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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n 20. 2024

낯선 땅에 피붙이가 있다는 것

09. 은행계좌 만들기

조카가 도착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스카이트레인 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환영홀로 곧바로 내려가 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을 보니 연착은 아니다. 일찍 공항에 온 덕분에 팀홀튼에서 여유롭게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신다. 유명인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이곳에 가족이, 그것도 잠시 방문이 아닌 살러 온다 하니 새삼 마음이 설레고 긴장이 된다. 다시 환영홀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자 전광판 싸인이 도착으로 바뀐다.


비행기 도착 싸인이 뜨고 한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조카는 나오지 않고 카톡 확인을 안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제법 나오는 와중에 조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전화를 했다. 한참만에 전화를 받은 조카는 다시 전화를 하겠다 하고 끊었다.

한참 후 전화를 한 조카는 곧 나온다고 알렸고 얼마가 지나 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못 본 사이에 훌쩍 커 버렸다. 뉴질랜드에서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왔을 때 보고 내가 캐나다로 왔으니 거의 5년 만에 보는 거다. 기억 속의 그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어느새 키가 180이 넘는 청년이 됐다.


조카는 입국심사 중에 가방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캐리어를 다 열어젖히고 검사를 했다고 한다. 가방을 채 닫지도 못하고 비자받는 곳을 안내받고 갔는데 거기서 또 가방 검사를 했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있었던 일이 꽤 언짢은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잤다는 조카의 눈에는 잠이 가득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밥은 먹어야지?"


조카는 생일날 캐나다에 도착했다. 언니에게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넣어놓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교육청 관계자가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도착날이 조카 생일이라는 걸 알고 인사도 할 겸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했다. 조카도 몇 시간은 견딜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놀스 밴쿠버에 있는 그분의 단골 스시집으로 향했다. 한국인이 하는 그 식당의 모든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특히 해물 우동은 얼큰하고 개운한 맛이 여태 먹어본 것 중 단연 최고였다. 피곤해하던 조카도 배가 고팠는지 맛있는 음식에 집중했다.

그분은 학교 일정과 홈스테이에 들어가는 날짜, 시간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서도 조카에게 직접 설명을 해줬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조카의 가방을 풀어보니 홈스테이 가족에게 줄 선물을 잊지 않고 챙겨 왔다. 캐나다에 오기 전 홈스테이 가족에 대한 소개자료를 보내줬던 터였다.

그리고 조카는 곧 잠이 들었다. 집안에 흩어져 있는 여행 가방과 잠든 조카를 보니 벅찬 감정이 들었다. 나에게도 이제 캐나다에서 같이 살아갈 피붙이가 생긴 거다.


일주일 동안 우린 가까운 곳들을 둘러봤다.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스탠리 파크와 잉글리시 베이, 랍슨 스트릿, 다운타운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또 버스와 스카이 트레인을 타야 갈 수 있는 곳들을 다니며 대중교통 이용하는 법을 익혔다. 앞으로 살면서 많은 곳을 보게 될 테니 무리하지는 않았다. 틈틈이 집에서 영화도 보고 내가 아는 몇몇 지인들과 식사도 했다. 시차적응이 안 된 조카는 중간중간 낮잠도 자며 컨디션을 조절해 갔다.



도착해서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은행 계좌를 만드는 일이었다. 조카가 오기 전 내가 거래하는 은행에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한국과 다르게 캐나다는 은행 창구에서 계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계좌 개설을 전담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서 미리 약속을 잡고 가야 하고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상담을 하며 계좌를 열게 된다. 약속은 바로 잡히면 다행이지만 지점 계좌 담당 직원의 스케줄에 따라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캐나다는 계좌 이용료를 매월 부과한다. 은행마다 차이가 있고 보통 10불에서 40불 정도 사이다. 계좌 이용료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일정금액을 계좌에 넣어놔야 한다. 여기에서는 그걸 미니멈 밸런스(minimum balance)라고 한다. 미니멈 밸런스도 어떤 은행인지 어떤 종류의 카드가 발급되는지에 따라 또 다른데 낮은 곳은 1500불, 높은 곳은 5000불 정도 선이다. 한 달 중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밸런스가 유지되면 이용료를 면제받는다. 말일에 이용료가 빠져나갔다 다시 재입금되는 방식이다.  


계좌를 열기 전 캐나다에서의 법적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을 한다. 조카의 경우 여권과 학생 비자로 계좌를 만들었다. 학생의 경우에는 월이용료가 없는 학생 전용 계좌를 개설해 주고 직불카드(debit card)를 발급해 준다. 학생 계좌는 월이용료가 없는 대신 ATM에서의 현금 인출이나 송금, 직불카드 사용에 횟수 제한이 있다.


캐나다는 개인 간 송금을 이트렌스퍼(e-transfer)를 통해 한다. 계좌를 만들 때 이메일을 등록하면 등록된 이메일을 통해 송금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따로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되고 복잡하게 은행 계좌번호를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보통 은행은 이트렌스퍼에는 크게 횟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한 계좌에 등록된 이메일은 다른 계좌와 중복으로 등록해서 사용할 수 없다.


은행계좌를 만들고 다운타운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샀다. 햇반, 도시락김, 고추참치, 조그마한 고추장과 같이 놔두어도 냄새가 안나는 비상식량과 간식거리를 담고 티 종류도 여러 개 샀다. 캐나다는 바닥이며 계단에 카펫이 깔린 집이 많아서 기관지가 답답해질 때가 있다. 내 홈스테이 경험에 비춰서 도라지 차도 한 박스 구매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홈스테이 들어가는 날이 왔다. 내가 차가 없기 때문에 교육청 관계자가 다시 한번 우리를 도와줬다. 다운타운에서 놀스 밴쿠버로 가기 위해서는 라이온스 게이트(Lions Gate)라는 다리를 건넌다. 여기에서 보는 스탠리 파크와 놀스 밴쿠버 그리고 웨스트 밴쿠버의 경치는 정말 아름답다. 경치 감상을 하다 보니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스트 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고 조카의 방을 안내해 준다. 조카가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짐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옷가지와 책을 정리하고 중요한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었다. 간식으로 산 과자와 비상식량도 서랍 한편에 정리를 해 둔다.

정리를 하고 나니 그곳에 조카를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 온다. 이제는 본인이 잘 견뎌나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도 뉴질랜드에서처럼 혼자는 아니니 마음이 조금은 덜 힘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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