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by MAMA

습관이 생겼다.


"엄마한테 전화!"


아침 출근길, 차에 시동을 걸고 티맵을 켠다. 라디오를 켜서 106.9를 맞춘 다음 건조한 손에 핸드크림을 바른다. 핸드크림이 어느 정도 마르면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매일 아침의 습관이다. 어느 날부턴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엄마와의 통화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응! 혜성이니?

"네! 오마니!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어제 복부초음파는 잘하시고 오셨어요?"

"응! 괜찮다고는 하는데...."

"등은 괜찮아? 췌장이 걱정이라면 복부 초음파가 아니라 복부 CT를 찍어야 하는데..."

"그것보다 순환기내과 예약을 좀 해야 하는데...."

"심장때문에?"

"작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어서 병원 예약을 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더라고. 그 의사가 명의야. 폐, 심장을 다 잘 본다고 하더라고. 올해는 꼭 가봐야지."

"엄마! 내가 오늘 바쁠 것 같은데 일단, 회사에 가서 시간 나면 예약해 드릴게요. 의사 이름이 뭐라고요? 그리고 밖에 나가실 때, 꼭 모자 쓰시고 따뜻하게 입고 나가세요."


엄마는 며칠 전 왼쪽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고 했다. 오랫동안 고혈압 약을 드셨고, 무릎도 허리도 안 좋으시고, 작년에는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았었다. 엄마가 힘든 것을 알아도 경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이런 전화 통화는 나를 힘들게 한다. 돈 걱정 하지 않고, 노모의 연약한 사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 있는 자식이고 싶었다. 내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뿐이었다.


종일 정신이 없었다. 퇴근 삼십 분 전이 되어서야 겨우 앉았다. 오늘도 8931보. 급하게 납품 준비해야 하는 발주건들이 쏟아졌고, 재고 물량 확인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겹쳐 어제도 오늘도 숨 쉴 틈이 없었다. 집에 와서야 병원 예약을 하지 못했음이 생각났다. 아차 싶었다.


"아빠한테 전화!"


퇴근길, 꽁꽁 언 차를 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티맵을 켠다. 라디오를 켜서 주파수 102.3을 맞춘 다음 건조한 손에 핸드크림을 바른다. 핸드크림이 어느 정도 마르면 아빠한테 전화를 한다. 매일 저녁의 습관이다. 어느 날부턴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아빠와의 통화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칼퇴!"

"칼퇴! 오늘도 칼퇴입니다."

"칼퇴 좋다!"

"오늘 정말 바빴어요. 칼퇴하지 않으면 죽어요."

"다들 경기가 안 좋다고 난리들인데 그 회사는 연초에 그리 바쁘니 좋다."

"저는 죽을 맛이에요. 사장님은 좋으시겠지만요."

"에이! 월급이 잘 나오는 게 어디냐? 그게 좋은 거지."

"그래요! 아부지! 아부지 말씀이 맞아요."

"제가 아는 것도 없는 반도체 장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정말 다행이지요. 우리 회사도 삼성이라는 회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게나 말이다. 요즘 반도체 잘 나가잖아."

"삼성 때문에 먹고사는 회사가 한 둘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잘 돼야 해요."

"그래그래. 어서 가서 딸내미들 밥 해줘야지."

"네. 맞아요. 날아가야죠. 밥 해주러."

"오늘도 수고했네."

"아버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버지가 작년에 많이 편찮으셨다. 자전거를 타시다가 넘어지면서 종아리 안쪽에 깊은 상처가 생겼는데 낫겠지 낫겠지 하다가 상처가 깊어져 크게 고생을 하셨었다. 결국, 피부 이식 수술까지 하시고 꼬박 석 달을 매일 병원에 다니셨다. 그때, 괜한 상심에 몸까지 상하실까 걱정이 되어 매일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게 어디가 아프다는 말씀을 잘하시지 않는다. 엄마와 달리 걱정이 될만한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짐을 가장으로서 오롯이 지금도 지고 계시다.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오늘도 65년 지기 친구와 동네 야트막한 산을 한 바퀴 도시고는 커피를 한 잔 드셨고, 마트 구경을 하시고는 집에 오시는 길에 세일하는 찬거리를 사들고 오셨다고 했다.


종일 앉지도 못해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집에 와 배고프다고 아우성인 딸내미 얼굴을 보니 다시 힘이 났다. 저녁 식사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시금치를 데치고, 애호박과 당근, 버섯을 볶아 계란 후라이를 부쳐 오색 빛깔 비빔밥을 완성했다. 왜 이렇게 야채가 많냐고 투덜대면서도 배가 고파 와구와구 비빔밥을 입에 넣는 아이들을 보니 그저 좋았다. 귀여운 녀석들이 하하 호호 재잘재잘 댔다. 방학이라 별일이 없는 하루였을 텐데도 뭐 그리 할 말들이 많은지 서로 다투어 입을 열었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나도 늙지 않고 너희들도 늙지 않고....우리 엄마 아빠도 나와 같았을까?'


언젠가 우리의 일상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는 그 상실의 날이 다가오겠지만 그저 우리는 그 상실조차 어쩔 수 없이 방지턱을 넘듯 넘겨야만 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다고 후회와 근심으로 상실의 다가옴을 두려워할 수만은 없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찬란하고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땀 흘려 일할 수 있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 눈동자를 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는 대비할 수 없는 매일을 살고 예기치 못한 일에 늘 넘어지고 불현듯 다가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포기해버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신이 주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시작과 끝을 이루어내고 있는 위대한 삶의 여정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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