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늘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수직선상의 많은 점들 중에 멈춰 선다. 숱한 고민 들이 최상의 답이었다는 확신을 낳았던 선택은 사실, 별로 되지 않는다. 그 고민을 위해 잠깐 멈춰 섰던 그 점들에서 우리는 쉼을 얻기도 하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고민자체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작은 언덕하나 넘는 정도의 애씀으로 견디는 내딤으로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은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주임님.”
“결정은 했어?”
"........”
점심 식사 후, 회사 앞 논두렁을 걷는 일이 박대리와 나에겐 일상이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도, 그저 그런 날도, 속이 상한 날도 우리는 함께 걸었다. 짧은 30분이지만, 회사 생활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그 낙이 얼마 가지 못해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입사동기 박대리 품에는 사직서가 있었다. 과도한 업무량과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등등 이유를 대자면 수도 없지만 누르고 눌러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던 어느 날, 이력서를 냈고 타회사에 서류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하여 입사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계약직이었다. 쓰디쓴 이 현실에는 왜 반전이 없을까.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연봉, 인격적으로 좀 더 신사적인 사람들이 기대되는 곳에 합격하여 보기 좋게 사직서를 날려 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시간은 빨리 가고, 동생은 취직을 할 것 같지 않고, 내년에 새 집으로 이사는 가야 하니까.....”
키만 삐죽하니 마른 몸에 바지춤이 바람에 펄럭이는 여린 박대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 저 깊은 곳에서부터 연민이란 감정이 올라왔다. 박대리와 내가 하는 대화는 대부분 쓸데없는 푸념과 시시콜콜한 엊저녁 찬거리 정도지만 소소한 감정들이 일 년이 넘도록 오고 가다 보니 우리가 대화에 임하는 서로에 대한 감정들은 꽤 깊어졌다.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방법이 다르고 말본새가 가다듬어지질 못해 투박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동료라기보다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십 수년 어린 박대리가 날 어떻게 생각할 지보다 난 그보다 조금 더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녀를 회사 내 계약관계나 상하복종 또는 면피싸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싶지 않았고, 그저 인간으로 대하고 싶었다. 그녀도 이제는 적어도 내 본심을 알아가는 듯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줄 말이 없다. 여기가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약직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이 되면 그때 가도 되지 않겠어? 박대리가 어떤 마음인지 왜 고민하는지 너무 잘 알아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적막이었다. 회사란 곳이 다 그렇듯 남 좋은 일 시키는 곳이지만 그래도 주인장 본인이 직원들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이윤 배분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나누어 줌에 적어도 아까워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사실, 지금 회사는 그 미천한 기대에 전혀 미치지를 못한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정 붙이고 다닐만하고, 경단녀 딱지 떼주어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아직 창창한 나이 청년에게 이런 회사의 그저 그런 오너십은 미래를 걸기에 수준미달이다.
“내가 통닭이라도 튀기게 되면 나한테 와라. 내가 박대리 지금 월급보다는 많이 줄 수 있어. 하하하하”
실없는 소리로 쓴웃음을 짓는 박대리의 마음을 달래 보았다. 2주를 고민한 박대리는 꼬박 하루를 더 고민했다.
“주임님! 저 그 자리 포기했어요. 제가 이런 자리도 못 견디고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요. 그리고 주임님도 계시고요.”
다음 날, 잠을 푹 자지를 못했는지 창백한 피부에 멋쩍은 웃음을 짓는 박대리를 보니 그녀의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고 싶음이 간절해졌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해서 그 어린 청춘에 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그녀가 답답할 때, 푸념이라도 들어줄 수 있는 하찮은 기댐이라도 해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린, 다시 논두렁을 같이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