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단의 변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엽니다. 어제까지 썼던 소설의 다음 줄거리를 생각하며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도, 회사 점심시간에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등장인물들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강다은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말을 할지, 하린과 리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지, 경찰 수사 라인이 언제 다른 스토리와 만날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전체 스토리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고, 또 계산합니다.
그런데 막상 써놓고 보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리스가 이미 서버를 해킹했다면 왜 하린이 위험을 감수하고 침투해야 하는가? 준호가 AI와 대화하는 상황에서 왜 존댓말을 쓰는가? 보안 컨설턴트가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게 자연스러운가?
하나를 고치면 다른 것이 틀어집니다. 마치 연결된 실타래처럼, 한 곳을 당기면 전체가 엉킵니다.
작가들은 이런 복잡한 퍼즐을 어떻게 완성하는 걸까요. 수십 개의 등장인물, 여러 개의 플롯 라인, 시간의 흐름, 인과관계, 개연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소설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요.
처음에는 쉬워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캐릭터들에게 일관성을 부여하고,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장면을 구성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이버 스릴러에 심리극까지 담으려고 하고, 여러 인물의 시점을 동시에 전개하려고 하고, 현실적인 디테일까지 챙기려고 하니까 더 복잡해진 건 아닐까요.
아니면 애초에 본업을 유지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시건방진 도전이었던 건 아닐까요. 하루 종일 일하고 나서 남은 시간과 에너지로, 전업 작가들도 어려워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무모했던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가 우스워집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소설을 쓰는 제 모습이, 점심시간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고민하는 제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매일 지하철에서 끙끙거리며 쓰는 이 이야기가, 언젠가는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당장은 실타래가 엉켜있지만, 차근차근 풀어가다 보면 아름다운 직조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엉킨 이야기가 과연 시간의 증명을 견딜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거짓으로는 쓰고 있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점심시간에, 침대 위에서 끙끙거리며 써내려가는 이 모든 과정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외롭고 어려운 것 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써낸 완성작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고민과 수정, 그리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계속하는 것'이라는 걸요.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완주해낸 모든 작가들을. 매일 책상 앞에 앉아 한 줄이라도 써나간 그 지구력을.
제 소설은 아직 엉킨 실타래지만, 그래도 한 줄씩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면 다시 쓸 것이고, 백 번이라도 고쳐야 한다면 고칠 것입니다.
하루키의 말처럼,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매일 지하철에서라도, 점심시간에라도, 침대에 누워서라도 계속 쓰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누군가 제 이야기를 읽고 몰입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