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도 필요하다.
"다들 금요일인데 일찍 들어가시죠? 같이 나갑시다." 평소 퇴근시간보다 빠르게 퇴근한 가뿐한 금요일에 궁상 좀 떨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어지는 토요일, 일요일의 이틀간의 자유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도 모자랄텐데 어찌 우울하게 궁상만 떨다 보니 일요일 저녁이 되었네요.
사실 금요일의 궁상은 정해져있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머릿속에는 생각할 것들이 가득차 있었고, 터지기 직전이었는데 어쩌면 운이 나쁘게도 금요일에 터져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시작은 이미 목요일부터 예고되어 있었던것 같네요. 어렵게 취업한 내가 자리를 잡은 작은 회사를 비웃는듯한 친구의 말부로부터 시작이었죠. 열심히 아둥바둥 주어진대로 살아 여기까지오는데 10년이나 걸렸는데 제 친구는 저에게 '그럴싸한 회사' 라며 얼른 이직 하라는 모진 이야기부터 합니다. 저는 이제 막 취업한지 5개월인 신입사원인데 말이죠.
모진 이야기에 상처받은 저는 자아방어기제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진짜 이 곳이 별론가?','나는 진짜 어렵게 취업했는데?','얘는 나를 평소에 이렇게 보고있던 건가?' 거기에 나아가 '나는 일을 왜 하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깊게 들어가 버린 저의 머릿속은 터지기 직전이였습니다. 단순히 금요일이니 맥주 한캔으로 털어버리자 라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금요일에 퇴근하고 했던 일조차 풀리지 않고, 맥주를 먹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기분에 더 본격적으로 궁상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궁상은 [아무것도 안하기] 였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요. 돈도 부족하고, 주어진 시간이 아까워 이 시간을 어떻게든 잘 쓰고 싶은 저에게 가만히 있기란 세상에서 제일 쓸모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쓰던 글쓰기도 놓아버리고 수기로 쓰던 다이어리에 한글자도 적지 못한채 저는 그저 아무것도 안한채 소파배드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린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안하기]가 시작됐습니다. 늦잠자고 일어나서 배달로 햄버거 하나 시켜놓고 또 다시 누웠습니다. 배는 고프니 밥은 먹어야겠고, 밥을 먹고 난 뒤 일어나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우울한 기분은 가시지 않고 저는 [아무것도 안하기] 라는 궁상을 떨다 낮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하.. 이렇게 주말이 끝나겠구나..'
이렇게 우울한 상태로 주말에 피로감만 쌓여버리면 다음주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까? 걱정과 함께 낮잠을 자고 일어난 저녁 이상하리 만치 가벼운 몸과 정신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어라?' 아직 토요일 저녁 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부터 시간을 잘 보내도 일요일이라는 하루가 충분히 남아있으니 움직여보자라는 생각으로 청소도 하고 저녁도 맛있게 차려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리 만치 모든게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기] 스킬 효과가 제대로 먹힌겁니다!
금,토 정말 [아무것도 안하기]를 하면서 머릿속은 계속 우울하고 스스로를 비관하며 내 현실이 그렇지- 라며 지지리도 궁상을 떨었습니다. 처음엔 이겨내야할 것 같던 궁상을 내버려뒀더니 어느 순간 회복하는 힘이 되어 이렇게 글을 다시 앉아서 쓰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궁상을 떠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는걸. 참 늦게 깨달은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하고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매일 독려하며 동기부여 되는 글들을 읽고 강해지려 일주일을 버텼는데 그런 것들보다 저에게 필요한건 오히려 궁상이였습니다. 나아가기 위한 힘은 저에게 궁상이었고 다행히 이번주 주말에 제대로 궁상을 떨어 다음주를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기] 스킬이 오히려 다른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힘을 내어줬습니다.
지금 속이 답답하고, 생각이 가득차고, 궁상맞게 굴지 말고 정신차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면 지금입니다. 궁상맞게 구세요. 찌질하게 찡찡대도 됩니다. 그것또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발걸음일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은 우리 궁상맞게 삽시다. 그것도 삶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