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E인데 몸은 I야...

천불 나는 몸뚱아리

by 이제희

나는 꽤 활동적인 편이다. 취미도 캠핑, 세일링 요트, 드럼으로 은근 몸을 쓰는? 것들이 많다. 락페나 콘서트 가는 것도 좋아해서 나를 마구 신나게 하는 것들을 쫓는 편인데 모두 애석하게도 '체력'이 필요했다.


20대 때는 사실 현생이 파이팅이라 스펙 쌓고 알바하고 스터디하느라 취미를 가져보지 못했다. 해봤자 미드 보기랄까. 30대가 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이거라도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시기가 왔을 때부터 야금야금 취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야근만 하다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꾸역꾸역 장비를 사모으고 지친 몸을 이끌고 캠핑을 가기도 했다. 1박 2일 캠핑을 다녀온다 치면 토요일 낮에 텐트를 치고 와인 한 잔 하면서 캠핑을 시작해 친구와 수다 떨거나 혼자 사색에 잠겨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저녁을 준비하고 또 술과 고기를 먹으며 불멍과 별멍을 때리고 잠이 들고 그다음 날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일요일 낮부터 방전돼 내일이 오지 않길 기다리며 몸을 충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함께 캠핑을 간 친구는 참 쌩쌩했다. 사실 고기 굽고 술 마시고 잠잔 것밖에 없는데 나는 왜 그리도 힘들어했을까.


P20250906_134743344_0CCED93B-F83C-4E5C-B59E-D1D90AE17ED0.HEIC 예정에 없던 우중락페로 피로도 200% 쌓인 날


락페도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내한한다는 소식이면 몇 달 전부터 그날만 기다리며 노래를 무한반복한다. 지역에 사는지라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 인파에 휩쓸려 공연장에 가 한껏 뛰어논 뒤 다시 역순으로 반복해 집에 돌아와 또 다음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몸을 충전해 왔다. 하지만 20대 때라면 열심히 놀고 푹 자고 충전이 됐겠지만 내 몸은 아이폰 17 예약주문을 받고 있는 지금 아이폰 10 정도의 성능이랄까. 완충이 잘 안 된다. 그렇게 또 일을 한다. 34%의 몸으로 야근도 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 억울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목과 팔 안쪽 등 얇은 피부 위주로 빨간 두드러기가 나 몇 번이고 피부과를 갔다.

"일 많이 하시죠?"

"아,,, 네.."

"좀 쉬면 들어갑니다. 술담배 하세요? 좀 줄이시고 잠 충분히 자고........(블라블라 당연한 소리)"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비타민과 유산균도 챙겨 먹고 메가도스도 꼬박꼬박 했는데도, 이따금씩 도지는 두드러기는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약값이 얼만데...) 그 이후로는 피부과는 가지 않고 내과, 한의원 등을 전전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소리였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셨네요. 오늘부터 술 줄이시고 잠...(당연한 소리 n차)


술은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담배는 안 하고. 잠은 무조건 8시간은 사수하려고 한다. 비타민 유산균도 챙겨 먹고, 메가도스도 한다. 뭐가 문제일까. 뭔가. 아 맞다! 운동! 당연한 소리 중에 하나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약간 더 슬프게도 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동을 주 3회 하면 또 피곤해서 2회로 줄이고 2회도 피곤해서 1회로 줄이고 그렇게 발길을 끊고. 야근하면 못 가고. 아무튼 운동을 하고 있기는 했다. 뭔가 잘못됐다. 뭐가 문제일까 정말 억울했다.

P20250906_121830054_4384211F-37E3-4DAE-8967-D121286C41CF.HEIC 혼자서도 잘 논다 또. 싸돌아 다니는 것도 잘한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눈만 떠도 피곤할 때는 그냥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데 피로가 풀리지 않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잠들 때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초체력이 부족했던 건데 깔짝깔짝 기구운동을 하면서 근력만 자극을 줘서 체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었던 것 같다. 10시간을 자고 일어나서도 몸이 피곤해서 하품을 쩍쩍해대면서 꾸역꾸역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갈 때는 정말 몸은 집에 두고 머리로만 둥둥 떠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쓸모없는 이 몸뚱아리 내 뜻대로 효율이 나지 않으니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니 러닝을 시작했다. 나를 항상 피곤하게만 만들던 운동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 더 이상은 못한다. 나는 나를 안다. 하루 뛰고 3일은 피곤할 테니깐. 그리고 다음 주 뛰는 날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월요일 하루를 뛰고 전신 근육통을 겪고. 다음 주 월요일이 되기까지. 은근히 기다려졌다. 또 혼자라면 못했을 테지만 동료들과 함께 가니 계속 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사실 월요일 퇴근 전까지. '아 갑자기 약속 생겼다고 할까.', '아 집에 일 생겼다고 할까.', '아 난 내일 혼자 뛴다고 할까.' 짱구를 마구 굴렸다. 그렇게 그럴듯한 핑계를 찾지 못하고 반강제로 끌려가 경기장을 뛰고. '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때. 점점 나는 러닝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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