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제서품을 받은 다음날,
사목하고 있던 프랑스 본당에서 첫 미사를 거행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으로 그리던 미사 집전의 순간을 드디어 맞이한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사제서품을 받은 날 밤에 함께 사는 수도원 형제들과 오랜 시간 친교의 시간을 보내고 잠깐 성당에 들려 감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당장 내일 있을 첫 미사 때 어떻게 이 감사의 마음을 신자분들에게 전하고 하느님께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과 동시에 한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마음에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 6.45)'
그렇다. 나는 이 구절을 마음에 품고 그날 밤을 보냈다. 마음에 감사함이 넘치기 때문에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첫 미사를 봉헌하는 날 아침,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또다시 감실 앞에 앉았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제로서 맞이하는 첫날의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코 끝을 스치는 선선한 공기는 첫 미사를 앞둔 긴장된 마음을 살살 풀어주었다. 미사 시간은 10시였고, 미사에 참석할 신자분들이 천천히 성당에 들어오셨다. 프랑스 신자분들과 한국 신자분들이 섞여 모두 함께 성가를 부르며 미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도원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되어 함께 성당 제의실로 향했다. 천천히 제의를 입고 몇 분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냥 침묵의 시간을 음미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걸어온 여정, 그 여정 골목마다 함께 자리했던 하느님의 흔적, 그리고 우리 가족의 도움과 내가 알게 모르게 도움 받았던 수많은 지인들까지... 이 성당에 이 시간에 함께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으로나마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나는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성당에 입당 행렬을 하기 위해 수도원 형제들과 함께 문 앞에 서서 제대를 바라보는데, 아무런 긴장도 불안도 없었다. 나는 단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입당성가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나의 첫 미사는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프랑스 본당에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입당을 하면서 우리 가족이 첫 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많은 신자들의 미소가 보였다. 이 모든 장면은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고, 감정을 느끼는 모든 변화와 만남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이 계셨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나에게 주고 계셨다. 나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자 제대 위에 서있는 것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사와 모든 기도의 시작, 성호경. 이 성호경으로 첫 미사가 시작되었다. 첫 강론은 내가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한 삶의 이야기와 감사에 대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나의 서품 성구가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힘이시여 (시편 15.9)"인 만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갖고 있는 큰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고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성찬의 전례도 마치고 나서는 아버지를 제대 위로 모셔 한 말씀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따로 준비해 놓으신 멘트가 없어서 당황하신 눈치였지만, 마이크 앞에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메시지도 '감사'였다.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미사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열심히 이 길을 걸어온 아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메시지 안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첫 미사가 신자분들의 박수와 미소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한번 받은 사제의 인호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지울 수 없다. 평생 사제의 인호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삶. 나는 이 삶이 내 삶의 목표이자, 또 다른 시작점이었다. 또한, 이 삶의 중심에는 늘 '사랑'과 '감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떠한 십자가가 내 길 위에 놓아지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고통을 감수하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나도 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직접 걸어가리라.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앞으로 나의 삶, 나의 선택의 기준은, '사랑'이라고...
내가 사제서품을 받기까지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큰 사랑을 나도 본받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이 다짐은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사랑은 인간사에 많은 긍정과 부정을 낳는다. 이 양면성에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업적을 '신비'라고 부르듯이, 나의 삶도... 모든 사람들의 고유하고 소중한 삶들도 평범하지만 신비롭게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무료로 선물 받은 삶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의 표본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의 작은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 글을 빌어 나의 첫 미사에 참석해 주었던 모든 프랑스, 한국 신자분들 그리고 수도원 형제들, 기도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