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의 타임캡슐」 열한 번째
동대문야구장이 돼버린 대학캠퍼스
캠퍼스의 봄날은 짧았어요.
개강 첫날. 교문에서 가장 오래 걸어가면 교정 끄트머리 언덕 위 '종합관'에 도착합니다. 신입생 교양과목 수업은 모두 그곳에서 한다네요. 입구는 물론이고 계단마다 통로마다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요.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다른 낯선 풍경입니다. 종로학원도 이러진 않았고요. 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보겠다고 떼 지어 모여든 관중들이 동대문야구장에 시속 1km로 입장하는 모습, 딱 그 풍경입니다.
제 대학 첫 수업은 영어입니다. 이럴 수가, 수업마저 따분해요.
강사 모두를 서울대 출신 엘리트 '일타강사'로만 구성한다는 종로학원. 일타강사란 말은 인강과 함께 생겨난 단어 맞죠? 이때는 '스타강사' '대강사(大講師)' '교주(敎主)'라 불렀습니다. '일타' '스타'를 넘어 이름만으로 '전설'이죠.
수천 명의 학생을 달고 다니며 서울 집 한 채 값을 한 달 월급으로 받던 사람들. '영어실력기초' 저자인 안현필도 유명했지만, 이름값은 홍성대가 으뜸이죠. 설립 때부터 종로학원 강사로 활동하다 마땅한 참고서가 없다며 '수학의 정석'을 써낸 전설의 강사.
그런 강사들이니 교주답게 탁월한 강의 솜씨로 학생들을 얼마나 홀렸겠어요. 현란한 분필 스킬은 덤이고요. 종로학원의 전성기라던 중림동 시절에 그곳을 다닌 제게 대학의 영어 수업은 형편없을 수밖에요.
웃기죠? 대학 들어오기 위해 다닌 게 학원인데 저절로 비교질이 되는 꼴이라니.
'꿘'의 유혹이 기지개를 켭니다.
주범은 '졸업정원제'
곧 만나게 될 선배들 판결에 따르면, 모든 사태의 주범은 '졸업정원제'라는군요. 졸업정원제는 골치 아픈 대학가 반정부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전두환이 81년부터 시행한 조치입니다.
구구한 명분과 곁다리 조치가 많았지만, '졸업정원의 130%를 입학시켜 주는 대신 철저한 상대평가로 졸업 전까지 30%를 강제 탈락시켜라.' 이게 핵심이죠.
우리 학교도 한 반에 수백 명 이상의 동시 수업이 가능한 종합관을 급히 지어야 했고, 수업 가는 길은 동대문야구장 입장 줄이 됐지만, 애초에 스타강사하고는 거리가 먼 교수들의 교양수업은 신입생들에게 학원만도 못하다는 비교질이나 당합니다.
'제 점수는요?' '학원 ★★★★★ 대학 ★☆☆☆☆'.
사람들이 자꾸 기억에서 빠트리는 게, 이때 덤으로 '대학생의 과외도 함께 금지'시켰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소 판 돈으로 입학금을 치른 가난한 지방유학생을 시작으로, 과외가 대학생의 주 수입이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수업료도 내고, 밥도 사 먹고, 술도 퍼마실 수 있었으니까요.
직격탄을 맞은 대학가 상권이 흉흉해졌고, 팍팍해진 술집 인심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은 눈칫밥, 눈칫술에 익숙해지고 말았다죠.
'꿘'의 토양이 비옥해져 갑니다.
졸정 폐지와 호헌 철폐
돈길, 청춘길 다 막아놓고는, 졸업하고 싶으면 옆자리 친구 제끼는 서바이벌에 집중하라. 돈이 필요하면 더 열공해서 장학금을 타시고.
'시국 스터디나 시위 따위는 엄두 낼 시간조차 없을 걸? 우헤헤.'
군바리 대가리에서 나온 것 치고는 그럴듯해 보이죠? 아마 행복한 자화자찬에 밤이 짧았을 테죠. 하지만 그게 바로 하나밖에 모르는 새대가리의 한계입니다.
다 떠나서 82년부터 본격화한 대학 시위에서 첫 구호로 채택된 게 "졸업정원제 폐지하라!"입니다. 시위주동자의 첫 샤우팅 90%가 그랬어요. "파쇼 타도"는 그다음 이어지는 순서고요.
오히려 학생들의 생존과 시국 관심을 하나로 결합한 불쏘시개만 던져준 꼴이 됐죠.
87년, 전두환은 '4.13 조치'라며 '호헌'을 선언했지만, 즉시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대규모 6월항쟁을 낳았고, 결국 6.29 항복선언까지 불과 두 달에 그쳤던 것과 판박이입니다.
결국 '졸업정원제'도 제대로 된 강제 탈락 한 번 만들지 못한 채, 84년에 무력화된 후 88년부터 '입학정원제'로 공식 복귀했으니까요.
'꿘'의 밥상이 다 차려졌습니다.
'꿘'과의 조우(遭遇)
'The Show Must Go On'. 교양영어 챕터1의 제목만 머리에 남겼습니다.
이어진 교양국어 수업에서는 신입생들이 아예 대놓고 하품까지 합니다. 이번에는 "여러분은 이미 다 할 줄 아는 국어를 왜 대학에서 배웁니까?"라는 자조 섞인 교수의 질문만 머리에 남겼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서 참 중요했던 학원 수업이 국어와 영어였고, 따라서 전설의 강사도 많았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대학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더 쇼'를 계속하려면 뭔가 다른 걸 찾아야겠습니다. 종합관을 탈출해서 내려오는데 '신입회원 대모집!'을 내건 부스들이 잔뜩합니다.
'아, 서클! 그래, 대학은 이거라고 했어.'
당시는 '동아리'란 말은 없었습니다.
'졸업정원제' 채찍 조치가 실패로 돌아간 전두환은, 83년을 마치며 '학원자율화'라는 당근 조치를 발표합니다. 참 '조치' 좋아하는 정권입니다. 결국 87년 '4.13 호헌' 조치로 망한 전두환.
학원자율화 조치에 따라 84년이 되자, '학도호국단'이 '총학생회'로, '학도호국단장'은 '총학생회장'으로, '축제'는 '대동제(大同祭)'로, '서클연합회'는 '동아리연합회'로, '서클'은 '동아리'로 대학의 단어가 대폭 바뀝니다.
'더 쇼우 머스트 고우 온'을 위해 서클 접선을 시도합니다.
딴따라 출신답게 '락 밴드부'를 찾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아카라카'를 찾았는데 이태원 디스코DJ 이력에는 뭔가 진입 장벽이 느껴지더군요. 'AFKN 청취회'가 그럴듯했지만 정이 안 가요.
이때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는 언덕 뒤 학보사, '연세춘추(延世春秋)'에 들어갔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멀쩡한 작가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애꿎은 서시(序詩)만 읽다가 그만 화장실이 급해지고 말았는지 원. 그때보다 한참 뒤긴 하지만 노벨상 작가 '한강'도 이 학보사 기자 출신이죠.
그렇게 부스를 통한 서클 접선에 실패한 후, 화장실을 찾다가 '대강당'에 입장합니다. 1층인데도 영화 '기생충'에 나올 법한 지하실 분위기와, 습하고 은밀한 냄새가 은은하네요. 그곳은 서클룸 백화점이었습니다.
드디어 '꿘'을 제 발로 찾았습니다.
Fedra의 덫
서클백화점에 입점한 점포들은 은밀한 분위기 말고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클래식한 간판이 '연구회'로 끝나요. '이곳의 서클들은 학술이 목적인갑다.' 했죠.
두세 곳을 들렀는데 뭔가 낯섭니다. 너무 진지하고.
그러다가 현관 입구 구석의 서클이 눈에 띄었는데 '방언민속연구회'랍니다. 이름부터가 왠지 만만하네요. 게다가 사투리를 연구한다니 특이합니다. '관심' 정도면 되지 싶은데 '연구'까지는 과한 것 같아서요.
'이 동네는 진지한 학술 타운이었지.' 새삼 느낍니다.
운명 같았던 인연의 시작. 대강당 102호.
테리우스를 자처하는 분위기 코디를 위해 긴 머리에 긴 코트를 입고 날라리 냄새 물씬 피우는 놈이 들어서자, 다들 낯선 이방인 쳐다보듯 곁눈질하다 "혹시..." 그러길래, "저... 신입생" 하는 순간 엄청난 호들갑을 떱니다.
깜짝 놀랐어요. '아, 여기는 손님이 몹시 드물어 반가움이 과도한 점포로구나.'
저마다 환영한다며 손을 잡아주더니, 제 질문인 방언에 관한 답은 얼버무리고 '민속은 민중의 실제 문화'라는 둥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까먹네요. 슬쩍 보니 찬도 부실한.
'뭐야? 이 분위기?'
'여기도 아니구나!' 느낌에 일어서려던 순간 한 선배의 느릿한 선언.
"오늘은 신입회원도 받았으니 '특별히' 페드라 가서 한잔하자고."
'뭐? Fedra라고?' 음악다방 DJ의 귀가 번쩍 뜨입니다.
'꿘'의 아지트
우리나라에서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60년대에 개봉했던 영화.
'페드라'는 남편과 전처의 아들 '알렉시스'와 금단의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당시까지, 시작부터 결말까지 충격의 연속이었던 영화 내용보다 OST로 훨씬 유명했어요. DJ인 제게는 더욱더.
특히 두 곡의 OST. 페드라가 직접 부른 메인 테마곡 'Love Theme from Fedra'와, 이 영화의 가장 처절했던 자살 엔딩씬에서 바흐의 음악과 알렉시스의 영화 속 절규가 섞이는 'Goodbye John Sebastian'.
가끔 이를 기억하는 분의 신청을 받으면 '몇 안 되는 마니아 또 계셨군.' 하며 틀어주고, 아무 이유 없이 멜랑꼴리해지고 싶을 때 틀면 딱이었던 가출 DJ의 애청 컬렉션이었죠. 주룩주룩 비 오는 날 들으면 죽여줍니다.
'이거지. 이제야 신촌의 젊은 캠퍼스다워지는군.'
어서 도시락 덮고 페드라 가기만 기다립니다. '얼마나 폼나는 카페일까? 근사한 칵테일 바?'
'바'는 개뿔. 시큼한 밀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는 제대로 허름한 주점입니다. 임꺽정 단골 주막의 풍채로 손색없을 주모까지 완벽해요.
구석의 컴컴한 벽을 보니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은 아주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있는데, 영화 페드라의 낡은 포스터 한 장. 그것 외에는 이곳이 Fedra라는 걸 알려주는 간판 따위는 입구에도 어디에도 없어요.
전에 있던 Fedra라는 카페를 인수해서 막걸릿집을 차렸는데, 간판 만들 돈이 없어서 그냥 그때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청춘을 겁탈당한 듯 밀려오는 배신감과 허탈함. 더는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죠. 관악의 일미집, 안암의 고모집, 이대 앞 할머니집과 더불어 신촌의 페드라가 각 학교를 대표하는 '꿘'의 주점 컬렉션이라는 걸.
'특별히' 페드라는 거짓말이었어요.
'꿘'의 아지트. 제2의 서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