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우리는 아니 나는 여태껏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흉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길을 잃었다. 가도 가도 그 사람들이 가던 길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골인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은 같을 수 없다. 같다고, 같아야 한다고, 그 지점에 나도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불안과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불안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기 위함일 것이다.
똑같은 골인 지점이 있다는 착각에 우리는 타인을 이기려 바삐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내가 먼저 죽어야 이 게임이 끝날 것처럼 기를 쓰고 달린다. 그래 내가 죽으면 이 게임은 끝난다. 하지만 나는 이 게임을 계속하고 싶고 남들보다 먼저 골을 넣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옆에 달리는 타인이 먼저 죽는다고 내 삶이, 내 골인 지점이 더 좋을 것도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나와 그의 골인 지점은 다르니까.
이사를 하며 책장에 책을 정리했다. 가져갈 것과 남길 것을 나누었다. 살아가면서 책은 많이 늘어났지만 그만큼의 지식이 지혜로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다. 소설이나 인문교양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
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책들이 더 많았다. 자기 계발, 마케팅, 컴퓨터 활용 등등.. 생활에 실질적으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책들이 즐비했다. 특히 자기 계발서들이 많았다. 그 책들은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지만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읽고 또 다른 어그로로 치장한 책이 나오면 또 구입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자기 계발서를 구입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저자의 이력이었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작가의 이력을 보지 않는다. 내 습관이다. 책을 다 읽고 무언가 마음에 쌓이면 그때 가서야 저자를 검색하고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을 구입한다. 요즘에는 자기 계발서를 사지고 읽지도 않으니 이력을 볼 필요도 없다. 한 때는 그랬다. 자기 계발서를 읽을 나이도 지났고.
내가 자기 계발서의 이력을 보는 이유는 이래 서였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성공한 사람이고 그 성공의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이 쓴 책에 신뢰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실패한 사람들이 쓴 책은 없을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실패한 사람들한테서 성공을 배울 수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에게 물었다. 있으면 사서 읽을래? 작가 이력부터 볼 텐데... 사업에 실패해 보았고, 연애에 쓴맛을 보았고, 자녀를 잘 못 키웠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아닐 것 같은데..
선입견도 무섭지만 이러한 불필요한 신뢰감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작가에 대한 신뢰감보다 나에 대한 신뢰가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책을 쓰지 못하는 것 또한 실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돈이 안되니까. 또 적자를 봐야 하잖아. 실패의 경험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지. 그렇지. 아..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그래서 팔리지 않을 실패담을 책으로 펴내도 실패한 이력이 될 수 없게 만들고 싶다.
자기 계발서의 내공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내 속에는 그때 읽은 그 책들에게서 얻은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다.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 실패할 수밖에. 좁은 틀에 들어가려니 내 살이 뜯기고 피가 날 수밖에. 그렇다고 그 사람과 같아지는 것도 아니데. 그럴 수도 없고.
책 제목은 '나처럼 살지 않으면..'이다. 중의적인 표현이다. 사람에 따라 뒤에 올 서술어가 달라질 테니까. 또 서술어에 따라 조건문인 '나처럼 살지 않으면'의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나의 길인지 타인의 길인지.. 나는 이렇게 책의 제목을 완성하고 싶다.
"나처럼 살지 않으면 실패한다."
소설과 에세이, 인문교양서적만을 남기고 모두 버렸다. 이삿짐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를 치장한 그리고 치장하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책장을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