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2(技術)

by MAMA

봄 바람에 살 속까지 시렸다. 대체 언제 봄이 오는 거냐고 진작에 꺼내 놓은 프렌치코트는 올해도 몇 번 입지 못할 것 같다. 겹겹이 껴 입은 얇은 옷가지들 탓에 몸이 둔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히터를 틀어 놓으면 금세 온기가 들어 차 자재창고가 더워지기때문에 히터를 끄고 일하려면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입사 한 지 6개월에 접어 들었다. 입사동기인 박대리와 목요일 오후 세 시마다 잠깐씩 외출을 할 때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노라 하면서 두런두런 위로와 응원의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서로의 주말 계획, 투자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잡다한 이런 저런 주제로 사내 쓰레기 분리수거 하러 나가는 15분정도의 쉬는 시간을 알차게 채운다.


"주임님은 이번 주에 뭐 하세요?"


"나? 이번 주 우리 막둥이 펜싱대회에 가봐야 해."


"펜싱이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경험삼아 나가보라고 해서."


의아해하는 그 눈빛이 이해가 되었다. 이 한적한 도농(도시와 농촌)복합도시로 이사와 깜짝 놀란 한 가지는 학교마다 붙어 있던 현수막에 쓰여진 글들때문이었다.


ooo 전국 중등부 펜싱대회 우승
ooo 전국 승마대회 우승


이 동네 뭐지?

이마트도 없고, 쿠팡 프레시도 안되는 이 동네에 웬 저리도 고급스런 스포츠?


친구 많은 걸로는 갑을을 논할 수 없는 친구 부자인 막둥이가 이사를 와서는 한 동안 우울해 했다. 레슨 선생님을 구해 다시 내 욕심껏 억지로 이어 온 바이올린 레슨을 끊고, 축구와 농구는 취미고 야구 시청이 특기인 운동 좋아하는 이 녀석 제 생긴대로 살아보라고 농구든 축구든 뛰어 놀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대다수가 남자 녀석들로 구성된 클럽이 보통이었다. 요즘 시대에 남자만 또는 여자만이라고 갈라 놓는 구시대적 발상이 어디있냐 하겠지만 그래도 내 딸 샤방샤방하게 입히고 키우고 싶은 게 딸 둔 엄마 마음 아니겠는가. 안그래도 까무잡잡한 피부와 소탈한 성격 덕에 남자 녀석들이 '형님, 형님'하자 장난치며 따라다니는데 남자 아이들만 북적대는 축구클럽이나 농구 클럽을 보냈다간 진짜 '형님'이 될 것 같아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았다. 그게 '펜싱'이었다.



사실, 막둥이 반에 프로 골프 초등부 선수가 있다고 해서 골프를 가르쳐 볼까 하는 '황새 쫓아 가다가 다리 찢어지는 뱁새' 욕심이 있었다. 다행인 것인지 막둥이는 골프를 죽어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 뱁새 엄마를 살려 주었다. 그리하여 중세 칼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막둥이 녀석도 오상욱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시기와 맞물려 겉멋에 혹 했을 수도 있다. 처음 클럽에 간 날, 묵직한 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검을 들었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어색해서 쭈볏쭈볏 한 발 한 발 조슴스레 걸어 보고는 해보겠다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막둥이의 시작은 그러했다. 그러고나서 8개월이 흘렀고, 난 일을 시작한 뒤로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6년을 하루 같이 쫓아 다니면서 들어 주었던 바이올린 가방에 수북히 먼지가 쌓일 때까지 막둥이는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움을 알기에 일부러 신경을 더 쓰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있다. 그렇게 알아서 혼자 씩씩하게 다녔던 클럽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어머님! 펜싱 대회가 있어요. 한 번 나가봐도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럴만한 실력이 되나요? 이제 반 년이 지났을 뿐인데...."



막둥이는 대회 며칠 전 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장된 탓이었다. 바이올린 콩쿠르, 전국 수영대회, 인라인 대회까지 쫓아 다니며 아이들의 초등학교 생활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엄마 욕심을 채웠던 터라 이제 무슨 대회라 하면 그러려니 하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긴장이 단, 일도 되지 않았다. 그저 경기가 시작되면 언제 끝날 지 몰라 종일 대회장에 머물러야 하기때문에 먹을 거나 야무지게 싸가야지 하는 생각에 전 날 마트에 가서 군것질 거리, 먹기 좋은 바나나, 이온 음료, 당 충전 위한 초콜릿 등을 샀을 뿐이었다. 참! 당일 아침엔 불고기를 볶아 우리 부부가 먹을 도시락도 쌌다. 선수들은 참가 회비에서 값비싼 점심을 사줄테니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부모들은 알아서 허기를 채워야 한다.



대회 날 아침, 막둥이와 8시까지 경기장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분위기였다. 참가한 팀마다 무리 지어 앉아 좋은 자리를 선점하였고, 실내 경기장이라고 하지만 돗자리에 앉아 짐을 늘어놓는 것만큼 편한 게 없어 게이트 앞마다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일찍부터 도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연습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레인을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경기장을 뛰며 몸을 풀고 있었다. 대회 참가 경력이 몇 년 정도 되어보니 딱 봐도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눈에 띄여 그 근처는 얼씬도 하기 싫어 한적한 자리를 찾아 멤 돌다 경기장 끄트머리 즈음에 짐을 풀었다. 대포만한 카메라를 들고 왔던 남편도 이제는 핸드폰 카메라가 제일 좋다면서 몸만 덜렁 왔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 게 아니라 우리의 욕심이 줄어드는 것일 게다.


9시에 예선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긴장을 했다. 우리 막둥이만 몸이 둔한 게 아니라 예선을 치르는 모든 아이들의 몸이 아직 경직되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실력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는 걸 본선에 갈 때즈음 깨달았다. 얼마 전, 막둥이가 클럽에 다녀 온 후 밥을 먹으면서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 펜싱 선수반 언니 오빠들 보면 칼이 용수철 같아. 막 휘어져

예선에 참가한 아이들의 칼은 휘어지기는 커녕 뻣뻣했다. 그 중 몇몇 아이는 기선 제압을 하느라고 공격에 성공할 때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엉거주춤한 포즈와 뻣뻣한 칼, 그 묵직한 헬멧 안에서 들리는 괴성. 오상욱 선수같은 우아한 몸짓에 날렵하고 예리한 칼날이 전혀 생각날리 없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예선을 어쩌다 통과했다. 벌써 세 경기를 뛴 터라 헬멧을 벗은 아이의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도복자체가 무거운데 안에 가슴 보호대를 착용해야 하고 헬멧도 굉장히 무거운데다가 칼까지 들고 있어야 하니 보통 체력갖고는 이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상대의 날카로운 칼 끝을 피해야 하니 뚱뚱해서도 안되고 옆으로 서서 다리를 벌리고 공격하고 수비를 해야하니 하체가 무척 유연해야 한다. 절대 힘을 쓰는 운동이 아니다.


8강까지 올라갔다.

벌써 네 경기 째 치뤄야 하는 막둥이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클럽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대체 너란 녀석은 언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냐. '



유치원때부터 막둥이는 인기가 많았다. 남자 아이들이며 여자 아이들이며 따라다녔고, 허구헌날 친구들이랑 노느라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퇴근시간이 무조건 해가 진 후였다. 경기가 있는 날도 여지 없었다. 그렇게 놀다보니 막둥이 녀석의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많이 풀렸고, 표정도 밝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에 참가한 아이들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분명, 예선때 만났던 상대였는데 칼 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칼이 휘기 시작했다. 여전히 우리 아이의 칼은 뻣뻣했다. 그런 와 중에 선취점을 따냈다. 얼결이었겠지만 기특했다. 남편은 흥분했다.


그러나 이내 연속해서 들어오는 휘어진 칼날에 그냥 꽂혀버렸다. 잘못 피하는 바람에 팔 안쪽을 찔려 주저 앉아 헬멧 속에서 울음이 터진 모습을 보니 속이 상했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고, 경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는 다시 일어섰고, 그 뒤로 용기를 낸 것 같았다. 워낙 승부욕이 강한 아이라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이렇게는 아니지하는 마음을 먹기가 여간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싸워줘서 고마웠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막둥이의 칼이 휘기 시작한 것이.


15:7


아쉬운 스코어가 아니다. 진검승부를 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포기하지 않아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선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점수였다. 우리 아이의 상대였던 선수는 결국, 1위를 했다. 그 아이는 4강 경기 직후, 결승을 연달아 치르면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몸은 날렵하고 유연했으며 예리한 칼 끝은 정확했고, 꽤 긴 시간이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아 4강과 결승 모두 역전승을 거두었다. 우리 아이가 그런 1등과 겨루었었다니 15대 7이라는 점수가 더욱 값졌다.


나 그 언니랑 친해지고 싶다.

1등을 한 선수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 막둥이의 베포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다음 날,


"문주임! 사장님이 담배를 끊을 것 같아 못 끊을 것 같아?"


사장님을 설득시켜 담배를 다시 피우라고 말하고 있던 골초 박차장이 내게 물었다.

동갑내기 사장님은 금연 중이다. 벌써 6개월째. 직원들이 내기를 하고 있다. 큰 사장님은 '못 끊는다' 쪽에 100만원을 걸었다.


언젠가 동갑내기 사장님이 3층 자재실에서 조립 작업을 하고 있길래 적막한 분위기를 깰 겸 대화를 잠깐 나누었던 적이 있다.


"사장님! 금연은 성공적인가요?"


"네. 지금까지는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제는 제 금연에 별로 신경을 안 쓰더라구요."


" 아마, 힘이 빠지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도 사춘기 접어 들면 부모에게 신경을 덜 써요. 부모의 어떤 사정에도 관심이 없죠. 금연하라고 아빠 건강 생각한 것도 다 어릴 때나 그러는 거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잖아요.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것도 이 나이즘 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죠. 힘을 빼면 별 거 아닌거죠. 뭐."


사장님의 표정은 씁쓸했다. 아이들의 관심을 벗어나버린 아빠의 반복된 금연실패.

동갑내기 사장님은 이번엔 금연에 성공할 것 같다. 과반 이상의 직원은 사장님의 실패에 돈을 걸었다. 내가 그 내기에 참여했더라면 10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났을텐데 아쉬웠다.



나의 욕심과 집착에서 멀어진 아이는 아주 잘 크고 있었다.

우리 아이의 칼날도 언젠가 갈대처럼 휘어질 날이 올 것이다.



"엄마! 서울에서도 대회가 있다는데 거기 어떻게 참가하면 돼지?"


처음으로 아이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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