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는 팁이 들어오면 홀과 주방 직원들이 6:4의 비율로 나눠가졌다. 팁은 오후 4시에 한번 정산을 하고 그 시간까지 일한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따라 나눠갖는다. 이후 팁은 가게가 영업을 끝내면 정산해서 오후 근무자들끼리 나눠갖게 돼 있었다.
오전 쉬프트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장사가 마무리되고 오후 4시가 되어 나는 팁 정산을하고 있었다.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사모님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왜 돈을 만지고 있어?" "팁 정산하고 있는데요."
사모님이 가게에 설치된 CCTV로 직원들을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좋지 않은 걸 넘어 소름이 돋았다.
어느 날은 전화를 해서 "지금 볼 만들고 있는 손님 있지? 오랜만에 오셨네. 잠깐 좀 바꿔줄래?" 당시 한국손님 한 명이 볼을 만들고 있었다.
사모님은 로컬 아이들이 돈에 손을 댄다고 했다. 계산이 맞지 않는 날이면 가게에서 하루종일 CCTV를 돌려 봤다. 그리고 수시로 계산대에서 오더 현황과 현금 잔액을 맞춰보고는 했다. 나는 얼마의 돈이 비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CCTV까지 돌려볼 정도면 꽤 많은 차이일 거라는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같이 일하는 시간에 손님 대응을 혼자 하게 되다 보니 나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미양손에 보호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나는 사모님에게 여쭤봤다. 그날도 사모님은 계산대에 붙어서 돈 계산을 하고 있었다.
"어제도 금액이 안 맞아요?"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차이가 많이 나요?"
"어. 어제는 차이가 몇 불이나나."
'몇 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몇십 불도 아니고 몇 불이라니..
캐나다 동전들, 페니라 불리는 1센트 동전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만 해도 1센트짜리가 있었다. 이후 제작단가가 가치에 비해 많이 드는 1센트 동전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금 결제를 할 때 반올림을 해서 받는다. 예를 들어 10불 32센트면 10불 30센트를 받고, 10불 33센트면 10불 35센트를 받는다. 그럼 어느 정도 차이는 난다. 현금 거래가 많은 날은 차이가 더 날 수도 있다.계산 실수로 잔돈을 잘못 내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장난을 치는 아이가 있기는 했던 듯하다. 사모님에 따르면 오전에 사라포바를 닮은 아이가일을 할 때 그 친구들이 와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사모님은 CCTV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게에 오자마자 사라포바 친구들이 앉았던 테이블에 입력된 오더내역을 확인했고 3명이 와서 식사를 했는데 단가가 낮은 키즈 볼 하나만 계산이 돼 있었다고 한다. 사라포바와 그걸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모른다. 사모님은 로컬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어도 늘 '가게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그 아이들이 그만둘까 봐 말을 못 했다.
저녁 장사가 끝나면 사모님은 그날 영업과 카드 단말기 팁을 정산하고 홀 직원이 오후 현금 팁을 정산한다. 사모님은 정해진 규정과 다르게 나랑 같이 일하는 날이면 나에게 팁 정산을 못하게 했다.
어느 날 저녁 장사가 끝나고 청소를 한창 하고 있을 때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나를 불러 팁 정산한 것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빨리 마무리를 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나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단가가 낮은 식당이고 현금 팁이 들어와도 몇십 불 정도였다. 내 손에 들어오는 건 거의 5불 미만의 동전들이었고 많이 들어와도 10불을 넘는 날이 몇 번 없었다. 카드 단말기로 들어온 팁은 2주에 한 번씩 페이가 나올 때 같이 정산을 해 주는데 정작 비중이 큰 카드 팁은 총 얼마가 들어왔는지 우리에게 한 번도 공유해 준 적이 없다.
나처럼 영주권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닌 로컬 아이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아이들은 오전 장사를 마무리하고 4시에 현금 팁을 정산할 때 카드 단말기로 들어온 팁 내역을 뽑아 금액을 확인하고 본인 몫이 얼마인지 기록을 해 두었다. 그리고 페이를 받은 후 계산했던 것보다 팁이 적게 들어오면 항의를 했다. 사모님은 몇 번 팁을 고쳐서 다시 정산해 준 적이 있다.
여하튼 확인해 보라 하니 계산한 내역을 확인했다.일한 시간이 맞게 적용됐는지 확인하고 내 몫으로 챙겨준 동전들을 받아 넣었다. 영업 정산을 같이 하고 있던 사모님은 틸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있었고 현금 팁도 같은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다시 부른다. 계산이 안 맞는다고 내가 팁을 내 몫보다 더 가져갔다고 한다. 그리고 내 지갑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동전 팁이 매일 생기기 때문에 동전만 담아다니는 작은 지갑이 하나 있었다. 큰 금액이 아니어서 세어보지도 않고 준대로 그냥 넣었고 그날 내 지갑으로 얼마가 들어갔는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했다.
사모님은 그때부터 영업 정산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날 때까지 나를 붙잡아 뒀다. 낮에는 30분마다 오는 버스가 밤이 되면 한 시간 간격으로 온다. 빨리 마무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가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는데 그걸 놓치면 깜깜한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사모님은 나에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욕심이 많으면 안 된다."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
는 등 뼈에 박히는 명언들을 쏟아부었다. 정산을 하는 와중에 끝없이 쏟아내던 사모님은 몇 번이고 계산을 놓쳐 반복하기를 되풀이했다.
늦게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날 차이가 난 금액은 50센트였다.
이번 편부터 유쾌하지 않은 고용주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영주권을 받기위해 대부분은 한인 고용주와 일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받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미래가 걸린 일이라 부당하고 억울해도 때려치우고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안 겪어본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한 이 영주권 기간을 이민자들은 '노예기간'이라고 부릅니다. 영주권과정에서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자 제가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담을 예정입니다. 불편함을 느끼실 수도 있으니 댓글에 대한 부담 없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