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보다 콜리가 더 인간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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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읽어야지 결심만 하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작품이었다. 난 이상한 강박 같은 게 있어서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읽고 있던 책이 있어도 멈추고 새로운 마음으로 읽는다는 핑계로 새 책을 다시 꺼내 읽곤 하는데, 의도치 않게 이 책이 그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초반부만 4-5번 읽은 것 같다. 이번에 드디어 다 읽게 되어 너무 뿌듯하고, 번외로 이 책을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해 준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난 SF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쉽지도 않고, 애초에 있지도 않은 일을 가상으로 설정해서 그거에 감정이입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힘든 일이다. (이렇게 보면 내 mbti는 infp가 아니라 isfp일지도... 하지만 난 뼈프피인데.) 과학을 싫어해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SF라면 질색팔색하던 내게 이 책은 하나의 도전과도 같았다. 아마 모임이 아니었더라면 난 한 번쯤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평생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만큼 담쌓고 살았던 장르에 발을 들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첫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책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면 심할 경우 대답도 못한 채 눈물부터 나올 법도 했다.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추천해 준 친구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이 너무 나서 읽기가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어쩌면 나보다 콜리가 더 인간적일 수 있겠다고, 인간은 생각보다 기계적일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를 공유하며 함께 살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소홀히 대하는 건 기본이고, 같은 인간이어도 본인보다 우월하고 열등하다고 '급'을 나누며 강약약강(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게 대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을 몸소 보여 주는 사람들까지. 이 세상은 꽤나 잔인한 것 같다.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우리는 매일 체험하며 살고 있다.
처음에는 경주마라는 소재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의 피도 눈물도 없는 면모를 제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곳이 경마장이어서 그런 감정이 든 게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도 그래서 이야기 전개를 많고 많은 아이디어들 중에 '투데이'라는 말로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투데이는 왜 이름도 투데이일까. 거창하게 10년 뒤 미래, 하다못해 1년 뒤를 생각하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면 그걸로 된 거라고,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는 거라고 가르쳐 줬던 엄마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경기를 위해 매일 죽어라 연습하는 투데이는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가장 큰 목표이자 꿈이었기 때문에 투데이가 된 걸까.
콜리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가장 중요한 인물... 은 아니지만 존재이기 때문에. 콜리의 두 번의 낙마 모두 투데이를 위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걸 나누는 건 쉽게 할 수 있잖아. 근데 절박한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못 해. 연재가 콜리에게 해 준 말.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고, 가장 찔리는 말이었다. 여자친구에게 좋아하는 걸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도 내게는 부족한 거 같은데, 이런 내가 과연 절박한 상황에서 여자친구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까. 지금은 자신 있게 구할 거라고 말하지만, 과연 현실로 닥쳤을 때 내가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난 누구를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이다.
3%의 생존율을 보고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어 100%로 만들고, 80%였던 생존율이 다른 생명을 살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한순간에 0%가 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는 시간 동안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게 누가 되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