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풍국 블리야 Jul 10. 2024

한국과 너무 다른 캐나다의 이사

12. 짜장면 없는 이사하는 날

내용 중 오렌지색 용어는 아래 추가 설명이 있습니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홈스테이를 했던 나는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분이 내놓은 다운타운의 스튜디오로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 있던 가구와 가전, 생활용품들을 모두 넘겨받고 덕분에 대미지 디파짓만 내고 집주인과 바로 계약을 했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계속 살아왔던 터라 집을 구할 때 그리고 이사할 때 어떤 과정들을 겪는지 잘 알지 못했다.


집을 구하는 과정도 한국과 많이 달랐지만 이사하면서 챙겨야 할 것들도 너무 달랐다. 집이 정해진 후 리얼터(부동산 중개업자로 거주기간 동안 집주인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를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월세의 50%를 대미지 디파짓으로 냈다. 그리고 임대기간 동안의 세입자 보험들어야 했다. 세입자 보험은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 리얼터로부터 어디에 가야 보험 가입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조건으로 가입해야 하는지를 물어봤다.


리얼터로부터 들은 정보로 보험회사 BCAA가 있는 곳을 검색하고 출근길에 들르기 위해 여느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도착해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다 내 차례가 되어 카운터에 갔다. 직원은 바로 렌트계약서부터 보여달라고 한다.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들을 확인하고 건물이 언제 완공된 건지, 몇 층 건물인지, 건축 자재는 목재인지 콘크리트인지, 베란다에서 바비큐는 가능한지, 방은 몇 개인지, 욕실은 몇 개인지, 몇 명이 살건지 등을 묻는다. 리얼터로부터 받은 보장금액을 직원에게 얘기하니 보험료가 얼마인지 바로 나온다. 1년 치 보험료를 카드로 납부하고 발급받은 보험증서를 곧바로 리얼터에게 보냈다.


이사 전날 일을 마친 후 ATM에 들러 이사비용으로 쓸 현금을 찾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입주하면서 줘야 할 1년 치 렌트비로 체크 12개*를 적어 가방에 챙겨 은 후 아직 끝내지 못한 짐 싸기를 서둘렀다. 책상의 짐들은 미리 박스에 싸두고 옷가지도 이민가방과 여행가방에 담아놨지만 아직 싸야 할 짐이 한참 남았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삿짐센터에서 가져올 박스에 담을 냉장고와 욕실 용품들을 제외하고 짐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서둘러 청소를 시작했다. 주방과 욕실, 옷장, 선반, 캐비닛을 깨끗이 닦고 블라인드에 쌓인 먼지들도 닦아낸다. 유리창까지 닦고 나니 어느덧 이삿짐센터에서 도착했다.


체크북 ©aajkaviral
*12개의 체크를 써주지만 계좌에서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건 아니다. 렌트가 시작되는 달부터 1년간 매달 1일 결제가 되도록 체크 날짜를 다르게 써주기 때문에 그 날짜 전에는 체크를 현금화할 수 없다.
자동이체가 일반화된 지금은 체크를 일일이 써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자동이체를 위해 발급해 주는 은행 서류를 전달하면 된다.
체크는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면 내 이름과 계좌정보가 인쇄된 체크북(cheque book)을 제작해 발송해 준다. 체크북을 받기 위해서는 계좌에 상시 넣어두어야 하는 미니멈 밸런스(minimum balance) 요건을 맞춰줘야 한다. 모두 사용한 후에도 요청하면 별도의 비용 없이 제작을 해 준다.


※은행계좌 오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낯선 땅에 피붙이가 있다는 것⟩ 에피소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저씨들이 큰 짐부터 들어 옮기기 시작하고 그 사이 나는 냉장고에 있던 음식과 욕실 용품들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무브아웃 인스펙션을 마쳐야 이곳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짐이 어느 정도 빠지고 아저씨들이 남은 짐들을 옮겨 차에 싣고 정리하는 동안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아저씨들 오후 일정이 있고 들어가는 곳 인스펙션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기 때문에 숨고를 틈이 없다. 시간차를 줄이기 위해 청소가 끝나갈 때쯤 미리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마무리가 되자 매니저가 도착했고 인스펙션이 시작됐다.


매니저는 일일이 주방과 욕실 캐비닛 문을 열어보며 상태를 확인한다. 전기 스위치도 모두 켜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냉장고는 잘 작동이 되는지 깨끗이 청소가 되었는지 열어보고 싱크대나 변기도 막힘이 없는지 물을 내려본다. 베란다까지 다 둘러본 후 체크리스트에 모두 확인을 마쳤다는 사인을 다. 대미지 디파짓을 돌려받기 위해 이사하는 곳 주소를 적어주고 키를 반납하니 모든 절차가 끝났다. 이사할 곳에 좋은 레퍼런스를 해준 매니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건물을 나왔다.



이렇게 다운타운을 떠나는구나. 3년 넘게 다운타운에 살면서 누렸던 게 많은데 떠나려 하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벗어나기 전 보이는 다운타운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동안 이사 트럭은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캐나다에서 이사는 처음이지만 이사 트럭을 타고 가니 왠지 한국에서 이사하는 날과 같은 기분이 난다. 햇살이 참 좋다. 밤을 꼬박 새우고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차에 앉아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긴다.


코퀴틀람 센터에 들어서니 곧 콘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도착해 트럭을 주차하고 무브인 인스펙션위해 이사 들어갈 유닛(unit)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이사 나올 때 매니저가 인스펙션 하는 과정을 유심히 봐둔 나는 일일이 캐비닛을 열어보며 상태를 확인한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도 확인을 하고 오븐과 식기세척기는 사용법을 물으며 잘 작동하는지 봐둔다. 물을 모두 틀어보고 변기도 내려보고 전기 스위치도 작동해 본다.


어?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등이 아예 없다.
집이 잘못 지어진 건가?


놀란 가슴에 리얼터에 얘기하니 스탠드를 아웃렛에 꽂아야 한단다. 전기 스위치가 방 내부에 있는 아웃렛 하나와 연결되어 있다. 캐나다의 새 콘도는 이렇구나..


마스터룸 욕실 천장에 전구가 '진짜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 있다. 베란다로 이어지는 문틀에도 페인트가 벗어나 칠해져 얼룩처럼 보인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체크리스트에 모두 명시를 해 두었다. 욕실 전구는 며칠 이내로 교체해 주겠다고 한다. 인스펙션을 마친 후 1년 치 렌트비를 전달하고 집 키를 받으니 비로소 (월세지만) 내 집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아저씨들은 나의 입주 시간에 맞춰 고정으로 쓸 수 있도록 예약된 엘리베이터로 큰 짐부터 올려시작했다. 복도에 쭉 늘어놓았던 짐들이 인스펙션이 끝나면서 안으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새집이라 스크래치가 생기지 않게 모든 게 조심스럽다. 이삿짐센터의 박스를 비워줘야 하기에 냉장고와 욕실 짐을 먼저 풀고 나니 당장 정리하지 못하는 짐들로 점점 집이 뒤덮여간다. 아휴.. 한국의 포장이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추가시간이 생기지 않도록 4시간 안에 이사를 마무리하려니 마음이 또 급해진다. 서둘러 남아있는 자잘한 짐들을 몽땅 들여놓고 기본 이사비용드렸다. 트럭을 얻어 타고 온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팁도 챙겨드린다. 아저씨들이 떠나고 혼자 남으니 어지럽게 놓인 짐들에 심난하기도 하고 새집에 이사를 온 게 신나기도 한다.


저층에 살다 고층 콘도로 오니 뷰가 다르다. 거실 유리 너머로 라파지 레이크가 보인다. 금강산식후경이라는데 종일 굶은 터라 뱃속이 난리가 났다. 이런 날은 바닥에 신문지를 쫙 펼쳐두고 아삭아삭한 단무지에 장면 한 그릇 후루룩 먹어야 하는데... 식후경이고 뭐고 졸음이 미칠 듯이 쏟아진다.


가을의 라파지 레이크 @flickr jbchang28



캐나다 이사 용어 설명서


대미지 디파짓 damage deposit

대미지 디파짓은 말 그대로 집에 손상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받는 보증금이다. 물리적 손상도 있지만 월세가 밀릴 경우 등의 금전적 손상도 해당한다. 대미지 디파짓은 법적으로 한 달 월세의 50% 이상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집에 손상이 생겼을 경우 복구 비용으로 보증금을 사용하는데 실비용으로 얼마를 제하고 주기도 하고 피해가 클 경우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월세가 늦어지면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보전하고 퇴거 명령을 할 수 있다. 월세를 안 내고 버티다 도망가거나 집을 망가트리고 슬쩍 야반도주한다면 보증금은 포기하는 행동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피해금액이 클 경우 법적조치가 들어갈 수도 있다.

집을 손상 없이 깨끗이 쓰고 월세를 밀리지 않으면 이사 나갈 때 이 돈을 돌려준다. 보증금은 이사가 마무리되고 반환 절차가 끝나면 이사한 새집으로 체크를 보내주는데 보통 2주가 걸린다.


세입자 보험 tenant insurance

캐나다는 렌트를 할 때 세입자 보험을 들어야 한다. 더러 요구하지 않는 곳들도 있지만 콘도는 100% 다.

세입자의 과실로 물이 새거나 불이 났을 때, 도둑이 들었거나 등의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집에 큰 손상이 가거나 도난품이 발생했을 때 피해 복구를 위해 하는 조치다. 도난품은 개인의 귀중품도 해당이 된다. 피해가 커 복구하는 동안 임시주거지가 필요할 경우도 보험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계약 후 보험가입 확인서를 집주인에게 제출해야 계약절차가 마무리된다. 피해보상 가입금액은 집주인이 제시해 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금액으로 가입하면 된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세입자 보험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있다. 보험료가 조금 더 저렴하고 1년 일시불이 아닌 매월 결제도 가능해졌다.


무브아웃 인스펙션 move-out inspection

이사를 나갈 때 하는 인스펙션의 목적은 손상된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집안이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는지도 점검한다. 캐나다는 렌트가 1일에 시작하고 이사를 나가면 바로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해주고 나가야 한다.

무브아웃 인스펙션은 이사 들어올 당시 사인한 무브인 인스펙션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인스펙션에서 손상이 발견되면 대미지 디파짓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인스펙션이 끝나면 사인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사본을 꼭 받은 후 키를 돌려주고 나오면 된다.


무브인 인스펙션 move-in inspection

이사를 들어갈 때 하는 인스펙션은 세입자가 '매의 눈'이 되어야 한다. 미처 못 보고 입주했는데 나중에 알게 되면 고스란히 내가 입힌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나 리얼터가 인스펙션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온다. 주방, 욕실, 방, 거실, 베란다 등 공간마다 항목들이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하나씩 보면서 스크래치가 없는지, 얼룩은 없는지, 전기는 잘 들어오고 전구가 나간 곳은 없는지, 물은 막힘없이 잘 나오는지 꼼꼼하게 본 후 이상이 있는 곳은 체크리스트에 꼭 명시를 해 두어야 한다. 모든 확인이 끝나면 서로 사인을 한 후 사본을 받아두면 된다.


엘리베이터 예약

콘도는 이사를 들어가고 나갈 때 엘리베이터 예약을 해야 한다. 다른 세입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같이 쓰는 엘리베이터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1시간 30분 동안 엘리베이터를 고정으로 쓸 수 있게 해 주고 엘리베이터가 손상되지 않도록 벽면에 보호막을 둘러준다. 트럭에 짐을 싣고 내리는 로딩존(loading zone)도 그 시간에는 내 이사 트럭만 쓸 수 있게 해 준다.

이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무료로 정시켜 주는 콘도도 있지만 'move-in fee' 또는 'move-out fee'라 하여 비용을 받는 곳도 있다. 보통 100불에서 150불 정도고 비용이 있다면 내야 한다.

이삿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좋은 시간대에 사용을 하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기본 이사비용

캐나다의 이삿짐센터는 기본요금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4시간에 인부 2명이 붙는데 300불이라면 초과시간이 발생할 때마다 인력당 시간별로 요금이 추가된다. 따라서 이사견적을 받을 때 기본시간, 투입인력, 초과될 경우 시간당 인건비, 세금이 포함인지 불포함인지 등을 확인해둬야 한다.

이사할 때 살림의 양을 고려해 짐 옮기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몇 명의 인력이 필요할지 생각해 두는 게 좋다. 엘리베이터 사용 연장이 어렵기 때문에 잡아두고 버리는 시간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인스펙션 역시 엘리베이터 예약시간과 맞춰서 잡아야 이사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잠깐! 캐나다에는 펫 디파짓(pet deposit)이 있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캐나다 사람들은 집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많이 키운다. 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강아지나 고양이가 발톱으로 바닥이나 벽, 방문을 긁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기 위해 휘두른 발톱에 걸려 창문 블라인드가 망가지기도 한다. 특히 목욕을 시키면서 빠진 털이 하수를 막는 건 흔한 일이다. 이렇게 사람이 아닌 반려 동물로 인하여 집에 손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캐나다는 펫 디파짓 제도가 있다. 대미지 디파짓과 마찬가지로 손상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엔 돌려받는다.

이전 11화 월세를 구하는데 신청서를 쓰는 캐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