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토록 사무실에서 나도 너도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컴퓨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통 낙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2층 자재실 언니들은 하루 두 번 있는 10분 쉬는 시간에 담배를 태우러 의무적으로 탈출을 한다. 사장님이 회사를 벗어난 것이 확실시되면 박 차장은 어김없이 고양이 밥을 주는 핑계로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운다. 14년 짬이 돼서 그렇기는 하지만 담배 태울 핑계도 없이 주야장천 모니터에 시선고정하며 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비흡연자 직원들은 그에 비하면 노예나 다름없다. 흡연자들에 비해 쉬는 시간을 애타게 챙겨야 할 이유가 없으니 충성심과 애사심이 없어도 혹사당함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이런 직장 생활에 낙이 무엇이 있을까? 바로, 점심시간. 현대인들이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했던가? 한 시간이면 족할 햇빛 바라기. 누구나에게 합당한 이 시간이 우리의 정신을 위해서도 육체를 위해서도 가장 유익한 시간이다. 2층 자재실 언니들과 고양이 엄마 박 차장은 요즘 도시락을 싸 온다. 물론, 도시락이라기보다는 찌개를 끓여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거나 하면서 사내 휴게실에서 식사를 보람차게 해결하기로 했다. 가끔 아주 날씨가 좋은 날에는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한다. 이후, 설거지 담당은 노처녀 김 과장 몫이다. 애석하게도 김과장 외에 그 누구도 뒤처리를 할 사람이 없다. 하기 싫은 일을 노상 떠맡는 김 과장은 천사가 아님이 분명한데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언니들의 수발을 다 든다. 딱하기 짝이 없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도와주려고 나서는 이도 없다. 가끔 그 친절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하튼 그쪽은 그쪽 일이고, 기사님과 박대리 그리고 나. 요즘 우리 회사 직원들이 가서 먹던 한식뷔페가 맛집으로 소문이 나버렸다. 가격 대비 가성비 갑인 밥집이 그야말로 문전성시. 줄 서서 먹는 맛집이 되었다. 족히 몇 백 명은 오는 듯하다. 회전율도 좋고, 재료의 신선도와 메뉴의 다양성, 푸짐하기가 말도 못 하고 더운 음식이 식기도 전에 소진되어 버린다. 사장님의 센스로 공급되는 디저트는 직장인들의 무료함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조개모양의 붕어빵 튀김은 단연코 1등이라 손꼽을 수 있다. 붕어빵을 대량으로 튀겨서 그릇에 쏟아부으시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입천장과 혓바닥 껍질의 보존은 장담하기 어렵다. 추운 날씨에 오늘도 어김없이 식당 밖으로 열 명은 족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오는 타 회사 직원들이 메뉴를 넌지시 흘려주는데...
“닭 볶음탕이야. 닭이 이만해. 실하고 좋아.”
뒤에서 예기치 못해 듣게 된 오늘의 메뉴 탓에 우리의 설렘과 기대가 반으로 떨어졌다.
“대체 누가 먼저 스포하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에요.”
“어제 짜장면이었으니까 오늘 고기가 나올만하지.”
“붕어빵은 안 나오나?”
“날도 추운데 좀 나와주지.”
드디어 맛집으로 입성. 자리를 가득 메운 직장인들. 칙칙한 색의 회사 점퍼를 입은 이들이 대다수다. 그중 사복은 소수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이라고 하기보다는 제조업 생산직에 가까운 이들과 야외에서 작업하는 공사장 인부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밥심이 누구보다도 더 중한 사람들이기에 이 식당의 후한 인심과 고퀄러티 식단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비싼 한 끼가 아니라 정말 유용한 가성비 갑 한 끼가 마음까지 든든하게 해 주니 말이다.
“우와! 오늘 김 나왔어요. 기사님 좋아하는 재래 김. 양념장에 찍어 먹어야지.”
“오! 좋아!”
잘라 놓은 곱창 돌김을 밥 옆에 스무 장은 쌓아 담았다. 칼칼하게 매운 닭 볶음탕이 추운 몸에 열기를 지펴주었다. 얼마 전, 직접 담그신 섞박지도 아직 맛이 들지는 않았지만 아주 맛깔스러웠다. 부침개랑 청경채와 열무나물 무침도 간이 기가 막혔다. 수수하게 생기신 자그마한 키의 사장님은 수시로 식당 이곳저곳을 오고 가며 고객들이 추울까 문을 닫아주고 떨어진 냅킨 통을 채워 주시고 식탁을 닦아주시면서 온정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주방은 이 시간 얼마나 손 발이 잘 맞는지 척하면 척이다. 뜨거운 튀김과 부침개가 계속 채워지고, 국은 그때 그때 국그릇에 퍼 담아 다 먹을 때까지도 식지를 않는다.
“안 되겠어. 이 식당 옆에 커피숍을 하나 내야지.”
“천막이라도 치고 안되면 트럭이라도 끌고 와야 하나?”
우리가 먹는 식당이 맛집이라 자부심이 있다. 자재실 언니들은 이런 식당 음식을 짜네 다네 이따위 음식을 주네 마네 라며 불만이 가득했지만 난 내 미각을 믿었다. 배우 차태현이든 개그맨 유재석이든 탑백귀라 하면서 듣기만 하면 히트 칠 곡을 아는 육감이 있다 하던데 내 혀는 탑 백혀라 자부한다. 이 식당 범상치 않았다. 사장님이 메뉴에 대한 고민이 있고, 그런 고민으로 매일매일 별 다르지 않은 한식 재료로 별 다른 밥상을 차리셨다는 것을 알았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줄을 서서 메뉴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장님! 식당 건물 올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버셔도 우리가 사랑하는 맛있는 밥 한 끼가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청소차 아저씨들도 땀내 나는 공사판 일꾼들도 공장에서 종일 같은 일하는 생산직 외국인 근로자들도 우리 같은 허울 좋은 소기업 사무직들도 사장님 밥을 정말 사랑하니까 말이다. 무료하고 허탄한 직장생활에 우리의 낙이 늘 정성 담뿍 담긴 밥 숟가락에 잠시라도 배(倍)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