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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l 03. 2024

월세를 구하는데 신청서를 쓰는 캐나다

11. 집 구할 때 필요한 레퍼런스

2주간의 트레이닝이 끝나고 나는 정식 직원이 되었다. 팁도 받기 시작했다. 오직 출퇴근이 문제였다. 매일 왕복 6시간을 출퇴근에 쏟아부어야 하는 게 너무 큰 일이었다. 근무시간을 길게 받기 위해서도 집을 옮겨야 했다. 내 직장 위치도 생각해야 했고 언니가 캐나다에 와서 적응하기 쉬운 곳을 고민하다 로히드 한인타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코퀴틀람 센터로 지역을 정했다. 메이플 릿지는 코퀴틀람 센터 스테이션에서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나면 퇴근하는 길 버스에서, 스카이 트레인에서,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도 크렉스리스트에 올라온 포스팅을 보고 괜찮아 보이는 곳들은 이메일을 보냈다.


캐나다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동산과 중고물품 거래 온라인 플랫폼 크렉스리스트


캐나다에 온 후 줄곧 한 곳에서 살다 보니 집을 알아볼 일이 없었던 나는 높은 집값에 새삼 놀랐다. 당시 나는 다운타운의 스튜디오에 살고 있었는데 들어갈 때부터 900불이었다. BC주는 현 세입자에게 월세를 올릴 수 있는 요율을 법적으로 제한하는데 2016년 당시 최대 인상률은 2.9%였다. 그 말은 즉, 2.9%까지는 월세를 올려도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집주인은 3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월세를 올린 적이 없다. 큰 차이는 아니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copevancouver


이메일을 열심히 보내보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어쩌다 답변이 오면 출근 전이나 쉬는 날 약속을 잡고 집을 보고 왔다. 집주인이나 주인을 대신해 집을 보여주는 부동산 중개업자(리얼터, realtor)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꼭 물었다. 월세를 받아야 하니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 있었다.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에 카펫이 깔려있는 걸 제외하면 방이나 거실의 크기도, 주방 시설도 둘러본 것 중에 제일 괜찮았다. 관심을 표하니 종이 한 장을 주며 작성해 달라고 한다. 렌털 신청서였다. 월세집을 구하는데 신청서를 작성하라니.. 심지어 신청서에는 내가 월세를 얼마 낼 것인지 묻는 부분이 다. 포스팅에 올라온 금액은 있지만 높게 부르는 사람에게 집을 주겠다는 거다. 월세도 경매처럼 가격을 흥정하다니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BC주 렌털 신청서 ©TenantsBC.ca 현재 비씨주에서 통용되는 렌털 신청서는 금액을 제시하는 부분이 사라지고 레퍼런스란도 바뀌었다.


집 구하기를 어렵게 하는 다른 하나는 레퍼런스(reference)였다. 현재 집주인과 과거 집주인의 이름, 연락처 3개를 제공해야 했다. 나는 단 한 명, 당시 살고 있는 집의 매니저 연락처밖에 줄 수가 없었다. 내 레퍼런스가 빈약해 보여서인지 높은 금액을 적어내지 않아서인지 신청서를 내도 나에게 집을 주겠다는 사람이 없다.


사모님이 어느 날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걱정을 해 오셨다. 집을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하니 선뜻 레퍼런스를 해주시겠다고 한다. 고마웠다. 나의 집 구하기는 계속 됐다. 집이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집주인에게 나가겠다는 노티스(notice)를 한 달 전에 줘야 하는데 고민이 됐다. '노티스를 줬는데 집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집을 구했는데 노티스 시기를 놓치면 자칫 한 달 렌트비를 더 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노티스 규정:
- 이사가 8월 1일이면 7월 1일 이전에 노티스를 줘야 한다.
- 만약 1일이 지난 7월 중 노티스를 주게 되면 페널티 없이 집을 뺄 수 있는 날짜는 9월 1일이 된다.
- 8월 1일 이사를 목표로 7월 1일이 지나 노티스를 주고 그 집에 들어올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8월 렌트비를 내야 한다.


노티스 규정이 이렇게 되는 것은 캐나다 주택시장의 특성에 이유가 있다. 캐나다는 전세가 없다. 집을 구매하는 게 아니면 모두 월세 임대, 즉 렌트다. 렌트는 1일 날 시작하고 간혹 15일에 시작하는 곳도 있다.


렌트 시작날 전후에 이사가 몰리다 보니 이삿짐센터를 예약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했다. 집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각오로 집주인에게 한 달 노티스를 줬다. 그리고 이삿짐센터 한 곳에 예약을 해 두었다. 당장은 확정할 수 없으니 혹시 다른 예약이 잡히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러던 중 코퀴틀람에 공사 마무리가 아직 덜 끝난, 막 입주가 시작된 콘도에서 올라온 포스팅을 보게 됐다. 신축인 데다 버스 정류장과 스카이 트레인 역과도 가까워 위치가 좋았다. 이메일 답변을 받고 주말에 집을 보러 갔다. 그날따라 비바람이 엄청 불었다. 자꾸 뒤집어지는 우산을 부여잡고 걷는데 갑자기 궂은날 집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을 보러 간 시간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몇 명 더 와있었다. 집을 보여준 사람은 그 집 관리를 맡은 리얼터였다. 콘도는 사진으로 본 그대로 깔끔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오븐,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모든 가전이 빌트인으로 들어가 있고 주방 캐비닛과 마루 바닥도 색이 밝아 좋았다. 수납공간도 있고 옷장크기도 충분했다. 난 그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집을 둘러본 사람들 중 한 그룹이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하고 리얼터를 붙잡고 있자 마음이 급해진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난 뒤에도 애써 리얼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제 일을 시작했는데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도 해본다. 급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신청서까지 작성해 제출을 한다.


당시 입주했던 콘도 내부


며칠 뒤 리얼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높은 가격을 써서 낸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집을 주고 싶다고 한다. 집주인도 돈 얼마보다 새집을 깨끗하게 쓰고 유지해 줄 세입자를 원한다고 한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을 며칠 안 남겨두고 그렇게 나는 이사 갈 집을 구했다. 미리 예약해 둔 이삿짐센터는 그날 다른 예약이 잡히기는 했지만 오후 반나절이면 가능한 이사여서 나는 아침 일찍 이사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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