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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n 27. 2024

영주권을 지원해 줄 고용주를 찾다

10. 여정의 시작


조카의 학교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민 컨설턴트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내 영주권을 지원해 줄 고용주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주공사가 있는 로히드 Lougheed로 갔다. 로히드는 한인 비즈니스들이 많이 모여 있어 소위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곳이다.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 이민 컨설턴트는 이미 내가 영주권을 받은 것처럼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연세 지긋한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은퇴를 원해서 가게를 믿고 맡길 매니저를 찾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환대산업 분야의 매니저 경력이 있는 나에게 딱 맞는 자리라며 랭리처럼 고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식당은 메이플 릿지 Maple Ridge에 있다고 한다.


"메이플 릿지가 어디예요?"


*환대산업 Hospitality Industry:
- 라틴어로 호텔은 손님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고 격식 있게 환대, 접대한다는 의미다.
- 여행, 항공, 호텔, 외식, 카지노, 컨벤션, 크루즈, 테마파크 등이 환대산업에 속한다.


3년간 캐나다에 있었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이력서를 준비해 면접을 보기로 하고 면접 당일 이민 컨설턴트와 함께 메이플 릿지로 향했다. 다운타운의 컬러풀한 색감에 길들여져 있다 이곳에 오니 한적한 느낌이 들면서 어쩌면 내가 '길모어 걸스 Gilmore Girls'를 보며 꿈꿔오던 작은 시골마을에서의 삶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식당은 쇼핑몰에 있었다. 쇼핑몰 안에는 은행, 약국, 통신사, 리쿼 스토어, 신발 가게, 액세서리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식당들이 있었고 식당 바로 옆에 스타벅스도 있었다. 커피 마니아에게는 일할 곳 옆에 커피숍이 있다는 것만큼 반가운 건 없다. 사모님이 가게로 들어서는 우리를 반겨준다. 준비해 간 이력서를 보며 내 경력에 대해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특히 나의 매니저 경력을 관심 있게 물으셨다. 한 시간 넘게 인터뷰가 이어진 끝에 사모님은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믿음이 간다고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신다. 저녁에 사장님과 상의를 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난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연락을 받은 나는 바로 트레이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2016년 3월, 난 다운타운에서 메이플 릿지로 출퇴근을 하며 그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스카이 트레인과 버스를 타는 시간, 중간에 환승을 하며 기다리는 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더하니 편도 3시간이 걸렸다.

일의 강도는 랭리 스시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쁜 경험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새삼 혹독했던 랭리에서의 하루일이 고맙게 느껴졌다. 식당은 한쪽에 재료 코너가 있고 원하는 재료와 소스를 손님이 직접 볼에 담아 오면 쿡하는 직원들이 그릴에서 요리를 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내가 주로 할 일은 50여 가지가 되는 재료와 소스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고 재료 코너를 깨끗이 정리하는 일, 음료 주문을 받는 일, 음식이 나오면 서빙하는 일, 그리고 계산을 받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 들이었다.

처음 2주 트레이닝 기간에는 팁이 없다고 한다. 그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손님이 직접 볼을 만드니 주문받을 거라고는 사이드 메뉴 몇 가지, 판매하는 음료수와 맥주 이름 정도였다. 일은 수월하게 익혀졌고 곧 익숙해졌다. POS나 카드 결제기를 사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POS (Point of Sales)
컴퓨터와 연결된 판매관리 시스템으로 손님의 주문내역 입력, 결제, 판매관리, 예약관리가 모두 이루어지며 금전등록기와 연결되어 있다.


가게는 평일에는 11시, 주말에는 12시에 문을 열었다. 오전 쉬프트의 홀 직원이 문 열기 30분 전에 출근을 해서 주방 직원들과 함께 오픈 준비를 한다. 밤새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모든 재료와 소스를 꺼내 재료 코너를 세팅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지난밤에 디쉬워셔로 돌려놓은 잘 마른 컵과 숟가락, 포크를 정리해 놓고 테이블을 한 번씩 닦아주고 나면 홀 준비는 끝난다. 오전에는 보통 1명의 직원이 모든 일을 다한다. 가족 손님이나 직장인들도 있지만 주변에 중등학교 Secondary School이 있어서 점심에는 포장해 가는 학생 손님들도 꽤 있었다. 오후 직원이 오면 오전 직원은 점심을 먹고, 4시에 그 시간까지 현금으로 들어온 팁을 정산해 나누어 주고 퇴근을 한다.


4시에는 보통 사모님이 나오고 오후 직원과 함께 저녁 장사를 한다. 5시가 되면 저녁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고 가게는 8시면 문을 닫았다. 7시 45분에 라스트 콜을 받고 음식이 모두 나가면 그때부터 재료 코너를 정리해서 냉장고에 들여놓는다. 그리고 냉장고에 맥주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종류별로 숫자를 세서 기록을 해 놓는다. 식사를 마친 마지막 손님들이 나가면 본격적인 클로징이 시작된다. 주방 직원들이 설거지를 할 수 있게 테이블에 있는 빈그릇들부터 먼저 정리해 준다. 사모님이 그날 매출 정산을 하는 동안 홀직원은 4시 이후부터 들어온 현금 팁을 일한 시간으로 계산해 나눠준다. 그리고 재료 코너를 청소한 후 홀을 쓸고 물에 적신 마대자루로 바닥 닦아내기까지 모두 끝나면 보통 8시 40분에서 9시쯤 일이 끝난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 나는 항상 오후 근무로 사모님과 같이 일을 했다. 오전에는 주로 로컬 아이들이 일을 했고 내가 쉬는 날에는 그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오후 쉬프트를 받았다. 사모님은 내가 매니저로서 가게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하며 직접 가르치기를 원했다. 사장님은 어쩌다 한 번씩 가게에 나왔는데 주로 음료수나 맥주가 떨어져 갈 때,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가 쌓일 때였다. 골프를 좋아해 궂은날이 아니면 거의 골프장으로 향하는 사장님은 한 번씩 골프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런 날이면 홀 바닥 청소를 해주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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