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집

by HeartStory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다.


글을 쓰다 보면 어스름했던 지난 기억이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옛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 입안에 넣고 살살 녹여본다. 그 맛은 때로는 쌉싸름하고 달달하다. 기억마다 모두 다른 맛을 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맛은 또 달라진다. 감각의 진화와 퇴화가 진행하는 방향에 따라.

책을 읽다가 공감이 되는 문장을 보면 밑줄을 치거나 별도의 노트에 메모해 놓는다. 문장을 그대로 필사를 할 때도 있지만 문장으로 인해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나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한다.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서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밑줄만 그어 놓은 문장은 '여기다 밑줄은 왜 그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메모를 남긴 글은 그나마 이해는 가지만 공감이 안 될 때도 있다. 책의 내용은 변한 게 없지만 내가 변했기 때문일 테다. 그때 떠 올린 기억과 지금 떠오른 기억 속 진실은 변한 게 없다. 다만 기억을 편집하는 편집자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변했음을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에 반 평생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써 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설이 더 재미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나 작가의 입장에서나 모두 그렇다. 과거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쓴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다. 기억의 한 장면을 가지고 글을 쓰라고 하면 나는 소설을 택하겠다. 소설은 기억을 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이 좋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하지 못한 선택을 하고 그 길을 따라 걸어 볼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주는 상상이 좋다. 누구를 다치게 할 일도 없으며 때로는 스스로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수필 쓰는 게 두렵다. 특히 과거의 기억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기억은 주관적이다. 같은 기억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도 승자와 패자의 기록이 다른데 하물며 개인의 기억은 어떻겠는가? 기록조차도 없다면 더욱더.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의 책 <빅 퀘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기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기억의 편집. 미래는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는 과거의 기억을 편집하는 과정이다.


나를 견디게 하는 기억의 편집은 악마의 편집일까? 천사의 편집일까?



인용 : 수전 티베르기앵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중에서

이미지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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