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다 같은 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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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책이다. 내가 독서 타이머를 재기 위해 깐 어플(북덕방)이 있는데, 그 어플 온라인 북클럽에서 같이 읽자고 추천받은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이승우 작가가 누군지,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구매한 책이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좋을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책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에세이적인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사랑에 대해 고찰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에 대한 심도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이 책은 읽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질투에 대한 부분이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나는 질투도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질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질투가 없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진짜 질투가 없다고?라고 하며 반문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질투들이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어쩌면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질투는 한 일을 향하지 않고, 한 것으로 상상된 일을 향한다.
너무 공감되는 문장이다. 질투가 상대가 행한 일을 향했다면 상대가 그렇지 않다는 걸 입증하기만 하면 질투가 사라져야 하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질투가 많은 나로서는 찔리기도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구절이었다.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현미경을 사용한다.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체, 혹은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굳이 현미경으로 볼 필요가 없고, 또 현미경으로 보지도 말아야 한다.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나타난 것이 실체, 혹은 진실이지,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나타나는 것이 실체, 혹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췌한 문장이 좀 많긴 하지만... 이 비유가 나에게는 되게 크게 다가왔다. 내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랑 비슷해서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나는 현미경으로 봐야지만 보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이 책에 나온 예시를 말하자면 손가락에 있는 세균을 보며 이건 손가락이야, 하는 꼴이었다. 남들이 보면 엄청 우스울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선 그게 사실이고 진리였다.
이렇게 자아성찰을 한다고 해서 내일 당장, 아니 지금 당장 내가 바뀔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렇지만 누가 그랬는지, 본인이 그런 상황이고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커플 상담을 받았다. 1회 차여서 TCI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여자친구랑 같이 듣는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2회 차를 예약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 관계가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서로에 대해 못되게 말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티 내지 않으려고, 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향해 이빨을 내보이는 관계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건, 뭐랄까, 이것도 사랑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연인 관계라고 해서 모든 연인이 다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다 같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금을 돌아봤을 때 우리 진짜 애썼다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