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파크를 매일 달린 이유

가난한 유학생의 선택

by 이제희

나는 2014년 유학길에 올랐다. 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고, 한국 기업의 뉴욕지사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 떠났다. 어문학 전공을 한 나는 한국에서는 제1언어와 2언어 공부에 바빴고 20대 초반에 스펙을 쌓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내게 딱히 취미랄 것은 없었다. 팝송 듣기와 미드 보기가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


지금은 모던패밀리를 간간히 밥친구로 활용하는 것 말곤 미드는 잘 보지 않게 됐고, 팝송은 여전히 좋아한다. 그때 당시에는 미드와 팝송이 내 취미라고 믿었고 눈 뜨고 잠들 때까지 보고 듣고 영어에 파묻혀 지냈었다. 똥차 할리우드 남친을 만났던 최애 가수가 신곡에서 한층 성장한 자아성장 스토리를 들고 나올 때면 기특하고 벅찼고, 레딧과 트윗을 돌아다니며 떡밥을 회수하며 가사 한줄한줄 해석하며 감동에 젖는 게 좋았다.


무튼 내 취미는 한국에서도 쉽고 값쌌다. 돈을 써야만 취미는 아니지만 사실 다양한 취미를 접하지 못했고 선택의 폭이 좁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은 미국. 고로 영어를 소통언어로 쓰는 곳이다. 한글이 아니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취미는 미드 보기와 팝송 듣기가 아니라 드라마 보며 노래 듣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렇게 너디한 취미가 있을까.


또 내 전공은 영어인데. 미국에 사는 유럽계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2개, 3개 국어가 가능했다. 엄마가 독일, 아빠가 프랑스인인데 이탈리아에 산다거나. 본인의 자국어를 구사하기만 해도 구조가 유사한 같은 계통의 언어를 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뉴욕만 해도 스패니쉬계통이 많이 살아서 영어와 함께 스페인어가 준공용어였다. 어딜 가든 스페인어가 많았고 고객이 스페인계가 많다 보니 회사에서도 영어와 스페인어 구사자를 우대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영어는 그냥 다양한 언어를 쓰는 우리들의 공용어일 뿐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 외의 언어와 자신만의 강점으로 겹겹이 무장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10년 전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해도 수많은 기회가 열릴 것만 같았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무한히 팽창하는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영어 초급자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쩌하겠나. 영어를 배우러 왔으면 스페인어, 불어, 이탈리아어 오케이 좋은데 우선 영어라도 잘해야지! 인턴 근무 중에는 다양한 회화를 할 수 없기에 퇴근 후 따로 영어학원을 다니거나 여러 체험형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보통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시작할 때 한국에서는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직업 등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 나는 한국에서 온 2n살이고 사는 곳은 그래 노스코리아 아니고 사우스코리아. 음 나는 지금 미국에서 인턴을 하고 있지.!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넌 취미가 뭐야?

요즘 뭐 하면서 지내?

뭘 할 때 즐거워?


누군가는 스노보드, 스키, 세일링요트, 패러글라이딩 등 뭐 듣도 보도 못한 취미들이 대화 주제로 쏟아졌다. 뭘 알아야 오~ 스노보드가 취미구나! 라며 스노보드 관련 질문도 하면서 대화가 이어질 텐데.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아는 지식 선에서 기억하는 것이 이런 스포츠들이고 레고를 조립해서 미술품으로 만들어 경매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취미와 취미가 겹쳐져 취미 경계를 넘어서는 것들도 많았다. 취미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신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니. 드라마보고 음악 듣기라니. 참 초라해졌다. 물론 내가 즐기는 게 가장 먼저지만. 진짜 내가 이걸 좋아해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보고 듣다 보니 그냥 하고 있는 게 그거라 취미라고 말을 하는 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내가 뭘 할 때 즐겁지? 그때 처음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인생을 2n을 살고 나서야 생각을 하게 되다니.


취미를 만들어야겠다! 나도 대화 주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실은 가난한 유학생일 뿐이었고 지금 미국에서 숨 쉬며 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지출이었던 나는 다른 지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어떤 게 좋을까. 무슨 취미를 만들까. 모두가 공감하면서 대화 주제로 좋은 취미가 뭐가 있을까.


IMG_4730 2.JPG 2015년을 강타한 이 똥필터를 원망한다...


IMG_4890.JPG 브루클린 어딘가에서
IMG_4779.JPG 센트럴파크 어딘가

그래.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달리자! 돈도 안 들고 좋은데?


계획도시인 맨해튼의 쭉쭉 뻗은 도로에는 항상 러너들이 넘쳐났다. 낮이고 밤이고 웃통 벗고 대형견과 뛰는 핫걸 핫가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러닝 욕구가 스몰스몰 올라왔다. 뛰기도 참 좋은 도로,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이곳저곳. 나보고 안 뛰고 뭐 하냐면 손짓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뛰었다. 뛰면서 또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명상의 시간도 가졌던 것 같다. 달리기는 언제나 내게 무언가를 준다. 감사와 성장 뭐 낯부끄럽지만 뭐 그런 것들..?


NYRR. New York Road Runner라는 미국 뉴욕시에 본사를 둔 비영리 러닝 조직도 가입했다. 뭔가 소속이 생기니 자신감이 막 올라갔다. 나 러닝해! 보다 나 NYRR이야!라고 할 때 그 뿌듯함. 그리고 같은 NYRR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펍에서 만나는 이들과도 스몰톡을 즐길 수 있을 때 러닝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센트럴 파크를 매일 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몸 생각 없이 미련하게 달리면서 나를 혹사시켰다는 생각이 들지만.


KakaoTalk_Photo_2025-10-24-12-50-02 002.jpeg 처음에는 이렇게 미국 사이즈에 놀랐지만. 이후에는 이만큼 늘어나는 내 위 저장용량에 놀라버리게 되는데...

어마무시한 미국 사이즈와 칼로리만큼 내 몸도 불어나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3 때 이후 최고 몸무게(아마도? 재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최고 몸무게였으리라 장담한다...)를 찍은 이상 멈출 수 없었다. 그나마 엄마 아빠가 어렴풋이 내 딸이구나..! 알아보는 정도로 귀국한 데는 달리기가 한몫했다 분명. 아무튼 그렇다. 드라마보고 음악 드는 것 말고 별 다른 취미가 없는 동양인 노잼 여자 아이에서 값싼 취미를 가지면서 돈 줘도 못 갖는 자신감을 장착하게 되면서 나는 달리기를 사랑하게 됐다. 10년 전 그 날엔.

매거진의 이전글머리는 E인데 몸은 I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