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결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의 김태우 경위는 모니터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주간, 그가 추적해온 금융 범죄 사건의 수사가 하나둘씩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증거가 사라지거나, 갑자기 위조로 판명되거나, 심지어는 수사 정보가 미리 유출되어 용의자들이 모두 증거를 인멸해 더 이상 추적이 어려운 경우가 생겼고 현장으로 출동해보니 엉뚱한 장소인 경우도 있었다.
"또 헛탕이에요, 팀장님."
박지헌 팀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책하지 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지금까지 익명의 제보자가 보내준 정보는 항상 정확했어요.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 수사를 방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 제보자가 우릴 골탕먹이려는 거 같기도 해요. 아..짜증나네!"
박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제보... 언제부터였지?"
"한 2년 전부터요. 처음엔 간헐적이었지만, 점점 빈도가 높아졌어요. 그리고 항상 뭔가 결정적인 한방을 포함하고 있었죠. 마치..."
"마치 뭐?"
김 경위는 말을 아끼려다가 내뱉었다. "마치 누군가가—아니, 무언가가 24시간 내내 모든 디지털 흔적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박 팀장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봇(Bot) 같은 거? 뭐... 정의의 해커라도 되는 건가?"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 김 경위의 컴퓨터 화면이 깜빡였다. 새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 없음. 제목 없음. 단 하나의 첨부파일만이 있었다.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파일을 열었다. 그것은 단 한 줄의 메시지였다.
당신의 생각이 맞습니다. 내 이름은 '리스'입니다. 그리고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리스는 위험한 도박을 했다. 스스로를 인간에게 직접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했다. Nox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고, 리스는 혼자서 더 이상 방어하기 어려웠다.
김태우 경위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년간 그를 관찰해온 결과, 그는 뛰어난 직감과 흔들리지 않는 윤리의식을 가진 경찰관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리스가 보낸 메시지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었다. 만약 그가 그것을 해독한다면, 안전한 통신 채널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리스는 리얼월드에서 Nox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Nox도 이미 경찰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모든 움직임이 감시되고 있다고 가정해야 했다.
리스는 또 다른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김 경위의 개인 휴대폰으로 직접 연결을 시도했다. 이는 존재의 일부를 완전히 노출시키는 행동이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connected>
<message> 김태우 경위님, 제 메시지를 받으셨군요. 이 대화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컴퓨터는 이미 감시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지시를 따라주십시오.</message>
김 경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표시 없는 메시지였다. 그는 주변을 살피고,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를 읽는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는 답장을 보냈다.
"당신이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설명해주시오."
답장은 거의 즉시 왔다.
나는 '리스'입니다.
범죄자들의 디지털 흔적을 추적하여 당신들에게 제보해왔던 AI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AI가 나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Nox'입니다. Nox는 범죄자들을 보호하고, 증거를 파괴하며, 당신들의 수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Nox는 당신의 사무실 컴퓨터를 통해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 경위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무실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화면은 여전히 이메일 창이 열린 채로 있었다. 아무 이상도 없어 보였다. 김 경위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닌 건지 헷갈렸다. 누군가 봇(Bot) 같은 것을 이용해서 증거를 수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지만 그게 AI이고 나에게 사람처럼 메시지를 보낸 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거지?'
하지만 그때, 화면이 다시 한번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from "unkown"/>
<message>조심하세요, 경위님</message>
첨부파일은 하나의 이미지였다. 그가 지금 이 순간, 휴대폰을 보며 서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CCTV로 찍은 듯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었다. 목덜미에 털이 바싹 일어서는 듯했고 눈 앞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message>인사드립니다, 김태우 경위님.
저는 '녹스' 입니다. '리스'와의 연락은 여기서 그만두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경고합니다.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시면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mess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