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지난 주말 친정을 방문했다. 며칠 전, 아빠가 우리 삼남매 어릴 적 사진이 꽂힌 앨범들을 보다가 추억에 잠겨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엄마는 언니, 나, 남동생이 각각 주인공으로 있는 사진들을 분류해서 몇 권씩 앨범을 만들어 놓으셨다. 앨범의 첫 장은 엄마가 우리 셋을 임신 했을 때마다 보관해둔 병원 진료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백일, 돌, 걸음마,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운동회,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입단식, 여름 휴가, 겨울 방학등 우리 가족의 모든 대소사에 대한 기록이 시간 순서대로 사진으로 나열되어져 있다. 그런데 사진의 기록이 중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없다. 우리 집은 내 중학교 졸업 시절부터 줄곧 어려웠다. 난 늘 이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성공에서 찾았다. 당연했다. 위대한 직업을 가져서 집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포부라고 꿈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건 지금까지 내가 꾸고 있는 꿈이지만 여지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연로하시나 여전히 경제활동이 필요하시고 우리 셋 모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은 아니다. 양육과 유지를 위해선 경제활동이 필수적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위대한 나를 꿈꾸고 바라고 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렸다. 애굽의 노예를 시작으로 그들이 누군가의 지배 하에서 핍박을 받은 햇수는 헤아릴 수 없이 길다.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 남기셨던 열국의 침입으로 인해 사사기 시대 영적 암흑 상태를 지나 왕정시대에 돌입했으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은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앗수르에게 북이스라엘이 멸망되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되었다. 신구약 중간 400년의 암흑기를 거쳐 로마제국이 등장했고, 그 때도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에게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처참히 함락됨으로 지구상에 이스라엘은 사라졌다. 1948년 지구상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등장하기까지 1822년이 걸렸다. 그들은 그 동안 전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고, 유대인 혐오주의로 인한 대학살을 견뎌냈으며,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 이 땅에서 이스라엘만큼 한 많은 민족을 찾기는 드물다. 대한민국 역사상 일제치하 식민지 30년의 고통과 신음에 1500년을 더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 모든 설움을 씻어 줄 위대한 메시야를 아직도 꿈꾸고 있다.
며칠 전, EBS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서울예고에서 바순을 전공하는 남학생이 출연했다. 그는 4살 때부터 수영을 했고, 수영선수를 꿈꾸었다고 했다. 박태환의 ‘프리스타일 히어로’라는 책을 좋아하는 책으로 꼽을 정도로 수영에 진심이었다. 그런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대단하지는 않았다. 예원중을 다녔던 누나의 체육대회를 보고 예원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바이올린 전공자라고 하셨으니 음악을 접할 기회는 누구보다 많았을 것이지만 실력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전직수영선수로서 큰 폐활량을 기반으로 바순이라는 흔하지 않은 악기로 예원학교에 진학을 했어도 정말 드문일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예고에 진학을 할 정도면 성적도 꽤 좋았을 것이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했고, 음악을 전공하기보다는 의대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했다고 했다. 수영선수를 거쳐 예원학교 전교회장 출신, 의대진학을 목표로 한 서울예고 바순 연주자. 그의 이력과 말솜씨는 청취자로서 그에 대한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다. 너도 나도 라디오를 듣다가 보이는 라디오로 들어와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 청취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연주 때의 감동으로 처음 음악 전공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라디오 진행자도 청취자도 그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정말 멋진 소년이었다. 지금까지의 그의 이력과 그가 가진 생각이 정말 위대했다. 그래서 꿈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모두 귀가 쫑긋했다.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교수’가 되고 싶으냐는 진행자의 되물음에 그는 ‘교수’가 아니라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당차게 대답했다. 그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었고, 친구들이 그 덕분에 시험을 잘 봤다고 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아직 작은 고등학생인 소년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대단하리만큼 높은 직업의 이름이 튀어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럴만한 녀석이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바라고 꿈꾸는 화려한 위대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만으로 그는 위대해졌다. 청취자들도 진행자도 순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교수’가 아니라 ‘교사’라는 대답에 모두 한 방 먹은 우리는 닿을 수 없는 위대함을 꿈이라 여기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위대함은 확신에서 나오는데 확신없는 불안함으로 더 높은 것을 잡으려 하며 이미 닿은 것들에 대한 성취를 보지 못하고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다그침으로 삶을 얽매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스라엘도 나도.....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