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리 Jul 06. 2019

014. 23:00 - 07:00

#백편의에세이 #천천히씁니다

늦은 11시. 461번 버스에 올랐다. 방금 강을 건너온 이들은 저마다의 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리창에는 누군가 머릿기름을 비벼대 얼룩져 있었다. 제 존재를 쓰고자, 내 손에 귀를 비벼댔던 고양이처럼. 귀갓길 버스 유리창에는 뿜어져 나온 냄새로 ‘내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아무에게나 기대지 않기 위해 삼각형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 삼각형 하나면 내 몸은 폐가처럼 버려질 수 있다.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서리를 닮은 사내가 끝끝내 자리를 얻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앞으로만 고꾸라지는 몸통을 엄지손가락으로 버티며. 핏기 가신 엄지손가락만이 사내 편을 들었다.


이국땅까지 건너와 사는 여인들의 낯선 말소리가 꺼져가는 공기의 요철이 되어, 사람들의 창백한 귓속을 부산히 구르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좋은 밤 보내세요. 버스 기사는 사람들의 뒷머리에 빠짐없이 인사했다. 어떤 인사는 아이처럼 되돌아오고, 어떤 인사는 어렴풋이 굴러 떨어졌다.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와 술을 마셨다. 뼈가 사라진 남의 살을 안주 삼았다. 즐겁게 살자, 우리. 그래, 적당히 살자. (두 번째 잔을 들이켜며) 적당히 살자, 우리. 그래, 겁먹지 말자. 친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알았다. 무엇을? 오늘은 꿈에서도 울 거라는 사실. 나는 살을 우물거리다 물었다. 그러면 오늘은 집에 가서 우냐. 아니, 꿈에서 운다. 그건 의지냐. 아니, 규칙이다. 우는 것은 계절이냐. 아니, 우는 것은 한 병짜리 재해다.

뼈가 없는 살덩어리를 먹었는데, 테이블 위에는 뼈만 잔뜩 쌓였다. 우리는 술에도 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로이.


창밖에는 양껏 캄캄해지지 못한 밤이 있었다. 밤이 밤을 먹고 배설했다. 나중에 태어난 밤은 꺼지지 않는 불빛과 동침하며 사라져 갔다.

밤이 더 먹을 것이 없어질 무렵이면, 빌려 누운 침대가 등뼈를 말았다. 둥글게, 둥글게. 내 몸은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정곡이 되었다. 몸이 벗어난 자리가 우거지게 피었다.


길바닥에는 누군가 다 씹지도 못한 밥 알갱이가 얼어 죽어 있었다. 구두 굽 한 겹. 고양이 털 한 터럭. 어젯밤 백발노인의 집에 딸려갔던 젊은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이 그 곁에서 애도했다. 꽁꽁 얼어버린 인간의 설움을 비둘기는 산뜻하게 쪼아댔다. 형광으로 태어나 늙지 못하는 빗자루는 닳아 없어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지난 꿈은 고장 없이 잘 돌아가던가요? 그렇습니다, 멈추지 않고 밤새 쓰러졌습니다. 뭐가요. 꿈이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놀리지 마십시오.


이제 한 번. 열두 번은 더 해야 오늘도 밤이 온다. 461번 버스에 오를 수 있다. 강 건너 미리 잠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냄새가 다시 강 너머로 배달될 것이다. 떠도는 냄새가 자리를 찾을 때. 그때에야 끝이 날 것이다.


나는 뒷덜미를 빼앗긴 지 오래다.

매거진의 이전글 013-1. 손의 용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