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만나는 순간

미지수가 무한의 가능성이 되기를

by 손현선

그날의 주제는 보물상자 만들기이었다. 작은 상자와 아크릴 물감을 아이들 책상 위에 올려 주고 ‘나만의 보물이 들어갈 상자니까 멋진 그림을 그려보자’라고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각각 저마다 무엇을 그릴지 고민을 하고 각자 신기하게도 다 다른 그림을 상자 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아이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하늘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너무 멋있겠다. 한번 그려보자'라고 흔쾌히 답변을 했다. 아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시간이 흘러 스케치를 마친 아이는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크릴 물감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상자 위에 계속 덧칠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얼굴에는 점점 불만스러운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그리고 싶다고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에는 이미 “아이들 각자 한 상자씩 스케치를 하고, 아크릴로 멋지게 채색해 가져가게 하자”는 계획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미술 학원 선생님으로 쌓아온 경험으로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것보다는 하늘 그림에 약간의 변형을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두껍게 발려진 아크릴 물감을 손가락으로 뭉개 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칠해진 물감을 손가락으로 뭉개더니, 다행히 노을 지는 하늘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뒤이어 그 위에 꽃을 그리고 싶다며 꽃을 하나씩 그려 넣어, 자신만의 예쁜 보물상자를 완성했다.


처음엔 파란 하늘이었던 그림이 노을로, 노을에서 다시 꽃으로 이어지며 우연의 연속 속에서 상상도 못 한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우리는 보통 결과물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거나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느끼기 쉽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 미지수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연과 시행착오를 물 흐르듯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훌륭하고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설령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것은 경이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다음으로 향해 가는 나 자신을 믿고 기다려보는 특별한 경험. 어쩌면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우연과 만나는 아름답지만 불안한 순간, 결과물을 향한 길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 순간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미지수가 무한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이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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