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의 타임캡슐」 열 번째
그날의 캠퍼스
1982년. 봄날의 대학 캠퍼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종로학원에서 창밖으로 내다보던 서소문공원의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터져 버렸던 어린 청춘 아닙니까? 그런 제게 캠퍼스의 흙길 꽃길 숲길은, 보는 것도 걷는 것도 감당해 내기 힘들 정도였어요.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새봄 어느 날.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울렁임이 그리워, 학교를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강동에서 신촌은 참 멀어요.
그 넓었던 캠퍼스에 빈틈없이 들어찬 건물과, 백양로를 시작으로 흙길 하나 없는 아스팔트와 대리석길이 영 생소하더군요. 심지어 노천극장의 흙 무대 마당과 잔디 계단마저 온통 반듯한 대리석. 늙은 제게는 차갑기조차 한. 이제는 어디에도 흙 한 줌 없는 캠퍼스.
제 청춘을 떠올리거나 기록하고 싶어진다면, 우리 학교 노천극장은 꿈에서도 빠트릴 수 없는 제 생의 첫 무대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냥 작은 도시일 뿐, 그 교정은 아니더라고요.
저를 울렁이게 하던 캠퍼스의 봄은 없었습니다. 혹여라도 제 쓸쓸함을 들킬세라 조용히 돌아 나왔죠. 터무니없는 향수니까요.
낡은 사진첩 속, 수십 년 전 이쁜 카페를 발견하고는 '아, 오늘은 여기서 차 한잔해야겠다' 하고 집을 나선 꼰대가 이미 제정신은 아니죠.
끔찍한 386 스토리
잘 압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차는 이야기'보다 '꼰대들의 80년대 대학 시절 이야기'를 훨씬 더 끔찍해 한다는 걸 말이죠.
특히나, 이른바 386들의 '꿘' 이야기. 도무지 말을 끊을 줄 모르는 '운동꿘 스토리'. Sports가 아니라 Movement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며.
아시죠? 묻지도 않았는데 멋진 무용담처럼 읊어댑니다. 다들 미리 함께 짜둔 각본이라도 있는 듯, 거의 이렇게 시작하죠.
"라떼는 말야~ 학교 잔디밭에 학생은 없고 온통 사복 경찰과 형사들뿐이었지."
혹시 '이놈도 결국 뻔하구나' 하는 분들? 안심하십쇼.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 화류계에서 놀았다는 딴따라 주제에, 제게 그런 영웅담 따위는 없습니다.
영화 '더 킹'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죠. 목포 날라리 고삐리인 조인성은 '운동권 일진'입니다. 여기서 운동은 Movement 아니고 Sports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범생이들을 따라 공부란 걸 시작하더니, 전교 1등을 찍고는 서울대에 입학합니다. 어라? 저하고 좀 비슷하네요. 순서는 바뀌었지만. 하하.
연애를 합니다. 시대가 그랬던 만큼 무장 전경과 학생 시위대가 대치 중인 시위 현장을 연인과 함께 지나치는데, 갑자기 경찰이 여자를 붙잡네요. '일진 운동권' 출신답게 격투를 벌여 그녀를 구해주고 대신 잡혀가죠.
그 연인은 평범한 여대생으로 위장했지만, 지명수배 중인 전대협 간부였어요. 그녀를 도피시킨 조인성은 같은 '운동꿘 학생'으로 판정받아, 당시 흔하게 꿘 학생이 당하던 강제징집으로 입대하죠.
아, 저하고 정말 비슷합니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학생 운동권'이 가장 조직화한 시기라는 1980년대. 그만큼 학생 시위가 절정을 달리던 그 시대.
학생들은 너나없이 온통 최루 냄새 가득한 캠퍼스를 매일 다녀야 했고, 시위 현장을 지나다 '꾼'으로 오인 포착돼 연행을 당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연행 후 진술 때면, 정말 억울한 학생과 실은 안 억울한 학생이 한데 섞여, 저마다 난 불온한 빨갱이 운동권이 아니라고 주장하죠.
이승복 어린이가 1960년대에 외쳤다는 '난 공산당이 싫어요!'를 20세기 말 대학생이 외치는 진풍경. 속마음으론, '난 전두환이 싫어요!'를 백 번 해도 성이 안 풀리면서. 명석한 꿘 학생의 슬기로운 '위장 자백'이랄까요.
조인성은 영화 속 배우고, 저는 현실 속 학생이기에 차이는 좀 있습니다. 전 싸움도 잘 못하고요. 무엇보다, 조인성만큼 억울하진 않아요.
제가 조인성보다 덜 억울한 사연을 말씀드리죠. '위장 자백' 아닙니다.
이런 말이 있죠.
"젊어서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요. 늙어서도 공산주의자면 바보다."
처음 이 말을 듣고는 그저 흘렸습니다. 한낱 딴따라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설(說)만 무성할 뿐, 정확하게 누가 한 말인지도 알 수 없대요. 저 말에서 '바보요'를 발언자에 따라 '머리가 없다' '마음이 없다' '심장이 없다'라고도 하던데, 뇌가 없든 심장이 없든 그게 그거고.
저 말처럼 젊다는 이유로 공산주의를 넘본 적은 없다는 자백입니다.
물론 바보도 아닙니다만.
마르크스에게 반해 사회주의자가 된 버나드 쇼
저는 '버나드 쇼'라는 극작가를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대단한 분이죠. 극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시나리오로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유일무이한 작가.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로 위대한 극작가라고들 합니다.
작품보다 어록으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숱한 '말'이 있는데 그가 스스로 새긴 자신의 묘비명이 참 유명하죠. 멋있는 말 맞아요. 적어도 제게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다소 의도적 의역이라고는 하더군요. 적절하게 직역하면 이 정도가 맞다네요.
"정말 오래 버티면 이런 일 생길 줄 난 알고 있었지."
제 막귀로는 큰 차이 없습니다. 더구나 화자(話者)도 명백하고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버나드 쇼 아닙니까. 그런데, 그 양반이 이런 말도 했다는 겁니다.
"20대에 혁명가가 되지 않으면, 50대에는 '구제 불능의 화석(impossible old fossil)'이 된다. 20대에 급진적인 혁명가라면, 40대에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up-to-date) 기회'가 있다."
'쇼'답지 않습니까? 애매하게 '젊어서, 늙어서'도 아니고 '20대, 40대, 50대'로 나이까지 딱딱 짚잖아요.
실제로도 '우물쭈물하다 죽는 날'까지, 평생 사회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시작은 20대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인생을 찾았다!"고 자백하면서부터라죠.
유물론자 이전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에 깊게 감명받은 사람. 버나드 쇼.
정사(正史)도 야사(野史)도 없는 학생운동
제가 '쇼'처럼 자본론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됐다는 건 아니고요.
'쇼'가 한 말을 듣고 뭔 짓을 시작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까지 이 나라는, '금서' 자본론은 들고 다니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던 몰상식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어땠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20대에 젊은 급진주의자가 못 되면, 40대에 뒤처지기 시작하다가, 50대부터는 대가리가 굳다 못해 꼴통 화석이 된다는데 무섭잖아요.
시작이야 어떻게 했든, 시대의 트렌드세터로 살아남으려면 '급진이나 혁명' 흉내는 좀 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제 수준에는 단어가 다소 세군요. '진보와 변혁' 코스프레로 바꾸겠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 말하다 보니 "지금 이런 게 뻔한 '꿘 스토리?'" 싶네요. "'제 수준'은 어떤 걸까?" 생각도 들고요.
마치 그날의 진술처럼, 자백 대신 알리바이를 적어내는 느낌입니다.
꿘 이력이 더는 훈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받아들여야죠.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꿘의 추억마저 이제 유물을 넘어 흡사 주홍글씨라도 됐단 말입니까?
꼰대는 야속합니다.
야속함의 이유를 헤아려보니, 이게 다 정사의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까지는 당연히 아니어도, 변변한 '학생운동실록'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죠.
고작 박정희 회고록, 전두환 회고록 따위와, 그들의 반려동물이 적은 수사와 재판 기록, 게다가 그들의 서포터즈가 뿌린 언론 기록이 정사 행세를 하려 하잖아요.
그런데, 원래 정사를 써야 할 학생운동의 주어들은 '라떼는 말야'나 읊어대고 있으니, 야사조차 못 쓰고 있는 거죠.
많이 아쉽습니다.
정사(正史) '학생운동실록'이 있었다면 예상되는 기록.
6월항쟁이 절정을 이룬 1987년 6월 26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한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이 일제히 진행됐다. 경찰은 전국 122개 대학을 철야 수색하고 교문을 철저 봉쇄했지만, 적극 참가를 결의한 학생들은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비폭력으로 맞서며 행진했다.
'6월 비망록' 정도의 야사(野史)가 기록했을 뒷이야기.
1987년 6월 26일 부산시 문현로터리에서 진행된 평화대행진.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 외치며 달려가고 있다. 그날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신문으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1999년 9월 28일 AP통신 ‘20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에서 특종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고 기자의 사진첩은 '그날, 그거리' 책으로 출판됐고, 이 사진이 '아! 나의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이에 더해, 누군가 이 시민의 라이프 스토리나 그날의 에피소드를 찾아보기 힘든 사적(私的) 이야기로 남겼다면 그건 뒷담화꾼의 야담(野談).
야사(野史) 이야기꾼 혹은 야담(野談) 뒷담화꾼
주어들의 기록이 있다고요? 386의 대명사가 되어 여의도, 청와대에 계셨거나 있는 분들? 그 양반들로는 부족합니다.
볕 없는 지하에서, 스크럼 최선두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살아간 분들이 비교할 수 없게 더 많습니다. 386의 대명사를 넘어 명망가 행세를 대리하고 있는 분들이 지닌 훈장과 명예가 있다면, 그 모두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떠나갔거나 살고 있는 그 수많은 분의 몫입니다.
거기에 고문과 노화와 변절로 떠나간 분들까지 더하면, 그 모두에 모두를 더한 것보다 훨 더 많다고 제 기억이 말해주네요.
그분들 모두가 동의한 정사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각자의 야사로 볼만한 기록 몇 개는 기억 납니다.
원래 정사가 있어야 야사죠. 제대로 된 정사가 없으니 야사를 통한 해석도 비판도 못 하고, 저마다 무용담이나 늘어놓고 있는 형편 아닙니까?
역시 아쉽습니다.
'제 수준'은요?
야사와 야담 기록자가 적당히 버무려져 있습니다. 야담의 비율이 많이 높겠네요.
80년대 학생운동의 영웅이나 주인공이 아니기에, 정사나 무용담은 꿈도 못 꾸고요. 그 언저리를 기웃대던 무명의 현장 통신원이나 종군 기자 나부랭이는 되기에, 풍경 스케치나 사적 야담 토크 정도는 가능이랄까요.
제게서 뭔가 386식 말뽄새나 꿘스러운 흉내를 느끼셨다면 제 수준이 그래서입니다. 덕분에 최소한, 뻔해서 지겨운 꿘 무용담은 아닙니다.
이병헌의 '광해'나 유아인의 '사도'로부터, 송강호의 '택시운전사'와 설경구의 '박하사탕'까지가 그렇듯, 정사에 기대어 야사와 야담을 엮어낸 드라마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싶은 거죠.
노천극장을 제대로 된 생의 첫 무대로 삼기 위해 거쳐야 했던 어린 청춘의 사연이기도 합니다.
딴따라의 피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야사 이야기꾼 혹은 야담 뒷담화꾼.
지금 브런치에서 적고 있는 건 감히 '회고록'이라 이름 붙인 제 삶의 소소한 기록입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꿘의 80년대 야사도 야담도 여기서 풀어낼 일은 없을 거 같고요.
그저 제가 지내온 날들을 기록하다가 겹쳐 지나가는 꿘스러운 풍경이 있다면 그때의 스케치 정도가 따라올 테죠.
조인성보다는 덜 억울한 제 자백은 여기까지고요. 지금부터는 조인성만큼 억울하게 운동권 학생으로 판정받은 사연입니다.
시작은 '졸업정원제'고, 전개는 입학 후 불과 한 달 만에 당한 첫 '연행'입니다.
1982년 캠퍼스의 봄날은 개강 첫날부터 저를 배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