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홀로 하루」 열세 번째
'앤디'인 줄 알았더니 '레드'라고?
안녕? 무척이나 오랜만인 느낌이네. 나 왕따가 된 꼭두야.
내 친구 반칙이야. 약속 위반이거든. 자기를 이야기하는 건 내게 부탁한다더니 나를 쏙 빼놓고 혼자 마음껏 시간여행을 하더라? 그의 어린 날부터 고딩, 재수 시절까지 단숨에.
나레이터 없는 모노드라마, 아니면 진행자도 없는 단독토크쇼 하는 기분이었을 테지?
그가 왜 저러는지 알아? 자기 업보를 찾아보겠다는 거야.
그는 지금의 기막힌 자기 처지가, 아마도 '전생에 우주를 팔아먹은 죗값'을 치르는 중일 거라며 의연한 척 말하곤 했지. 하지만 속마음은 억울했던 거야. 그는 사실 어설픈 운명론자도 못 되거든.
그걸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잊었어? 난 그가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그를 지켜보며 함께 지낸 사이야. 때로 그가 자존심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까지, 난 그의 속내를 너무 잘 아는 유일한 존재야.
'전생의 심판'이란 걸로는 더는 스스로도 설득이 안 되자, 그동안 일부러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거나, 그래서 채 반성하지 못한 '현생의 업보'가 뭐가 더 남아있는지 찾아보는 중이랄까?
자신이,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억울한 '앤디'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유죄가 확실하기에 종신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레드'였던 건가? 하고 있는 거지.
부질없는 짓이야.
부질없고 속절없는 업보 찾기
그는 지금 심각해.
그가 받은 최종 진단이 밝혀지고 나자,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긴 두 딸과 형제들. 한동안은 야속함만 곱씹더니 이제서야 그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딸들이 다 크기를 기다렸다는 듯, 일찌감치 자신의 죄를 두 딸 앞에서 자백하기도 했었지.
"한 아이를 아빠 없이 크게 했고, 또 한 아이는 엄마 없이 크게 한 내 죄가 정말 크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해서 남은 게 그게 전부라며 후회하던 친구.
하지만 어리석은 친구.
조선시대 머슴도 양민이 되려면 속량(贖良)의 값을 치렀다는 것도 모르는. 그게 돈이든 다른 건강한 머슴이든.
그게 아니면 풀려날 기약 없는 옥살이를 아무리 오래 한들, 죽는 날까지 머슴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단 걸 모르나 봐.
제 딴에는 그에게 남겨진 아들이 그 죗값이라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아들을 혼자 키우는 걸로 속량의 값을 대신하려 했던 거지. 그런데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은 옥살이가 끝나기는커녕 더 가혹해지네?
억울한 옥살이가 20년이 넘었는데도 끝날 기미조차 안 보인다고? 오히려 가중처벌 중이라고?
이제 그걸로도 납득이 안 되자, 또 다른 현생의 업보를 찾으려는 거야.
'뭔가 또 있다.' 하면서.
앤디는 20년을 복역했고, 레드는 40년을 복역했어. 그러고 나서야 '지와타네호'라고 하는 자유와 구원의 땅에 도착할 수 있었지. 레드는 자그마치 40년이 걸렸다고.
그가 앤디였든 레드였든 그건 중요치 않아.
둘 다 사회와 국가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건 끝까지 바뀌지 않았거든.
부패한 사회와 이를 방조한 무능한 억압의 국가. 그 축소 현실이었던 쇼생크 교도소에서는 앤디가 무죄란 게 밝혀질 뻔하자, 오히려 그 화근을 서슴없이 제거해 버리지.
다 속절없는 짓이라고.
레드의 가석방 심사
난 영화 이야기나 할게.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 명작이지.
이미 절반은 말했군. 그 둘을 억압한 게 부패한 쇼생크 교도소라는 것. 두 사람의 이름이 앤디와 레드라는 것. 그 둘이 스스로의 의지로 찾아낸 '따뜻한 자유의 땅'이 지와타네호라는 것까지.
사족을 붙이자면 내 친구는 앤디 역의 팀 로빈스도 좋아하지만, 레드 역인 모건 프리먼의 맹렬한 팬이야.
그래서인가?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앤디가 아니라 레드라는 걸 눈치채더니 이 영화를 더 좋아하더라고. 친구는 특유의 기억력 덕분인지 영화를 두 번 보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이 영화는 다섯 번 넘게 보더라.
특히, 레드의 이 대사. 마치 독백 같은.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지. 오래전 어린 바보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나는 그 소년에게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소년은 간데없고 백발의 늙은이만 남았으니까. 이대로 사는 수밖에."
이 영화를 리뷰하겠다는 건 아냐.
그가 좋아하는 이 씬의 갈무리 몇 장면만 스크랩처럼 감상하자고.
앤디는 살인 누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야. 레드 역시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이미 쇼생크에서 복역중이던 선배 무기수야. 억울한 앤디와는 다르게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있지.
무기수는 옥살이 20년이 지나면, 그때부터 10년 단위로 가석방 심사를 받아. 레드는 모두 세 번의 심사를 받게 돼.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짧은 몇 분의 심사.
자유, 얻어내기 혹은 찾아내기
안 억울한 옥살이 20년 만의 첫 가석방 심사. 낡은 옷이지만 최대한 말쑥하게 차려입은 레드.
그들이 묻는 건 늘 같아.
"교화됐나요? 자유를 얻을 준비가 됐나요?"
"꽝!"
10년 후 두 번째 심사. 심사위원들에게 이전보다 더 깨끗하게 보이려는 레드의 호소.
"꽝!"
그 후 앤디가 탈옥해.
두 번의 심사에서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레드가 연거푸 '꽝'을 뽑을 동안, 작은 성경책 안에 숨길 수 있는 아주 작은 손 돌망치 하나로 무려 20년간 한 주먹씩 파서 만든 큰 터널을 기어가서.
치밀한 계획과 간절한 의지로 마침내 자유를 만들어낸 앤디.
여기까지 보고 박수와 함께 일어선 사람들이 더러 있다더군. 주인공 팀 로빈스의 연기, 그리고 극 중에서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성공에 감탄하면서.
그건 마치 1994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그보다 훨씬 전인 1973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명작 '빠삐용'의 오마주 정도로 이해하는 거지.
물론 주제는 같아. 살인 누명의 무기수 빠삐용의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와 성공. 게다가, 당대의 명배우 스티브 맥퀸이 열연한 빠삐용은 실화야. 쇼생크 탈출처럼 소설 원작이 아니라 빠삐용의 회고록이 원작이라고.
하지만, 쇼생크 탈출은 빠삐용의 오마주가 아니고 주인공도 앤디가 아냐. 이미 이 영화는 시작부터 화자인 '나레이터' 레드가 이끌고 있잖아.
쇼생크 탈출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지.
바쁘게 살던지, 바쁘게 죽던지
또 10년이 지난 후, 레드의 세 번째 가석방 심사.
늘 입고 다니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한 레드. 몹시 권태로운 표정.
"너 합격! 참 잘했어요!"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명장면이 이어지지.
얻어진 자유의 끝.
레드가 걸은 길을 먼저 걸어 자유를 얻은 선배 무기수 브룩스는, 그가 '길들여진' 교도소가 그리울 뿐 낯선 자유를 무서워하다 목을 매 자살해. 줄을 묶은 천장에 한 줄 글만 새겨놓은 채.
'BROOKS WAS HERE.'
"브룩스 여기 있었다."
가석방된 레드는 브룩스가 있던 방에서 살며 브룩스와 똑같이 낯선 자유를 무서워하다 브룩스가 새겨놓은 그 한 줄 옆에 또 한 줄을 새기지.
'SO WAS RED'.
"레드도 있었다."
하지만 레드는 목을 매지 않고, 앤디와 약속했던 따뜻한 자유의 땅을 찾아 떠나. 결국 스스로 찾아낸 두 자유의 해후.
영화 스크랩 끝.
난 내 친구가 지금의 부질없는 업보 찾기를 멈췄으면 해. 스스로 가출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던 그의 젊은 날처럼. 자신의 존엄은 자신이 스스로 찾은 자유로 지킬 수 있다는 걸 그가 알아내리라 믿어. 레드처럼.
오늘, 그간 나를 따시킨 그에게 복수한 거 같아 시원하군.
하지만 만약 나를 계속 따시킨 채 혼자 업보 찾기에 골몰한다면, 다음엔 또 다른 영화나 아님 기원 한참 전에 쓰여졌다는 '욥기'를 들고 올지도 몰라. 하하.
탈옥 직전, 앤디가 레드에게 남겼던 명대사가 있죠. 레드가 자살 대신 앤디를 만나러 떠나며, 다시 다짐처럼 읊조린 어록. 우리말로 가장 실감 나게 옮긴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쯤 되려나요?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살기 위해 바쁘던지, 아니면 바쁘게 죽던지"
이것 또한 그의 몫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