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먼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 길이다.
요즘처럼 모든 성과가 ‘효율(Efficiency)’이라는 한 단어로 평가되는 시대에, 왠 뚱딴지 같은(개)소리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영업과 신사업개발(BD)을 제 DNA로 믿고 일해오며
비즈니스의 본질과 핵심을 꿰뚫고, 가능한 가장 빠른 루트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팀원들과 함께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전략(Strategy)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렇게 어느덧 중국에서의 영업실적과 시장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갈 무렵,
저의 캐리어도 어느덧 정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진출 5년도 채 되지 않아 신규 공장을 설립했고,
7~8년이 되던 해엔 시장점유율을 0에서 85%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VA/VE(Value Analysis / Value Engineering) 활동을 통해 내부 마진은 8% 이상 개선되었고, 연평균 매출 성장률(CAGR)도 90%를 유지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세상 같았던 그때,
제 영업 인생의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고객은 한국에서 완제품(KD) 형태의 연료 모듈 ASSY를 그대로 수입하고 있었고, 관세와 물류비까지 포함하면 중국 현지화 시 막대한 원가절감이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우리 회사 역시 신규 제품개발로 인한 추가 매출과 그에 대한 투자상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보자마자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모듈의 공급처 였던
H자동차 계열사의 구매부장을 직접 찾아가,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이점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기회를 긍정적으로 보았고, 저 역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한국 출장에서 복귀 하자마자, 저는 당시 저의 상사였던 중국 GM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중국인 상사는 저보다 더 흥분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한동안 회사에서 “1억 유로의 사나이 (The Guy of 100 M EURO).” 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사님, 저희나 모회사 모두 현지화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연구소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설계와 특허 리스크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격이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면 내부 반발은 결국 해결되겠지.”
그래서 저는 계속 구매 결정권을 가진 구매부장과 고객사의 구매책임자만 붙들고 소통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 후로도 고객사 구매부서에서는 몇 년의 희망팔이를 계속했지만, 그 딜의 크기 때문에 저는 단념하거나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설계 및 특허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번에는 시장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프로젝트 자체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그때 자신감이 지나쳤습니다.
성공 경험이 쌓이자 ‘난 남들과 다르다’는 자만심이 스며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처럼 쉽고 빠른 지름길만 찾지 않고,
기회를 잡자마자 구매부장만 찾아가는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계부문과 기술부문부터 차근차근 협의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다면…
지금쯤 그 결과가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았을 까요?
비록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가능성을 더 빠르게 판단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즈니스에서 세일즈의 결과는
나의 열정이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는 오직 바이어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효율을 최우선시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눈앞의 성과만을 좇는 행동이
항상 가장 빠른 길은 아닙니다.
오히려 먼 길을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장기적 성과와 진정한 개인 성장의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우리가 공존하는 이 디지털 사이버 공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영업 #진정성 #지름길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