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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Aug 21. 2024

손님에게 칭찬받는 직원이 언짢은 고용주

18. 사모님의 그릇

한동안 사모님은 손님들의 이름과 취향을 금방 파악한 나를 대견해했다. 내가 손님들과 잘 지내고 장사가 잘되자 신이 나서 떡과 쿠키 사이의 오묘한 경계에 있는 음식을 만들어다 주기도 하고 예쁜 꽃그림이 그려진 국자 받침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대부분 손님들은 나와 사모님이 모녀지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양인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닮았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엄마냐고 물어오는 손님들에게는 '엄마 같은 분'이라고 답했다.


나와는 달리 사모님은 "딸이 정말 친절하다."라고 칭찬하는 손님들에게 언짢아하며 "딸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손님들에게 모호하게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이민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손님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것에 전보다 더욱 고마움을 표했다.


아는 지인이 많고 모임이 많은 사모님은 기분이 상해서 가게에 오는 날많았다. 가족 간의 문제로 속상해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에게 그 감정들을 풀어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좀처럼 끝낼 모르는 사모님은 내가 자리를 피하면 작은 키로 졸졸졸 쫓아다니며 내 뒤통수에 대고 끝없이 말을 쏟아냈다. 나와 상관없는 그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훈계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어른이 해주는 말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이나 해 줄 수 있는 이런 귀한 말들을 블리야가 어디 가서 듣겠어. 아무나 해줄 것 같아? 바르게 살라고 인생 선배로서 해주는 말이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새겨들어."


내가 훈계받는 모습을 자주 본 손님들은 사모님의 눈치를 다. 사모님의 눈을 피해 "괜찮아?"라고 묻기도 했다. 뭔가가 불편할 때면 며칠씩 인사도 받지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그럴 때면 사장님도 나를 모른척했다.




사모님은 여러 가지에 있어서 나와 다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특히 팁 문제에 있어서 예민했다. 빠듯한 환경에서 자라 밥 한 끼의 절실함을 겪어본 나는 학생들이나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손님들이 팁을 '못' 줘도 괜찮았다. 사모님은 팁을 '안' 주는 손님들은 상대하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가게 시스템 자체가 손님들이 직접 볼을 만들다 보니 볼에 담는 재료의 양이 제각각이었다. 고기며 야채를 많이 담는다 하는 손님이 보이면 사모님은 곧바로 식재료 코너로 가 손님 앞에서 정색을 하고 서 있는다. 그리고 볼이 완성되면 어김없이 무게를 쟀다. 추가 요금을 받는 과정에서 손님들에게 친절한 설명이 없으니 기분이 나빠서 오지 않는 손님들도 있었다.


볼에 음식을 많이 담는데 팁마저 안주는 손님들은 곧바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 손님들이 가게에 올 때면 볼을 잡는 순간부터 앞에 서서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주시하고 바라봤다.


손님 중에 아빠와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오기도 하고 따로 오기도 했다. 항상 소박하게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혼자 온 아빠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아내와 오래전에 사별을 하고 아들과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짠했지만 팁이 잘 안 나오는 그 부자를 사모님은 좋아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아들은 가게가 있는 몰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 작은 체격의 마른 아이가 제복을 입고 온 모습이 어색해서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고 놀리기는 했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일을 하는 마음이 대견했다.


어느 저녁, 한바탕 손님이 몰렸다 빠져나간 후 식재료 코너를 채우고 있는데 사모님이 테이블에 있던 스리라차 소스 하나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날 저녁 CCTV를 돌려본 사모님은 혼자 다녀간 그 아빠가 소스를 가져가는 장면을 찾아냈다. 그리고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따지러 가기 위해 앞치마를 풀었다.


"아빠가 혼자 와서 한 일인데 아빠랑 직접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씀드리자 사모님은 공감을  듯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아들은 아빠를 앞세우고 가게로 왔다. 2불도 안 되는 스리라차 소스 때문에 어린 아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사모님은 몇몇 잘 안다 싶은 손님들에게는 살갑게 대했지만 그 외에는 무표정했다. 손님이 들어와도 특별히 인사를 하지 않고 계산에 필요한 대화만 다.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계산대에 서서 테이블마다 오더가 잘 입력됐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한 단골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다. 그 손님은 "오늘도 식사 맛있게 했다."며 나에 대한 칭찬을 사모님에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여태 본 서버(server) 중에 최고!"라며 극찬을 해 주었다. 사모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불쾌표정으로 계산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결제를 마친 손님은 민망해하며 가게를 떠났다.


손님이 떠나자
"이 가게 주인은 나야. 사람들이 블리야를 오너라고 생각할 것 같아?"


"왜 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러? 사모님의 뜻이 뭔지 알아? 사모님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집에 앉아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를 사모님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매일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는데 내가 왜 사모님이야?"

"그럼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

"사장님이라고 불러!"

"내가 왜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를 나오는 줄 알아? 여기 아니면 돈 나올 데도 없는데 강아지 같은 우리 손주들 과자 하나라도 더 사주고 용돈이라도 한 번 더 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맡기기로 했던 직원들 스케줄 업무를 안 주겠다고 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스케줄을 쥐고 있어야 일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 복종한다'는 거다. 작은 비즈니스다 보니 주인 입맛에 맞는 직원에게 시간을 더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직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근무시간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팁을 포기할 수 없다'였다. 사모님은 매주 동일한 양의 본인 시간을 스케줄에 넣었다. 로컬 아이들은 사모님이 역할을 별로 하지 않는데도 꼬박꼬박 팁을 가져가는 것에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종종 "너 가게에 있기는 했지만 일 안 했잖아." 하며 입바른 소리를 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게 한 건 나에게만 지시한 일이었다. 주방 직원들은 여전히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필리핀 직원까지도 '싸모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홀에서 일을 하니 손님들에게 '본인이 주인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나에게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주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뭐라 부르든 손님들이 알아들을 리 없고 내가 주인이 아닌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사모님의 그릇을 알게 되고 그 어떤 누구도 믿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았다. 절대 가게를 맡기고 은퇴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스케줄 업무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근무시간을 두고 직원들에게 힘을 행사하고 싶지도 않다. 매니저로 시작해 책임감을 갖고 일을 했던 거지 가게가 탐 나는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의 내 목표는 오로지 영주권이다.








지난주 <CCTV로 직원들을 지켜보는 고용주> 편에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공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글과 브런치북 《랜딩 1년 후, 캐나다 공무원에 랜딩하다》가 함께 메인에 오르면서 많은 분들이 구독을 해 주셨어요. 메인에 오르게 해 주신 브런치와 구독자 여러분, 작가님들, 브런치북 좋아요♡를 해 주신 모든 분들, 이 과정을 함께 해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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