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by MAMA

혼자 독거노인으로 3층 자재실에 근무하게 된 지 언 1년 하고도 3개월 남짓. 출근하자마자 냉동창고 같은 곳의 온도를 보면 9도다. 여기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보다 춥다. 히터가 예열하느라 덜덜 거리기 시작하면 여간해서 쉬이 데워지지 않는 공기는 더 차게 느껴진다. 코가 푸석푸석하게 건조해지기 시작하면 조금 차디참이 누그러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색깔만 바뀌는 액자 같은 풍경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몸은 바쁜데 창 밖은 매일 똑같았다. 이 시간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맞닥뜨린 수도 없이 많은 삶의 순간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거듭 되뇌었다. 낯선 분야 낯선 일 낯선 사람 낯선 공간. 온통 낯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단어와 이름들 속에 나 홀로 남겨졌던 지난 1년 남짓 동안 인간은 역시 적응한다는 현실을 신봉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쇳덩어리들과 친해졌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들은 가히 경력직이 되어감을 증명하고 있었다.


경력이 되어가는 이력에도 적응되지 않는 것은 외로움이다. 3층 자재실의 적막은 외향형 인간이 '나는 혼자 있노라'라는 생각조차 않으려는 뇌의 끊임없는 시도로도 이길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추운 겨울날 듣기 좋은 노래와 라디오 DJ 또는 뉴스 앵커들의 말 말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질 때가 있는가 하면은 가사가 거슬려 일에 지장을 주는 듯 가사 없는 음악을 틀어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지독히도 아무것도 듣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적막함을 오히려 적막하게 외로이 즐기고 싶은 변태적인 뇌의 발동으로 업무 여덟 시간 동안 아무런 청각적 효과의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 그런 날이었는데..... 어쩌다가 CCM을 잠시 틀어놨었다.


때마침 작은 사장이 작업하러 3층에 올라왔다. 종일 아무 음악도 먹지 않았다. CCM을 잠시 틀어두니 오랜만 영적 기쁨으로 견딜만했다.


"뭐... 위로받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네?"

"아니, 찬송가를 틀어 놓으셨길래...."

"아.... 주님께서 늘 위로해 주시죠! 하하하"

"그 말이 아니잖아요."

"아니에요. 그런 일 없어요."


그래도 동갑내기 작은 사장은 잠시 잠깐 들러 몇 마디 말이라도 건네어준다. 성경 말씀을 줄줄 외우는 두 아들과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시는 아내분과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아도 등 떠밀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를 꽤 오랫동안 다니셨다. 제목은 몰라도 듣는 순간 느낌이 찬송가이기에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약간의 염려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몇 마디 건넨 거라고 했다. 웃음이 터졌지만 위로를 받고 싶었었던 것 같은 깊숙한 감정을 들킨 기분이었다. 멋쩍어하는 새둥지를 튼 동갑내기 사장의 뒷모습에서 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40대 아주머니를 채용해 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해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건물주도 오너도 아니라고 늘 투덜대며 직원들과 속내를 주고받으며 공감하기를 바랐지만 늘 오너이신 큰 사장님의 그늘과 눈치에 경영자로 잔소리도 궂은일도 모두 동갑내기 사장의 몫이었다. 한두 달, 반년, 그리고 일 년을 일해보니 회사 내 사정이 빤히 이해가 되는 얄궂음에 작은 사장의 '작은'이라는 직함이 씁쓸해진다. 그도 늘 위로받고 싶은 뒷모습이라 난 더 열심히 일했을 뿐이지만 그걸 아시는지 늘 내게 최고라고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상여금과 남들 다 받았던 생일 축하금 누락 사건으로 인해 섭섭함에 지난주 내내 화가 나있었었다. 가족 경영진에 십수 년 경리에서 차장까지 진급한 고양이 엄마와 '야!', '너' 하는 5년 남짓한 자재실 언니들까지 이런 분위기로 봐서는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아옹다옹하는 회사 분위기 탓에 어떤 절차나 오고 가는 대화에 회사의 상도덕이나 윤리 또는 절차 따위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데 나나 입사동기 박대리, 김 과장까지 회사 직원이 늘어나고 마냥 가족처럼은 지낼 수 없지 않나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러니 나에게 일어난 이런 회사 차원의 실수도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따로 불러 처리를 마땅히 해줘야 했었겠지만 직원들 다 있는 곳에서 우스게 농담으로 몇 마디 던지며 무마하려는 방식에 기가 찼었다. 나는 십수 년 같이 동고동락한 고양이 엄마도 아니고, 호형호재하는 경영진도 아닌데 무슨 일을 이렇게 처리하나 싶었다.


"여기요!"

"아니에요! 사장님 아이들 주세요."

"에잇! 내 마음이라 생각해요. 문주임 아이들 주세요."


두쫀쿠.


그 몰랑몰랑한 갈색의 정체 모를 유명한 녀석들을 작은 사장이 두 손에 쥐어주었다. 구하기 힘들다던 두쫀쿠 열개를 거래처에서 사 왔는데 마침 3층에 작업을 하고 계셨던 큰 사장과 작은 사장, 그리고 나한테 박대리가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큰 사장님은 당뇨라 절대 드시면 안 되는 터라 작은 사장한테 주었고, 작은 사장은 본인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큰 사장님한테 받은 한 개를 나한테 주었다. 두 딸들한테 하나씩 주라고 말이다. 내심 지난주의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큰 사장님이 안 계신 사이에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로 냉랭했던 분위기를 풀었고, 마무리는 달달한 두쫀쿠였으니 가히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두 딸아이가 두쫀쿠를 먹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터였는데 작은 사장을 통해 이루어질 그들의 소원이었다니 웃음이 나왔다.


예기치 못한 순간, 예기치 못한 사람에게서 받은 위로로 냅다 던졌어야 할 사직서를 또 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하루 또 경력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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