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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Aug 07. 2024

영주권을 위해 필요한 영어점수 만들기

16. 무료 야간 영어학교

몇 달 사이 가게는 손님이 많아졌고 일은 하루하루 바빠져 갔다. 사모님과 매일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았다. 계산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모님을 대신해 내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하는데 손님이 많아지니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 손목이 점점 붓고 아파왔다.


가게에서 일하는 로컬 아이들은 나이가 어렸다. 'dirty blonde'라고 불리는 색이 정말 예쁜 금발 머리를 가진 사라포바를 닮은 아이, 원래 태어나기는 금발로 태어났는데 4살 때 머리가 빨강으로 변했다는 빨간 머리의 발레리나, 하얀 피부에 젖살이 빠지지 않아 말 그대로 베이비 페이스를 가진 아이, 조그마한 체구에 큰 안경을 쓰고 야무지게 말을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아이 등 모두 고등학생이거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었다.


사라포바와 비슷한 색의 dirty blonde hair


사모님은 그 아이들이 일하는 방식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이가 어려 지시를 잘 안 따르고 한국인과 달리 일하는 게 꼼꼼하지 않다는 거다. 뒤늦게 이민해 배운 영어로 주의를 준다는 게 한계가 있다. 나이가 어린것도 있겠지만 지시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 아이들이 자라온 방식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뀔 리가 없다. 불평을 하지만 그 아이들이 없으면 가게 운영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로컬 손님들이 꾸준히 온다는 거다. 그래서 '가게의 상징'인 그 아이들이 오전 쉬프트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사모님은 홀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의 일주일 근무시간을 쪼개어 6일로 나눴고 난 6일 동안 오후 쉬프트를 하며 사모님과 일을 했다. 가게를 믿고 맡길 매니저를 구한다고 했는데 계속 사모님과 시간을 맞춰 일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사모님이 일이 생겨 로컬 아이들이 오후 스케줄에 들어오는 날이면 일을 분담하니 일하는 양이 달랐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저녁 장사를 거의 혼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뒷 마무리며 가게 청소도 내 몫이었다. 그러다 오른쪽 손목에 무리가 왔고 손목보호대를 두르고 일을 하게 됐다. 보호대를 두른 손목 사용이 불편하니 손가락 힘을 이용해 접시를 들고 힘을 쓰는 일은 자연스레 왼쪽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쪽 손목에 모두 보호대를 하고 손가락은 마디마디에 테이핑을 한채 일을 해야 했다.




캐나다 이민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1. 연방과 직접 하는 EE(Express Entry),

2. 주정부와 하는 BC PNP(Provincial Nominee Program, 각 주에서 운영하는 이민정책에 따른다),

3. 연방과 주정부가 결합된 EEBC가 있다. EEBC의 경우 연방 풀(pool)인 EE에 먼저 프로필을 올린 후 BC PNP를 거쳐 최종 연방 승인을 받게 된다.

이민 타입을 먼저 선택하고 온라인 풀에 내 프로필을 올리는데 프로필이 만들어진 후에는 이민 타입을 바꿀 수 없다. 바꿔야 한다면 기존 프로필을 취소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신청 전 어떤 형태의 이민이 나에게 적합한지 잘 알아보고 프로필을 만들어야 한다. 평균 승인기간으로 놓고 보면 연방 EE가 가장 빠르고 그다음 EEBC, BC PNP 순이다.


내가 하게 될 이민은 이중 3번째, EEBC였다. EEBC 중에서도 전문인력 카테고리인 스킬드 워커(Skilled Worker)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당시 연방 풀에 들어갈 수 있는 기본 영어 점수는 셀핍(CELPIP) 기준 읽기/쓰기/듣기/말하기 4점이었지만 스킬드 워커 카테고리는 모든 영역에서 7점이 필요했다.


*CELPIP(Canadian English Language Proficiency Index Program): 캐나다가 UBC와 함께 개발한 영어능력 평가시험으로 IELTS General과 함께 이민을 위해 인정하는 공식 영어 점수


전 과목 점수가 7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영어 공부에 손을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꾸준히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러다 집 근처 세컨데리 스쿨에서 저녁에 영어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캐나다는 신규이민자와 워킹홀리데이 등을 통해 들어온 외국 인력에게 영어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무료 영어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워킹비자만 있으면 누구나 등록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수업은 각 지역 담당 교육청에서 정한 학교에서 정식 채용된 선생님들이 가르친다.


온라인으로 수업 신청을 하안내를 받은 날 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레벨 테스트는 코퀴틀람 컨티뉴잉 에듀케이션센터(Coquitlam Continuing Education Centre) 강당에서 진행됐다. 읽기와 쓰기 시험을 먼저 본 후 현장에 나와 있던 선생님들과 일대일로 말하기와 듣기 테스트를 한다.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나니 현장에서 바로 레벨을 알려주고 수업 등록을 도와준다. 

점수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읽기, 쓰기 점수에 비해 말하기와 듣기가 약했다. 7 레벨까지 있는 파운데이션 과정 중에 나는 가장 점수가 낮은 말하기 레벨에 맞춰 5에서 시작하게 됐다.


내가 다닌 야간 영어수업이 있는 세컨데리 스쿨


영어 공부를 핑계로 사모님께 수업이 있는 이틀은 오후 쉬프트에서 빼달라고 요청을 했다. 영주권이 이제 시작인데 며칠이라도 다른 아이들과 일을 하는 게 내 손목을 지키는 길이었다. 내키지는 않아 했지만 사모님은 스케줄을 조정해 줬다.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프닝부터 오후 4시까지 일을 하게 됐다.


이틀이라도 오전 쉬프트를 하니 조금 살만했다. 오전에는 오후보다 일하기도 훨씬 수월했다. 저녁시간에 바쁘게 일하다 보니 혼자 있어도 점심 장사가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쉬프트가 바뀌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게에 오는 새로운 손님들을 만나게 됐다.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점심 투고를 해가고 밤에는 볼 수 없었던 직장인들이 많이 왔다. 더러 몰에 쇼핑을 나왔다가 들른 가족들도 있고 느지막이 혼자 점심을 위해 들르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퇴근 후 수업을 들으니 하루가 길게 느껴졌지만 다시 학교에 가는 건 기분이 좋았다. 뒤늦게 하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어릴 때 영어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이 나이에 이런 고생은 안 하련만. 예전처럼 기억력이 왕성하지 않아 단어 하나를 외우기까지 수십 번을 반복해야 한다. 단어가 외워져도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선뜻 나오지가 않는다. 한동안 쉬었던 쉐도잉의 필요성을 다시 느꼈다. 일주일에 이틀은 학교에서 4시간의 수업을 듣고 수업이 없는 날엔 퇴근 후 과제와 단어 공부, 그리고 동영상을 보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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