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따리 기억하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들의 수업 결과물이나 작품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과정과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들의 독창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자주 놀라게 된다. 하지만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이 모두 결과물에 온전히 담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멋진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미숙한 그림이라 쉽게 넘기고, 그 안에 담긴 아이의 독창적인 생각과 재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들이 지루하거나 의욕 없이 억지로 그린 결과물이 훌륭하게 완성될 때도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작은 터치로 작품이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멋지게 완성된 결과물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까?
때론 자유롭게 과정에 집중하고 특정한 결과가 없는 용기 있는 수업만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결과로 향하는 마음을 잠시 접고, 그림을 하나의 여정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안내해주기보다는 나만의 목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과정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매번 수업을 과정에 집중하여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미술 수업은 다른 과목들에 비해 결과물이 더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선생님이자 자영업자로서, 일정 부분 트렌드에 맞춰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요즘 SNS에 올라오는 멋진 작품들을 보면 조바심이들고, 완벽한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따라다닌다. 언제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원을 운영하며 고민하고 많은 아이들과 대화하고 알아갈수록, 아이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결과에 대한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며 언제나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오는 아이가 있다. 수업 시간에도 재잘재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어린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작고 소박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 이야기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다 보면, 때로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가 경험하는 모든 과정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듣기 전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순간,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눈 친구들과 어른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경험—이 모든 것이 하나둘 쌓이며 의미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작은 이야기 보따리일지라도,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안에 담긴 생각들도 분명히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주머니를 품고 살아가는 삶은 더욱 풍요롭고 재미있을 것 같다.
미술 작품이라는 결과물 안에는 수많은 과정이 숨어 있음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지루함보다 즐거움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길 바란다. 비록 유치하고 어설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그 과정을 이해하고 귀 기울여 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 주머니를 소중히 간직한 채, 그 이야기들이 담긴 따뜻한 마음을 가진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