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mate

-버팀목-

by MAMA

"자기야! 수형이 아버지 돌아가셨어."


때마침이라고 해야 하나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의 아버지께서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그들은 음악쟁이 였던 고등학교 동창, 삼총사다. 삼총사는 이제 아버지가 안 계시다. 고등학교 밴드 기타리스트의 아버지는 지난 설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 돌아가셨고, 보컬 친구 아버지께서는 연중무휴로 일을 했던 남편이 사직서를 낸 날 돌아가셨다. 남편은 드러머였다. 100킬로그램 거구에 장발의 드러머. 후배들이 남편이 지나가면 얻어 맞을까바 홍해처럼 길을 열어주었다던 실장이자 남자 고교 밴드의 기둥. 시아버님의 장례는 제작년에 치렀다. 여하튼 남편이 연차를 낼 필요도 없이 장례식에 갈 수 있도록 하신 베프의 아버님들께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이 와중에 웃픈 해프닝에 웃음이 날 지경인지 울음이 날 지경인지 헛갈렸다.


남편은 사직서를 냈다. 이직한 회사에서 상사의 폭언에 시달리다 못해 사직서를 냈다.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은 결심을 한 계기는 그 상사가 사장을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남편을 계륵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덩치는 곰인데 눈치는 날렵하기가 말도 못 하게 빠른 남편은 불편한 분위기를 못내 이겨내지를 못했다. 이겨낸다고 사실, 뭐가 달라지겠는가. 스스로 나온다고 하니 절차는 일사천리. 씁쓸하기도 하고 그 상사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더러운 꼴 보기 싫어 불황 경기에 백수를 무릅쓰고 가슴에 품고 다녔던 너덜거리는 사직서를 시원하게 던졌다.


물론, 입사 제의를 받은 곳이 있어 믿는 구석의 든든함을 믿었지만 그 든든함은 두 달이 체 가지 않았다. 이런 젠장. 거래처 사장이 남편을 잘 봐서 입사 제의를 했는데 그 사장은 그 악랄한 상사보다 더 하다는 것이었다. 다혈질에 함부로 말을 하고 다른 거래처 손님들이 와 있는데 직원들을 후달군다고 했다. 뭐 이건 진흙탕에 빠질까 싶어 피했는데 똥을 밟았다고 해야 하나.


이쯤 되니 식빵 한 번 날려본 적이 없는 내 정결하다 자부하는 인생에 열여덟 육두 문자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와 내 신앙생활에 흠집을 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얼마 전에 책을 읽었다. 찰리 멍거. 미국 시총 7위 버크셔 해서 웨이 워런 버핏의 동업자 찰리 멍거의 책. 그가 얘기한 3대 원칙. '내가 사지도 않을 것 같지 않은 물건을 파는 곳에서 일하지 말라.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 마지막 세 번째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40대 기억력이 1,3,5,7 한다. 이제는 익숙하다. 치매니 뭐니 의심치 않기로 했다. 갑질의 부당함과 불쌍한 남편에 대한 원인 모를 원망이 자꾸 솟구치는 것 같아 뇌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 메뉴는 콩나물 잡채와 소시지 볶음이었다. 콩나물이 자꾸 들쑥날쑥한 치아에 꼈다.


"자기야! 나 사직서 낸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네라고 했더니 수형이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심란한 마음에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잘했네."


그 한 마디에 저녁밥을 우적우적 욱여넣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 부모님의 죽음이 무덤덤해지는 40대, 잘 달리고 있어도 잘 살고 있나 못 살고 있나 자꾸 돌아보게 되는 시기, 인정하기 싫은 그 갱년기가 아이들의 사춘기와 충돌하여 삐그덕 대는 시기, 근손실은 많고 운동을 해도 체지방 증가 속도를 거스르기 힘든 시기. 40대 중반에 무심하게 던진 상주의 한 마디는 가슴 한 켠을 훅 파고 들어왔다. 요즘 갱년기가 오고 있어서 그런가 성가대에 설 때도 주님의 사랑 때문인지 삶에 치여 괜한 감정에 북받치는 것인지 목이 메어 찬송을 부를 수가 없더니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부러움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그런 친구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속이 썩어 문들어져도 남편이니 시댁이니 흉보며 속의 잡스런 먼지를 털어낼 상대가 없었던 것은 남을 판단치 말고 세치 혀에 재갈을 물리신 주님의 축복이라고 해야 하나.


초등학교 때 나는 정말 소심한 아이였다. 얌전하고 손들어 발표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어떤 남자아이가 나 좋다고 소문을 내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학교도 못 갈 지경이었다. 그래도 공부를 꽤 잘하고, 세침 하게 생겨먹은 터라 아웃사이더는 아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부밖에 모르던 얌전한 내가 나름 독수리 오 형제 같은 무리에 끼게 되었는데 여자 아이들 사이가 늘 그렇듯 삐그덕 대더니 편이 나누어지고 결국 싸움이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에 배신을 당해 무리에서 떨어져 왕따가 되어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어떠하랴. 나와 매 쉬는 시간마다 만나 화장실 가는 친구가 생겼다. 매일 만나도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수업시간마다 쪽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장 친한 친구를 뺏기고 말았다. 지금 돌아보면 뺏긴 게 아니다. 내 성격 탓에 셋이 죽이 맞아 잘 지내지 못한 거다. 거의 2년을 매일 붙어 다닌 둘 사이의 모습이 부러웠던 것인지 우리 사이에 꼭 끼려고 애쓰던 그 얄미운 어떤 녀석은 이간질로 나를 계속 밀어냈다. 그렇게 화장실 메이트와는 어느 순간 이별을 했다.


고등학교 때. 또 또 또. 심지어 교내 도난 사건에 휘말려 초중고를 같이 나온 다른 반이었던 친한 친구가 내 이름을 팔아먹었다. 담임선생님한테 교무실로 불려가고 반 친구들한테는 의심을 받고 그렇게 고3때 친구를 잃었다. 내가 그 아이를 끝까지 믿었어야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하지만, 그 친구는 별다른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교 땐, 그동안의 성격을 고쳐먹어야겠다 싶어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외향형 인간이 되었고 덕분에 대학생활에 활력이 있었다. 원래 이런 나였나 싶었다. 동기들, 선배들 할 것 없이 꽤 친해졌는데 가장 친하다고 자부했던 동기는 결국 배신을 했다. 날 부러워했던, 내 관계들을 부러워했던 그 녀석은 내가 휴학하고 온 사이, 돌변했다. 나와 친했던 선후배들과의 관계에 계속 뭔가 불편한 방해를 하는 경계의 눈초리로 나와 연락하지 않았고 날 피해 다녔다. 대체 이유가 뭐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쯤 되니 그냥 친구 복이 없는 거다. 지지리도 없는 거다.

내가 괜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의 배신에 혼자인 게 편한 웃픈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지겹도록 깨지지 않았던 친구 복 없는 징크스에 난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아니, 외로워했다. 내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나와 내 친구와의 사이에 끼는 얄미운 녀석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날 밀어내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그런 거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우정에 마음을 쏟고 싶지 않았다. 내가 친구로서 매력이 없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친구가 뭐 매력이 필요한 것인가 그냥 좋은 게 친구인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불편해진 모양이라면 그것도 뭐 할 말이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징크스를 깬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강동원, 이동욱,이민호.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내 이상형과는 아주 멀다. 나는 곰 같은 푸근한 사람을 좋아라 한다. 내 체격이 원체 작은 탓에 커다란 사람이 남편이길 바랐다. 딱 남편. 내 남편은 내 이상형이었다. 남편과 나는 미국에서 친구로 만났다. 내가 가장 힘이 들 때, 만난 친구다.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하루 세 시간 쪽잠을 자는 일상에 이별통보를 받고 너덜너덜해진 정신으로 겨우 정신줄 붙들며 살아가고 있을 때,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내게 키다리아저씨 같았다. 파트타임하느라 종일 서 있어 무릎이 아프다 했더니 글루코사민 약을 사다 주었고, 이사를 가면 IKEA에서 산 책상과 책꽂이를 육각렌치로 조립해 주느라 손바닥이 까졌다. 남편은 내게 가장 좋은 걸 먼저 주고, 내 어려움을 푸근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언제 어느 때고 내 편인 친구. 버클리 음대 장학생도 마다하고 나 먹여 살리겠다고 그 좋아하던 음악도 다 포기했다. 단무지 배달부터 시작하여, 두세 시간씩 지하철 타러 다니면서 강의를 하러 다녔던 때도 있었고, 어느 펜션 지기로 주말도 없이 허드렛일을 할 때도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고 비행기를 수백 번 타면서 영업을 할 때도 있었고, 전공도 아닌 일에 뛰어들어 낯선 일을 배우느라 거지 같은 상사에게 치일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꼭 치킨 시키면 무조건 엄마가 먼저라고 잘 튀겨진 닭다리를 내 그릇에 놓아주었고, 어쩌다 공돈이 생기면 내 선물부터 사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요즘 많이 힘들다.


쉬게 해주고 싶은데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서 내가 좀 보탬이 되고 싶은데 가장이라는 무게는 그에게 버겁고 마누라를 바라보는 마음은 불편한지 의기소침해진 어깨가 더 움츠려 든다. 덩치가 큰 내 친구. 정답이 없는 삶이라고 하지만 요즘 더 답을 모르겠다. 내가 열심이라 자부하면서 살아온 나날들이 그를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지고 만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투덜거리며 못되게 굴었던 나를 그는 또 안아주고 어루만져 준다.


내 친구. 이 세상 나의 유일한 친구.

변하지 않는 친구.

그 친구를 위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5a.m

내 자리에서 그저 이 시간을 같이 기꺼이 엄마로 아내로 즐거이 버텨주는 것.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어나라! 아침이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