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해야 하는 나이가 된
어렸을 때는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승부욕도 강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서 학교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또 나를 좋게 봐주신 클럽 감독님의 추천으로 정식 선수 육성반 테스트도 보게 되었고 당당하게 합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지만 옛날 분들의 특유의 꽉 막힌 성격을 가지고 계셨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큰 욕심도 없으시고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자라기를 원하시는 분들이었다. 남들처럼 학원 다니며 공부하고,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이 들어 본 회사에 들어가기를 원하셨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기에 축구선수라는 꿈은 용납할 수 없는 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중 후반쯤이었나 이제는 중학교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삼촌이 여의도에서 회를 사준다 하셔서 우리 가족 모두 차를 타고 여의도로 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가 용기 내서 부모님께 "나 축구부 유명한 중학교 보내줘, 축구선수 하고 싶어"라는 꿈을 표현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너무 달랐다. 아빠는 조수석에 앉아 "뭐 세상에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몇 만 명일 텐데 그중에 국가대표 아니 국가대표는 둘째치고 K리그에 들어가는 사람이 몇 명이 되는 줄 아냐? 그렇게 전국에 날고 기는 사람들 중에서도 몇 명이 운 좋게 성공하는 게 축구선수인데 네가 잘도 그렇게 되겠다. 실패하면 그때 가서 뭐 하고 먹고살 건데?" 누가 자존심 쌔고, 배운 사람 아니랄까 봐 초등학교 6학년에게 객관적 근거를 대며 반박할 수도 없게끔 역정을 내셨다.
그 정도로 말씀하시는데 초등학생인 나는 반박할 용기도, 방법도 몰랐다. 회를 먹고 카페를 가서도 나를 향한 조리돌림은 계속되었다.
이모와 삼촌이 모인 자리에서 한 소리들은 나는 당연히 계속 뾰로통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본 이모는 승훈이 왜 이리 화나있어? 하면서 물었고 옆에 있던 엄마는 웃으면서 축구시켜 달라는데 안 시켜줘서 저래~ 라며 아무렇지 않게 웃으셨고 옆에 있던 누나는 쟤 저번주에 박지성 다큐멘터리 보고 괜히 갑자기 축구선수 한다 하는 거라며 나름 5년 이상 꿈꿔오고 운동하며 노력했던 나의 꿈을 그저 어린이의 어리광으로 넘겨버렸다.
이때였던 것 같다. 나는 원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더욱 위축되고, 표현을 잘 못하는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결국 남들처럼 뺑뺑이 돌려 집 근처 중학교에 오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하도 때린다고 유명한 학교였다. 반배치 고사 날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나를 보고 "이 새 X는 공부도 못하게 생겼네"라며 내 뺨을 풀스윙으로 때렸다. 요즘 시대라면 난리 났겠지만, 하필 안 풀릴 놈은 뭘 해도 안된다고, 딱 나 때까지만 그게 허용이 되었던 것 같다.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 가족 빼고 다른 사람들은 축구 잘한다고 나를 우쭈쭈 해줘서 그런가, 그때까지도 나는 축구선수가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반 대항전에서는 당연 에이스로 활약, 남중에서도 축구를 잘한다고 인정받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고 학교 축구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성적은,,, 뭐 운동부도 아닌 놈이 그저 운동부 호소인 주제에 성적은 같은 반 선수를 준비하는 야구부, 유도, 검도부와 비슷하거나 그 아래였다.
학교에서 두들겨 맞고, 집 와서 잔소리 듣고 이제는 가족뿐만 아니라 내 미래를 걱정해 주는 존 x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살아서 나중에 뭐 해 먹고살래?, 넌 대체 커서 뭐 하려고 이러니?" 마음속에서는 "축구선수요!"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가족에게도 외면받고 서서히 이제는 늦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내성적인 사춘기 시절의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나이가 들 수록 학교 축구부 말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 창피한,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꿈을 말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 횟집을 가던 차에서의 아버지와의 다툼 이후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아빠랑 웃으면서 대화했던 날이 단 하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린 초등학생한테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던 아빠가 항상 미움과 항상 무엇인가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이 들거나, 사춘기시절 반항할 때 대기 좋은, 좋은 핑계였던 것 같다.
중학교 어느 날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과 나의 장래희망을 적어오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부모님은 의사 변호사 흔히들 말하는 사짜 직업을 적으신 후, 너는 뭐라고 적을래?라고 물으셨고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답답해하는 부모님은 그때 횟 집 차에서 말한 나의 꿈은 기억조차 못하신 채 무슨 애가 꿈이었냐며 꾸짖으셨다. 결국 나는 나의 장래희망 칸을 비워 둔 채 학교에 갔다.
뭐라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들이 뭐 썼냐고 물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걸 사춘기 시절 나는 하필 아빠의 자존심 쌘 거는 또 닮아서 괜히 객기 부리며 "몰라~ 대충 쓰지 뭐~ 하면서 해적이라고 적고" 냈다. 애들 앞에서 지금 와서는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나름 반항하는 느낌의 나를 봐~ 이런 느낌의 허세였던 것 같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포함한 장난식으로 쓴 애들을 다 불러 매타작을 한 이후 제대로 쓰라 하셨다. 나는 차마 축구선수를 적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지만, 있어보이는 CEO 세글자를 적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