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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l 31. 2024

캐나다에 온 가족, 그리웠던 엄마표 집밥

15. 엄마와 함께 간 시애틀

차가 없던 나는 모도(Modo)라는 회원제 차량 임대 서비스에 가입을 했다. 500불을 보증금으로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차량을 예약해 이용하는 거다. 모도는 광역 밴쿠버에 지정 주차 지역이 곳곳에 있어 웹사이트나 어플을 통해 주변에 어떤 차량이 가능한지 수 있다.


*광역 밴쿠버(Greater Vancouver): 밴쿠버를 포함한 주변 도시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으로 메트로 밴쿠버(Metro Vancouver)라고도 한다. 이 지역에서 '다운타운'이라 하면 밴쿠버의 다운타운을 지칭한다.


메트로 밴쿠버에 포함되는 도시와 인구 ©metrovancouver.org


예약을 하고 주차된 곳에 가서 어플로 차량 사용을 시작한다는 버튼을 누르면 차 문을 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차량을 이용하는 순간부터 모도 시스템에 마일리지가 기록된다. 요금은 사용한 마일리지에 따라 월별로 청구가 되고 기름값은 모도에서 부담한다. 차량 이용 중 기름이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 주유카드를 차량 안에 넣어주기 때문에 차가 필요할 때 이용하기 편리하다. 모도 주차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차를 반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졸업식이 끝난 후 조카는 홈스테이를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캐나다에 올 때보다 짐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밴으로 충분히 옮길 수 있는 양이었다.


얼마 후 언니와 형부는 엄마를 모시고 캐나다로 왔다. 이사 후 혼자 지내던 집이 북적거리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이 느껴진다. 엄마는 집된장, 옥상에서 키운 청양고추, 말린 여러 가지의 나물들뿐만 아니라 배추김치에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 깻잎김치, 고들빼기김치까지 여행가방에 한가득 싸 오셨다.

퇴근하고 오면 엄마표 집밥이 나를 기다렸다. 멸치육수로 끓여내 속을 개운하게 풀어주는 된장찌개, 푹 익은 통김치에 고기 한 점을 돌돌 말아 싸 먹는 등갈비 김치찜, 잘 마른 시래기로 지져낸 칼칼한 생선찜에 포식이 이어졌다. 매일이 잔칫날 같았다. 언니와 형부까지 요리솜씨를 뽐내며 그동안 집밥에 굶주렸던 나와 조카의 배를 두둑이 채워줬다.


언니와 형부는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일을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들을 챙겨나갔다. 낮이면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라파지 호수에 나가 산책도 하며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쉬는 날 모도 차를 빌려 볼일을 보러 나간 우리는 언니가 일하게 될 곳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언니네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이주공사와 계약을 하고 스시집을 통해 LMIA 신청이 들어간 상태에서 캐나다에 들어왔다.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고용주가 노동부에 사전 허가를 받는 과정. LMIA 승인을 받은 고용주와만 일을 할 수 있다.


GPS를 켜고 근처에 갔는데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보이는 스시집을 찾아서 들어가 물어보니 그곳은 아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스시집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답변이다. 근처를 몇 바퀴 돌아도 가게를 찾지 못했다. 분명 위치는 맞는데 이상했다. GPS가 보여주는 그 주소지에 있던 타이 음식점에 들어가 물어보니 그 자리가 한 달 전까지는 스시집이었다고 한다. 불현듯 처음 고용주를 찾아주겠다며 계약금을 받고 잠적했던 이주공사 일이 생각났다.


곧바로 이민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하고 이주공사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야기를 듣고 그분 역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물어본 후 그 스시집이 폐업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미처 몰랐던 상황이라며 오픈 LMIA가 들어가 있는 곳을 어떻게든 찾아주겠다고 다. 두 번째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엄마와 보내려고 했다. 엄마와 한방에서 지내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했다. 알파벳도 가르쳐주고 짧게 할 수 있는 영어 인사를 알려드렸다. 학구열에 불탄 엄마는 내가 일하러 가고 없을 때면 알파벳을 열심히 적어가며 공부하셨다. 쉬는 날이면 가까운 곳들을 돌아다녔는데 사교력 좋은 엄마는 버스를 타면 스스로 "시니어(senior)"라고 말하고 버스비를 면제받으셨다.


엄마와 3박 4일간 록키 여행을 하고 1박 2일 시애틀도 다녀왔다. 시애틀 여행 계획을 잡고 난 후 엄마는 생애 처음 미국땅을 밟는다는 기대감에 설레어하셨다.

여행사에 패키지 예약을 여행 당일 새벽에 단체버스로 국경을 향해 이동했다. 국경에 도착해 잠시 버스에서 대기한 후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섰다. 엄마는 '미국'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제복에 매서운 눈빛을 장전한 직원들 때문인지 꽁꽁 얼어붙으셨다. 그런 엄마를 보니 왠지 아이 같아 웃음이 났다.

"엄마 긴장 풀어~ 웃어봐" 해도 좀처럼 굳은 표정엔 변화가 없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나와 미국땅을 밟고 나서야 환하게 웃으신다.


시애틀에 도착해 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시애틀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타워 앞이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타워에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옆에 있는 '글래스 뮤지엄(Glass Musium)'으로 향했다.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작품들이 화려하다.



천장을 수놓은 아름다운 유리 공예가 조명을 만나 알록달록한 빛을 내는 글래스 터널을 지날 때는 동화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깜깜한 실내에서 오로지 작품만이 빛을 낸다. 



유리로 구현해 낸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보니 경외롭기까지 다. 생각보다 정교하고 화려해 어느 곳 하나 시선을 건너뛸 수가 없다.



어두운 실내에서 나오니 유리로 된 하우스가 있다. 유리공예로 꾸며져 있는 글래스 돔 천장을 통해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 타워가 보인다.



글래스 뮤지엄 관람을 마치고 자유 식사시간이 왔다. 내가 먹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엄마에게 '크랩 팟(crab pot)'을 꼭 사드리고 싶어서 식당 위치를 미리 확인해 뒀다. 식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달려왔지만 유명한 장소답게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양이 너무 많아 남으면 어쩌지 했는데 마침 딸아이와 함께 온 한국 엄마를 만나 동석해 음식을 나눠 먹게 되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테이블 위에 그대로 우르르 쏟아주는 통쾌한 플레이팅 스케일. 특별히 색다른 맛은 아니었는데 저렇게 펼쳐놓으니 골라 집기도 좋고 망치로 두드려가며 먹는 재미가 있다.


내 평생 엄마와 이렇게 단둘이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늘 타국에 있는 딸이 걱정되어 한국에 언제 돌아올 건지 던 엄마는 그렇게 캐나다에서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간 후 한 번도 그 말을 꺼내신 적이 없다. 언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직접 보고 나니 캐나다도 사람 살만한 곳이라고 안심이 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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