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아이들의 방학도 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겨우내 겨울 잠을 자는 듯, 정오가 될 때까지 실컷자고, 출근하기 전, 새벽녘에 해 놓은 아침밥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제 하고 싶은 대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들들 볶아 아침에 일어났을 테고 찬이 없어도 정갈하게 차려 먹었을 테고 운동도 매일 나갔을 테지만 이제는 방학에 엄마가 곁에 없는 게 다행인지도 모를 사춘기 나이라 딴에는 방학다운 방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났어?”
정오가 지나야 아이들과 통화가 된다. 일에 치여 오전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고 쉬는 시간 털썩 자리에 앉아 부스스하게 눈을 뜬 막둥이의 보송보송한 얼굴을 보니 미소가 번진다. 누구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 얼굴은 내가 곁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먼지턴다고 청소기 돌리고 밥하느라 부산을 떨때보다 더 좋아졌다. 이래서 크면 독립을 해야 하는가 보다.
“만둣국 끓여 놨어. 떡만둣국 먹고, 딸기도 먹어.”
출근 전에 끓여 놓은 떡만둣국이 불지나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아이들 잠보다 떡이 불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아마도 집에 있었으면 아이들을 10시도 되기 전에 깨워 눈도 뜨지 않은 녀석들을 채근질해가며 아침을 먹였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제는 엄마가 옆에 있어도 잔소리 안하고 저들 좋은 대로 맞춰주며 조용히 있는 게 관계의 화평을 위해 좋을 일이니 차라리 나가서 일을 하는 게 낫다 싶다.
“오늘 밥은 뭘까요?”
“그러게 뭐가 나올까?”
“그 붕어빵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러게나 말이야. 그래도 어제 짜장이었으니까 오늘은 고기 좀 나오지 않겠어?”
박대리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얼굴을 마주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때면 사람이 참 단순한 동물인 것 같다. 종일 일하느라 정신이 없고 상사와의 관계로 속이 뒤틀어질 것 같아도 입에 들어가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덩어리 몇에 금방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 영 기분이 그랬어.”
“왜요? 주임님! 무슨일 있었어요?”
“박차장이 전화가 왔는데 리프트를 아직도 쓰시고 있냐고 짜증을 내면서 물어보는 거야. 나야 3층에 입고 된 물건들 내리고 바로 리프트 내렸지. 그래도 아침부터 그렇게 남한테 짜증을 거름없이 낼 수 있냐고.”
“안그래도 저한테도 물어봤었어요. 저야 3층에 물건 바로 내리셨을거라고 말씀드렸죠.”
“직장에서 관계가 있기 전, 남과 남인데 남 사이에 기본적 예의가 있고, 그 다음이 직장이든 어디든 사회적 관계에 또 맞는 예의가 있는데 그렇게 기본적인 감정처리 예의가 없어서 되겠니? 아침에 너무 기분이 안 좋은 거야.”
“어휴! 뭘 말하겠어요. 저는 기대도 안 해요. 저는 하두 많이 겪어서 그렇게 말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어요. 주임님도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침 결에 회사 냉장고를 바꾼다고 난리통이었다. 안그래도 출근하자마자 납품준비로 리프트가 오르락 내리락 분주해야 하는데 새 냉장고가 올라가고 헌 냉장고가 내려지고 입고된 회사 물품들이 들어오고 납품나가야 하는 물건들이 내려지고 하면서 리프트에 과부하가 걸린 듯 했다. 눈에 안 보이는 독거노인이라고 뭐든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부터 전화오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아침 댓 바람부터 날이 선 말투로 짜증을 내는 박차장이 여간 미운게 아니었다. 요즘 아래층 윗층으로 일이 많아 그렇다치더라도 사실, 그렇게 짜증을 내는 직원들은 없다. 그런데 유독 박차장은 밀려 오는 업무에 과한 스트레스를 밖으로 저도 모르게 표출을 과감없이 하는터라 나외에도 2층 직원들은 많이 겪었던 터였다. 그런데도 박차장은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얼마나 친절한 말투로 카톡을 하는 지 사람이 한결같아야 하는데 가끔은 sns 상 가면이 지나치게 두꺼운게 아닌가 싶었다.
“저도 방학이고 싶네요.”
나의 속풀이에 입사동기 박대리가 파랗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한 숨을 내쉬면서 한마디 했다.
“참! 주임님! 지난 번에 엄마가 은퇴하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정년날이에요. 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가봐야 해요. 케이크사서 촛불이라도 같이 꺼드려야죠.”
“그렇구나. 정년일이라고 해도 내일 또 나가시는 거지?”
“네. 계약직으로 출근은 계속 하시는거에요.엄마가 힘들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회사에서 촉탁직 제안이 온 것도 그렇고 엄마도 힘들지만 일을 계속하고 싶어하셔서요.”
“그러게. 정년 60이라고 해도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게 좋지. 퇴직하고 나면 일 구하기도 힘들고 다시 새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 잘 생각하셨네.”
진심으로 방학이고 싶다. 큰 녀석 세 살, 작은 녀석 8개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어느 늦가을 오후, 핑크색 텐트에 엄마가 기어 들어가니 두 녀석이 졸졸 기어 들어 왔다. 비좁은 아이들 텐트에 앉아 귤을 까먹었다. 뭘 안 해도 항상 웃음이 나던 그 때. 그 맛있었던 진한 주황빛 미국 만다린의 맛과 그 텐트 안에 비치는 세상의 핑크 빛, 요물요물 귤을 씹던 엉금엉금 기던 침 흘리는 8개월 막둥이와 레이스 달린 핑크색 발레복을 입고 빙글빙글 돌던 큰 아이.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그 때가 떠올랐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딱 그날 그때로.....’
이사 오기 전, 월셋집에서 복닦거리면서 살았을 때가 행복했다 여겼다. 그 때도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했다. 작은 집이든 월셋 집이든 우리의 일상은 늘 배부르고 등 따숩고 맛있었고 웃음이 넘쳤다. 엊저녁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랑 차타고 놀러 다닐 때가 좋았다. 그치?”
시애틀 alki beach, leavenworth, cannon beach. 머릿 속을 순식간에 스쳐가는 아름다운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남편과 도시락 싸들고, 햄버거 세트 먹으면서 여기저기 날이 좋았던 시애틀에서 연애하던 그 때. 생각해보니 그 때가 더 행복했던가. 괜한 욕심을 부려 집을 사서 이리도 힘이드나 싶었다.
“그래도 자기가 한 청약 덕분에 이렇게 집도 생기고 아이들도 잘 지내고 좋잖아. 잘했어. 다 때가 있잖아. 아이들이 크면서 필요한 게 또 있고.”
아침 결에 있던 일로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나를 위로하는 거였지만 못내 서운하기도 했고, 그런데 마음을 다시 고쳐 먹었다. 방학이고 싶었지만 내 나이에 방학은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소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기였던 아이들은 이제 나보다 커 독립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어가고 난 또 그 아이들에게 맞는 옷과 환경을 입혀줘야 하니까 말이다. 언제까지나 텐트 안에서 귤을 까먹을 수도 없다. 아이들은 이제 텐트안이 너무 비좁으니 말이다. 아직 정년이 멀었다. 한참 남았다. 아니, 안 올수도 있다. 일이 힘들던 직장 상사가 짜증을 내던 나는 아직 한창이다. 멀고 먼 정년과 어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정년 후의 방학. 그 전까지 방학 생각은 접어 두어야 겠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방학은 어른이 되기 위한 독립을 위한 잠깐의 숨고르기니 그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사 최고 달디 단 휴식임을 내 나이 되어서야 알게 되겠지만 지금 꼭 내가 곁에 있을 필요는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을 축하하러가는 박대리의 마음도, 다음 날 계약직으로 다시 출근하는 박대리 어머니의 마음도, 그 마음을 모두 이해하는 나의 마음도. 그저 내일 먼 방학을 생각하며 다시 행복하기를 바란다. 먼 방학에 우린 어쩜 지금을 아주 많이 그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