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너도 많이 받아라.”
2025년이 한 시간 정도 남았을 때 아버지와의 통화였다. 아버지가 지금 살고 계신 빌라가 노후해서 재건축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통과가 된다 해도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10년 후에 내가 살아 있겠나? 허허허허”
“아버지! 그건 모르잖아요.”
“가야지. 나도 가야지. 심심해서 못 살겠어. 저 세상에 친구들이 다 갔어. 거기 얼마나 재밌겠노?”
아버지의 말씀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친구들이 가 있는 저 세상을 가고 싶어 하셨다. 심심해서 못 사시겠다는 말씀이 왜 격한 공감이 되는지 모르겠다. 여든이 넘은 저 세상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도 마음은 이팔청춘이겠지만 시간은 빠르게 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몸은 더디고 무뎌지고 약해지고 무력해져서 죽음이 가까워 옴을 느낄 텐데 말이다. 난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인생에서 가장 바쁜 40대를 보내고 있지만 아버지가 말씀하신 심심함을 공감한다. 월, 화, 수, 목, 금 다섯 시 반 기상, 일곱 시 반 출근, 업무, 다섯 시 반 퇴근, 저녁 식사 준비, 장보기, 운동, 독서, 신앙생활, 가족관계를 위한 다수의 일들, 아이들을 위한 양육 및 교육에 관한 모든 대소사 등등등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일과를 소화해도 오롯이 나만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심심하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없는 일들이 모두 마무리되는 은퇴의 시점에 아버지의 말씀대로 무척 심심해질 것이다.
2025년 마지막 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홀로 있으면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과 느낌. 그래도 정말 바빴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종무식과 점심식사, 그리고 사내 청소를 끝내고 나니 2시 반정도 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일정이 생겨 부랴부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양에 다녀와야 했다. 송구영신예배 연합성가대 연습에 다섯 시 반까지 도착해야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양에서 일을 마치고 집 근처에 도착하니 4시 30분. 마트로 향했다. 설날에 떡국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찬거리가 있어야 했다. 매서운 추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장을 봤다. 만두를 해 먹을 생각에 만두피와 다진 고기도 샀다. 옹기종기 까먹을 귤도 사고, 달달한 고구마깡도 샀다. 집에 도착하니 5시 40분. 일단,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교회로 향했다. 간신히 시간 맞춰 성가대에 섰다. 있는 대로 힘껏 두어 달 동안 연습했던 곡들을 지휘자님의 지휘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불렀다. 정말 은혜가 아니면 부를 수 없다. 아니, 은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듣는 이의 청각에 소음이든 호강이든 상관없이 나한테는 곡의 제목대로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되자 졸음도 넘쳐 흘렀다. 목사님의 음성이 까마득했다. 말에 관한 일곱 가지 태도를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 태도를 고쳐 먹으려고 해도 벌써 고집스럽게 박혀 버린 말의 뿌리는 쉽사리 뽑히지 않았다. 차라리 입을 닫아버리는 편이 고치는 것보다 수월했다. 목사님 말씀을 다 듣고는 또 내 멋대로 ‘말을 줄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칠 수 없다. 열 마디 말 중에 얼마나 실수가 많고 헐뜯음이 많은 지 인간은 죄인임을 수 차례 느껴 채찍질하느니 산 입에 거미줄을 치기로 택했다. 하나님께서 3층 자재실에 혼자 내버려 두시는 이유를 그렇게 합리화했다.
집에 왔지만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언니한테 전화가 와서 30분, 동생한테 전화가 와서 30분. 여차저차 떠들다 보니 자정이 넘어버렸다. 오늘 25시간을 산 것 같았다. 대충 씻고 누우니 침대 머리맡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읽고 싶은데 눈이 감기우고 있었다. 몇 글자 몇 문장이라도 꾸역꾸역….. 병자호란에 누르하치가 어떻게 했다고? 중얼중얼....
심심함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심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런 빈도수가 잦아진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하거나 다수의 교회 지인들을 만났고, 이모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난 그 심심함을 즐기려고 한다. 익숙해져보려 한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에 심심해하거나 외로워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달리고, 읽고, 쓰고…그렇게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도 심심하지 않도록 말이다. 2026년에는 올해보다 더 바빠질 예정이다. 그러나 난 심심할 것이고 고독해질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그 심심함을 진화시킬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