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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n 12. 2024

국경에서 비자받던 날

08. 영주권 설계하기

비자가 나오면서 가장 시급했던 체류 문제가 해결이 됐다. 외국에 있다 보면 비자처럼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다. 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3년이라는 기간이 생겼다.


이 3년 동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일을 하고 영주권을 받는 거다. 3년 안에 나의 법적 신분이 바뀔 수도 있고 어쩌면 3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영주권 받는 기간은 최대한 짧게 끝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랭리 스시집에서 하루치 일당과 맞바꿔 얻은 교훈이었다.


PGWP는 오픈 비자다. 고용주가 특정되어 있지 않아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비자지만 중요한 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영주권을 빨리 받을 수 있느냐다. 내가 가진 학력, 경력, 영어 능력을 기반으로 어떤 '직업군'으로 영주권을 진행할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PGWP(Post Graduation Work Permit): 4년제 또는 2년제 대학 졸업생에게 지원해 주는 오픈 워킹 비자


비자를 받으러 가는 것도 교육이 필요했다. 처음 학생 비자를 신청했을 땐 신분을 위장해 비자를 신청한 몸 파는 여자로 여겨져 비자가 안 나올까 봐 걱정을 하고, 이번엔 나올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 유학원은 어떻게 승인받은 비자인데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해 비자를 못 받고 돌아올까 봐 걱정이 많았다.


국경에 도착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자주 묻는 질문은 어떤 것인지, 답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안내하는 사항들을 잘 따르라는 당부도 있었다. 비자받으러 갔다 잘못 꼬이면 현장에서 비자 발급이 거부되기도 한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긴장이 되고 국경에 가기 전날 잠을 설칠 만큼 걱정이 됐다.


비자 승인 레터와 여권을 챙겨 국경에 도착한 나는 얘기들은 대로 동선을 따라갔다. 1월이라 날씨도 그렇지만 긴장한 탓인지 싸늘한 느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싸늘하다 못해 삼엄하기까지 했다.


의자에 앉아 앞서 비자를 받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다 내 차례가 되어 카운터에 갔다. 날카로운 눈이 나를 훑어본다. 캐나다엔 왜 왔냐부터 그동안 여기서 뭐 했냐, 비자받고 뭐 할 거냐, 일하고 나서 너의 계획이 뭐냐 등등을 물어본다. 차갑게 질문을 이어가던 심사관은 도장을 쾅 찍으며 그제야 "Good Luck!" 하고는 씩 웃어준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혹시라도 나를 다시 부를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비자를 받고 며칠 후 이민 컨설턴트와 만났다. 이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이민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이민 카테고리가 뭔지, 내 현재 점수는 몇 점인지, 최근 추첨되는 점수대는 얼마인지,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어떤 절차를 거쳐 내가 영주권을 받게 될지를 상의했다. 생소한 정보들이기에 열심히 메모를 했다.


이민 컨설턴트가 계산해 준 내 점수는 당시 추첨 점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그 점수는 내가


1. 학력인증을 받았을 때,

2. 연방 이민 풀에 들어갈 자격요건이 되는 기본 영어점수를 받았을 때,

3. 그리고 LMIA를 받았을 때를 포함한 것이었다.


연방 풀에 들어갈 수 있는 영어 점수는 셀핍 CELPIP 기준 4점이다. 영어 점수를 높게 받으면 내 포인트는 더 높아진다.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고용주가 노동부에 사전 허가를 받는 과정. LMIA 승인을 받은 고용주와만 일을 할 수 있다.
*CELPIP(Canadian English Language Proficiency Index Program): 캐나다가 UBC와 함께 개발한 영어능력 평가시험으로 IELTS General과 함께 이민을 위해 인정하는 공식 영어 점수다.


이민 컨설턴트 말로는 그즈음 이민정책이 바뀌면서 점수 채점 방식이 변경됐다고 한다. 내가 오픈비자가 있어도 LMIA를 받아야 600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결론은 LMIA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거다.


내가 거치게 될 이민 절차는 연방정부의 익스프레스 엔트리(EE: Express Entry)와 비씨 주정부의 노미니 프로그램(BCPNP: British Columbia Provincial Nominee Program)이 합쳐진 EEBC였다.


나뿐만 아니라 언니네의 이민도 같이 상담을 했다. 언니는 부부에 아이가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리고 이분께 언니네 고용주 찾는 일을 부탁했다. 이때부터 이민 정책들을 주시해서 보고 연방이든 주정부든 추첨이 있을 때마다 점수대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직업군이 추첨이 많이 됐는지를 꼭 확인했다.


그 사이 조카는 뉴질랜드의 짐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약 3주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캐나다에서 그리고 새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들을 했다. 그런 와중에 조카의 학생비자가 승인이 났다. 캐나다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고 비자를 받아 나오면 됐다. 조카는 학교 시작 1주일 전에 캐나다에 들어와 시차적응도 하고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익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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