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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n 05. 2024

부딪혀봐야 아는 것들

07. 한국인이 몰랐던 한국의 숫자 단위

비자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만료 전에 PGWP 신청을 해 뒀기 때문에 당장 체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점점 초조해졌다. 나의 고용주 찾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3번 옵션 '석사 과정' 준비에 돌입했다. 무슨 공부를 할지, 석사 과정을 해서 그 학위로 내가 캐나다에서 무얼 할 수 있을지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학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도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 난 합법적으로 캐나다에 체류할 수 있는 status가 필요했다.


*PGWP(Post Graduation Work Permit): 4년제 또는 2년제 대학 졸업생에게 지원해 주는 오픈 워킹 비자. 고용주가 정해지지 않아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계획에 없던 일이라 당시 갖고 있던 자금이 많지 않았던 나는 한국에 있는 돈을 송금해 달라고 언니에게 부탁했다. 다행히 환율이 몇 년째 1달러당 1,000원을 호가하던 시기를 지나 다소 안정돼 있었다. 그 돈으로 나는 아이엘츠 아카데믹 IELTS Academic 학원을 등록했다. 아이엘츠 아카데믹은 대학원 진학을 위한 것이어서 영주권을 받으려면 나중에 아이엘츠 제너럴 IELTS General 이나 셀핍 CELPIP 을 다시 해야 하지만 여하튼 영어 실력은 쌓이는 거니 손해 볼 건 없었다.


아이엘츠 학원을 정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대부분 학원은 참관수업을 허락해 줬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나에게 맞는, 내가 필요로 하는 수업을 해주는 학원을 고르고 싶었다. 선생님의 가르치는 스타일과 경험이 학원을 결정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의 숫자단위가 '만' 이라고?


내가 선택한 학원의 코리 Corey 선생님은 아이엘츠 감독 경력이 있어서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전략들을 잘 가르쳐줬다. 한국에서 5년 넘게 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종종 추억에 잠겼다. 또 한국인들이 영어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이나 사고적 접근에 있어 바꿔야 할 부분들을 짚어주기도 했다.


한국인이 숫자를 세는 단위가 '만(10000)'이라고 했을 때 나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도 분명 세 자리마다 콤마를 찍는데 말이다. 칠판에 숫자를 써가며 해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영어와 비교해 보는 한국의 숫자단위


아이엘츠 공부를 하는 동안 틈틈이 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언니와 형부에게 LMIA 비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고용주를 찾기 위해서다. 몇 군데 연락을 해 봤지만 캐나다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겠다는 고용주는 없었다. 그러다 유학원을 통해 '입국 전 비자 업무'를 잘한다는 다른 한국인 이민 컨설턴트를 소개받았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알려진 사람이었다. 만나보니 경험도 많고 진행 절차에 대해서도 설명을 잘해주었다.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고용주가 노동부에 사전 허가를 받는 과정. LMIA 승인을 받은 고용주와만 일을 할 수 있다.


언니와 형부는 이력서를 보냈고 곧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 이민 컨설턴트는 언니네가 갖고 있는 경력과 기술로 충분히 고용주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머지않아 고용을 원하는 분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계약이 진행됐고 언니네는 계약금을 송금했다. 한동안 진행상황 업데이트를 해주던 그 사람은 점점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로만 간단히 답변을 보내오더니 어느 순간 연락이 두절됐다.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도 없다. 이메일 회신도 없다. 이게 말로만 듣던 '외국 나가면 한국인 조심하라'는 일인가? 며칠 동안 기다리던 나는 점심시간에 그 사람을 소개해 준 유학원 대표에게 전화를 해두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유학원으로 향했다. 당황해하기는 유학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얽힌 게 있으니 유학원 연락은 받을 거라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 며칠 뒤 그 이민 컨설턴트는 다른 사람을 통해 계약금을 돌려 보내왔다.


그리 어느 날, 수업 중간에 이메일이 왔다. 이민국에서 온 거다. 여기는 절대 핵심 메시지를 이메일 본문으로 보내지 않는다. 이메일 내용은 항상 '너 계정에 업데이트가 있으니 로그인해서 확인하라' 고만 쓰여 있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PGWP 지원 대상이 아닌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상황이 절실해지다 보니 신청비 버리는 샘 치고 시도는 해보자 한 거라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이메일을 받고 나니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민국에서 업데이트를 알려온 당시 이메일


두근두근.... 종일 너무 긴장이 된다. 수업은 받고 있는데 정신이 온통 이민국 이메일에 가 있다.


집에 가는 동안에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다리도 후들거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민국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이디와 비번을 치려는데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두 손을 깍지 끼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한 글자씩 타이핑을 해갔다.



.

.

마이

.

.

.

갓!!!



오.... 마이..... 갓!!!!!






Approved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게... 됐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잘못된 건 아니겠지? 로그아웃과 로그인을 반복했다. 결과는 계속 'Approved'였다.


비자 신청을 도와준 유학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와.... 와..........."


유학원 대표 역시 한동안 와.... 와.... 만 반복했다.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원하니 도와주기는 했지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단다. 와... 대박이란다. 신청서와 함께 써서 보낸 나의 '진심이 담긴 편지'가 신의 한 수가 됐다고 한다. 너무 뿌듯하고 나 자신이 참 대견했다. 이걸 받아 내다니...


그래 역시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른다. 안될 거라 생각하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답을 모를 땐 역시 부딪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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