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by MAMA

드디어 팔공주다. 남동생이 마흔 네 살에 맞이한 둘째는 딸이었다. 우리 집의 여덟 번째 손녀가 일주일 전 태어났다.언니가 딸 넷, 내가 딸 둘, 남동생의 첫째가 딸. 장손인 아버지는 외아들인 남동생의 둘째는 제발 아들이었기를 간절히 바라셨지만 신의 선택은 우리 집안에 아직 아들을 허락하시지 않으셨음이었다.


남동생의 첫째는 이제 두 살이다. 통화할 때마다 남동생은 첫째가 동생 생긴 걸 아는지 엄청 말을 안 듣고 떼를 쓴다고 푸념했다. 내가 남동생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충고였다.


“아직 걔가 무얼 알겠니? 동생이란 뜻을 알어? ‘보듬고 아껴주어야 하는 내 동생이구나’ 그걸 지금 알겠냐 말이야. 그저 그 아이 눈에는 자기 자리를 빼앗은 어떤 아이. 나만 보고 나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옆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경쟁자. 지금은 그런거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가족이란 것도 동생이란 것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빼닮은 관계, 바로 부모와 자식간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 외에는 이 땅에 모든 관계는 경쟁을 수반한다. 사회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는 냉철하게도 모두 그렇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서 내 속 깊은 사정을 말할 수 있다해도 그를 향한 시기, 질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회사내에서 박대리와 나와 같이 매일 이런 저런 이야기로 회사를 질타하는 담합을 하는 동료라 해도 면피싸움과 귀책사유에서 철저히 준비해야하는 경쟁자이다. 피가 섞인 형제, 자매라고 다를 것이 없다.


어느 날, 저녁 ‘왕과 사는 남자’ 가 천만을 넘은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딸이 하는 대화에 기가찼다.


“ 엄마가 왕이면 내가 왕이 되는거지?”

큰 녀석이 눈에 장난기가 가득해서는 물었다.


“그렇지. 엄마나 아빠가 왕이면 네가 첫째니까 엘사처럼 여왕이 되는거지.”

“그럼, 얘는?”

큰 녀석이 동생을 가르키면서 물었다.

막둥이 녀석의 눈빛은 벌써 불안했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옛날 같으면 네가 여왕이 되고 네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첫째가 또 왕 자리를 물려받는 거지. 네가 여왕인데 결혼하지 않고 또는 자식 없이 죽게 되면 왕 자리를 동생한테 물려줄 수 있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니.”

난 막둥이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큰 녀석의 눈에는 동생을 놀려주려는 장난기와 욕심이 가득했다. 언니의 의도를 아는 막둥이는 씩씩대면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


“아무튼 그 영화는 수양대군이 단종 자리를 빼앗은 이야기지. 왕이 아들을 낳으면 그 자리를 그 아들이 물려 받았지. 일찍 죽을 수도 있으니까 왕이 자식을 여럿두기는 했지만 왕의 형제, 즉 왕족들이 왕의 아들에게는 제일 위험한 존재들이었지. 이방원도 태조 이성계 다섯 번재 아들이잖니. 원래 수양대군은 단종의 삼촌이야.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문종이 죽고 아들 단종이 왕이 된 건데 단종이 죽지 않는 한 삼촌이 왕이 될 수 없었지. 그래서 어린 조카를 죽였잖아.”


“하하하하하. 위험한 존재.”

“야! 그래도 나는 전교회장하잖아. 왕이 될 수 없었더라도 지금 짱 먹었잖아.”

막둥이의 반격이 사뭇 진지했다.


두 딸은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경쟁자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키웠지만 어쩔수가 없다. 우리 아버지의 일곱 번째 손녀가 더 어린 여덟 번째 손녀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경쟁이다. 나도 그러했다. 언니가 늘 첫째라서 무엇이든지 먼저 챙김을 받는 것이 싫었다. 남동생은 참 귀엽지만 부모님께서 남동생을 아들이라 챙겨주는 것이 싫었다. 난 딱 둘째, 완전 성덕선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 사이 꼭 낀 아이. 덕선이의 목소리가 크고, 삶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그래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어서였다.


내가 자라면서 듣기 싫었던 말은 “네가 아들이었으면 동생은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어.” 내가 아들이었으면이라는 경우에 해당하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어릴 때는 아들이고 싶었고, 크면서는 어린 마음에 하도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지 내가 아들인지도 딸인지도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성격이 씩씩하고 대차기도 해서 믿음직스러운 아들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아들이 되고픈 마음이었지만 사실,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었다. 뭐가, 되지 않아도 그저 나는 나이고 싶었다. 나란 사람을 오롯이 나로 알고 사랑해주길 바랐다.


반 백살이 가까운 나이가 되고보니 엄마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더더욱 여덟 번째 손녀를 안게 된 아버지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 부모 마음이지 싶다. 어릴 때 묵혀두었던 쓴 감정들이 마치, 마음 한 켠에 항상 그늘져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얼음이 저벅저벅한 거친 땅과 같았는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되니 부모님의 사정이 딱 내 사정같아 언 땅은 눈 녹듯 사라졌다.


다 늙어가는 처지에 아이 넷을 키우는 언니도 이제 겨우 두 살짜리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갓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다. 그저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일뿐. 문득, 우리 삼남매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언니가 친구랑 싸우고 울고 들어올 때면 ‘누가 우리 언니를 울려?’하면서 조그만 내가 문밖을 뛰쳐나가 언니 친구랑 싸워주었던 기억, 언니의 월급날은 나와 동생이 피자를 먹는 날이었던, 그리고 대학시절 어려운 형편에 과외 하면서 모은 돈으로 남동생 기숙사비를 대신 내어주기도 하고, 동생이랑 대학교 때 학교 앞 대패 삼겹살 집에서 삼겹살을 9인분이나 구워 먹었던 기억, 스무살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셋이서 김밥을 싸서 서울랜드에 놀러갔던 기억. 우린 우리라서 행복했다. 서로 기댈 수 있어서 든든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왕 자리를 두고 느꼈을 오랜 시간 문종에 대한 수양대군의 경쟁심은 역사를 바꿨다. 우리의 경쟁심이 역사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인생을 뒤틀기도하고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 경쟁심이 나 자신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용서치 못할 묵은 감정처럼 오랜 시간 내 마음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별거 아닌 그 무거운 감정에서 자유했으면 그때의 나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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