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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l 24. 2024

'내가 주인공'인 캐나다 고등학교 졸업식

14. 조카의 졸업식

원래 12학년 2학기를 먼저 하고 이후 1학기를 마친 다음 해 졸업할 예정이었던 조카는 한 학기를 끝으로 졸업을 하게 됐다. 18살이 되어 어덜트 프로그램의 자격이 되었고 선생님들의 가이드에 따라 한 학기만에 12학년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어덜트 프로그램(adult program): 비씨주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으로 프로그램에서 규정한 필수과목을 포함해 80학점을 이수하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제도


계획보다 일찍 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왔던 캐나다인데 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졸업 준비를 하며 한 학기가 지나갔다. 그렇다고 바로 대학에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조카에게 어덜트 프로그램으로 졸업 후 진학할 수 있는 학교들을 먼저 추려보라고 했다. 학교마다 필수적으로 보는 고등학교 이수과목들이 있기 때문에 조카의 경우 지원자격이 안 되는 학교도 있을 터였다. 압축된 학교 리스트를 두고 학교별로 어떤 전공과정이 있는지 본 후 결정하는 게 빠를 듯했다. 그렇게 후보를 추린 후 조카는 몇 군데 대학에 입학지원서를 제출했다.


졸업식은 6월 초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클래식 극장에서 늦은 오후에 열리는 걸로 일정이 잡혔다. 6월 말 캐나다에 오기로 하고 이사며 모든 계획을 잡은 언니네는 갑작스레 당겨진 졸업식을 위해 일정을 바꿔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카는 나에게 졸업식 참석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초청장을 구매해야 한다고 한다. 가족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데 당연히 축하해 주러 가야 할 일이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근무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 사모님이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다. 졸업식 당일날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다운타운로 가야 했기 때문에 출근길에 졸업식 의상과 신발을 챙겨 나갔다. 일이 끝나자마자 가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나는 서둘러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다운타운 도착하니 졸업식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꽃을 사야 하는데 캐나다에서는 한국처럼 전문 꽃집을 찾기가 어렵다. 식료품을 파는 마트의 한쪽 공간에 꽃매장이 조그마하게 있는 게 대부분이다. 작은 화분들과 함께 미리 만들어놓은 꽃다발 중에 골라야 한다.


마트 내부에서 판매되는 꽃다발


서둘러 마트에서 꽃다발 하나를 사들고 곧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앞에서 조카와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홈스테이 아주머니 오셨다. 감사히도 졸업식에 참석해 주셨다. 아주머니는 졸업식이 끝나고 조카를 데리고 가족들과 함께 축하 저녁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은지 물으셨다.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조카가 졸업식 준비를 위해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고 난 후 우리는 극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극장은 내가 컬리지에서 공부할 때 매일 지나치던 곳이다. 지나칠 때마다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 안내문이 걸려있던 이곳을 조카의 졸업식 덕분에 처음 구경을 한다. 1927년에 개관했으니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오디토리움 스타일의 좌석수가 3천 석에 가까운 큰 극장이다.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클래식 극장 Orpheum


무대 측면엔 포디움이 있고 그 뒤로 수많은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학교 강당에서 하는 한국의 졸업식과는 다른 풍경이다.


잠시 후 백파이프 연주자를 따라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학생들이 줄을 지어 오디토리움 가운데 통로를 통해 입장한다. 그 가운데 조카의 모습도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조카가 수줍은 듯 씩 웃어 보인다. 막 태어나 울어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을 한다. 내가 나이를 먹은 건 잊어버린 채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에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선두에서 졸업생을 이끌고 입장하는 백파이프 연주자 ©bagpipervancouver


입장을 마친 학생들은 무대 뒤편으로 모두 사라졌다. 곧 사회자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졸업생을 호명하기 시작한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학생이 무대 뒤에서 나오는 동안 스크린에는 학생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을 띄워준다. 개인별 성과와 장래 희망 그리고 졸업 후 어떤 일을 할지, 대학을 가는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진학하며 무슨 공부를 하게 될지 등을 소개한다.


무대에 올라온 학생의 소개가 끝나고 졸업장이 수여되고 나면 축하해 주기 위해 온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잠깐의 시간을 준다. 오로지 그 학생만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짓궂은 학생들의 사진 포즈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진 촬영까지 마친 학생은 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고 나면 의자가 꽉 채워지고 교장선생님의 마무리 말씀이 이어진다.


이렇게 예쁜 로리도 참을 수 없게 하는 '내가 주인공이야' 고등학교 졸업식 - 길모어걸스 중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학생들 모두 '내가 주인공이 되는 졸업식'이다.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참석한 가족이나 친구들 역시 축하해 주러 온 졸업생이 뿌듯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러 높은 분들의 거창한 인사말 대신 학생 한 명 한 명을 소개하고 그 순간을 추억으로 담을 수 있도록 사진촬영 시간을 주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졸업식은 끝이 났다. 식이 끝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 졸업생들이 환호하며 학사모를 힘껏 공중에 날린다.


학사모를 날리며 끝이 나는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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