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부여된 의무

by HeartStory
각성된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단 한 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해져서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헤세가 묻는다.

"너는 의무를 다하고 있니?"

나는 답한다.

"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찾고 싶은데요."


그랬다. 아니 그러고 있다. 의무를 이행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얼른 권리를 얻고자 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권리에도 의무가 따른다.

내가 지금 자신감을 잃고 존재감 마저 희미해져 가는 이유를 알겠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 존재감이라는 권리를 찾을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헤세가 말하는 ‘의무’는 사회적 계약의 의무와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을 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깊은 사색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의 문장을 곱씹어 본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유는 항상 어떤 ‘성과’나 ‘보상’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묻는다.
내가 바랐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나?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것으로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며 조금 더 편한 방법, 쉬운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성급한 갈증을 느낀다. 위선으로 타오르던 열망은 쉽게 식어 버린다.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고자 하는데서 기인한다. 그 일에 들인 노력이나 시간보다는 얻은 성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금 해보다가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또 찾아 나선다. 어찌 보면 여유라는 보완재가 없어서가 아닐까. 포기라는 단어는 조급한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의무는 때때로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그 의무는 더 이상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내 삶의 형식이자, 내 존재의 근거가 된다.

성과가 더디거나 보이지 않을 때, 시선은 흔들리고 고개는 앞이 아닌 좌우와 뒤쪽으로 향한다.


헤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태도'를 강조한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도, 그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나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를 조금씩 실현해내고 있을 것이다.


전방을 응시하며 가던 길을 더듬어 본다. 지금 가는 길이 유일한 나의 의무이자 권리임을 믿으며.



인용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사진 :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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