유가 없지만 회사를 나서는 순간, 그리고 집에 가는 그 30분은 과정의 행복함과 하루의 성취감으로 최고로 기분이 좋다. 그 기분 좋은 순간, 아이들이 보고싶다. 그래서 큰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왜?"
갑자기 뇌가 정지했다.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온 몸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기능이 활성화되기 시작함을 느꼈다. 폭발을 억누르려고 감정의 상처를 싸잡아 매려는 세포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소름이 돋았다. 너무 화가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열고 중문을 열어 재끼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큰 녀석 방으로 돌진했다.
"야!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아침에도 그렇게 짜증을 내고, 고생 고생 생고생하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일하고 나서 들어오는 엄마 전화를 그 따위로 받아? 다이어트고 뭐고 다 집어치워! 온 가족이 너 눈치를 얼마나 보는 줄 알아? 정신이 있어 없어? 위 아래도 없어? 뭐 이따위야?"
쩌렁쩌렁 목청껏 있는대로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체로 마구 내던져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엄마의 폭격을 잘 받아치며 힘껏 반항하던 큰 녀석도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도 입꼬리도 축 쳐져서는 제 풀에 지쳐 털썩 침대에 주저 앉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쌓인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난,
"저녁 밥도 먹지마.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돼지. 이것저것 해달라는 녀석 없으니 나도 편해. 아무거나 해 먹으면 되니까. 막둥아! 국에 밥이나 말아서 먹자. 계란후라이나 해서."
라고 말했다. 씩씩대면서 막둥이랑 둘이 앉아 밥을 밀어 넣었다. 모든 건 '기세'라고 했다. 가족들이 저 '기세'에 눌려 쥐 죽은 듯 쉬쉬하며 지낼 필요가 뭐가 있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이상 휘둘리지 않겠노라며 힘을 내기 위해 합리적인 핑계로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이게 무슨 전쟁 중에 비상식량 먹는 것도 아니고 뭔 전열을 이렇게 비장하게 가다듬다니. 그것도 열 여섯 살 꼬맹이를 상대로 말이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열 여섯 살짜리와 싸운다? 다툰다? 는 어이가 없는 그러니까 어른답지 못한 비논리적이며 말도 안되는 행동이겠지만 가정이라는 사회에서는 이 어이가 날아가 버린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난 사춘기에 위 아래도 잠깐씩 잊어버리는 커다란 꼬맹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물론, 어미의 거센 반격에 기가 푹 죽어 버렸지만 그 모습에 마음 약해지지 말자고 다시 굳은 결심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웬만하면 밤에 자기 전에 안아주고 잤을 텐데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다음날, 저녁이 될 때까지는 단단했다. 아침에 깨울 때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밥을 차려주었을 때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교 때도 퇴근 길에도 통화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차리려는데 170cm 되는 큰 덩치로 어기적어기적 나와서는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배가 고픈 모양인지 어미한테 뭘 말하려는 모양인지. 그 모습에 이미 얼음같던 마음은 녹아 내렸다. 얼마나 웃기던지.
그러고는 후라이팬에 올려진 '소시지'를 뒤집는다. '분홍 소시지'. 큰 녀석의 최애 반찬이다. 냉장고에 며칠 있었던 터라 얼른 먹어 치워야겠다 싶어 계란물을 입히고 있었다. 큰 녀석은 다 구워지지도 않은 '소시지'를 보면서 침을 꿀떡꿀떡 삼키고 있다. 애꿎은 계란 물을 젓가락으로 찍어 입에 대어 보고 있었다. 워낙 식탐 좋은 녀석이라 계란물을 입에 넣는 정도는 쉬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올라오는 웃음기를 꽉 깨물어 참고는 밥상에 앉았다.
어제의 일에 대해 큰 녀석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 녀석은 우적우적 쩝쩝 거리면서 '소시지'를 맛있게 먹으면서 쭈볏쭈볏 어색한 웃음을 내게 지어보였다. 교정기를 낀 치아에 분홍 소시지가 묻어 있었다. 엄마는 화내기도 정말 어렵다. 어찌 저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도 뭉글거리는 보드라운 마음을 참을 수 있을까 말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았을 녀석이 먼저 엄마한테 다가온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사이의 균열따위는 바닷가 모래위의 그림처럼 사라져버린 것을 우린 알았다.
그래서 또 괜찮다.
큰 녀석도 나도
그리고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