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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디앤디 Sep 26. 2024

용서

   요즘 들어 부쩍 그 아이가 기억이라는 저수지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돌에 묶어 저수지에 숨겨 버린 사체가 떠오르는 것처럼. 찾아야겠다. 그 아이를.


   취미로 시작한 사진을 인스타에 게시한 지는 1년이 다 되어 온다. 인스타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수면 위의 사람들은 모두가 물 위를 걷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을 카메라에 담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진들을 올린다. 나라는 사람을 숨긴 채로 말이다. 물론 페이스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 알았을까..

   인스타그램의 디엠이 온 건 2주 전이다.

   - 성남의 중원국민학교 다니지 않았나요?

   - 맞아요. 저를 아시는 분이신가요?

처음 디엠을 받아서 그랬을까. 아마도 내게 아니 내 사진에 관심이 있다는 반가움이 앞섰을 것이다. 별다른 의심 없이 답을 하고 보니 뭔가 석연하지 않다. 디엠을 보낸 사람의 인스타 계정을 들어가 본다. 게시물도 없다. ‘누굴까’라는 물음표만 남기고는 더 이상 디엠은 없었다. 계정도 함께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디엠 한 줄은 기억이라는 저수지의 물가로 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검색창에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을 검색해 본다. 이혼, 불륜, 증거수집, 비밀보장, 떼인 돈 받아 드림 등 갖가지 비도덕적인 단어들로 즐비한 광고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광고로 보이는 업체들의 목록 끝자락에 ‘찾아 드리는 서비스, 헤어진 가족, 친구, 동창’이라는 문구에 저절로 마우스의 화살표가 올라간다.

   전화기를 들고는 번호를 누른다. 마지막 번호까지 누르고는 통화 버튼에서 멈추었다.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괜히 여러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 찾아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그 아이도 원치 않는 일이라면.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니까 비밀리에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는 흥신소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저 살아는 있는지 어찌 살고 있는지만 확인하자. 다시 휴대폰을 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흥신소들은 대게 허름한 건물 2층이나 3층 정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익이 별로 없어서 임대료가 싼 건물을 찾아 사무실을 차렸거나 아니면 음지에서 일하는 것을 이런 식으로 티를 내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곳도 역시 낡은 건물 2층에 있었다. 벽 면에는 볼펜으로 그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갈라진 틈들이 보인다. 세월이 만든 틈을 무엇으로 메꿀 수 있을까. 저 벽면의 틈도 이 건물을 다시 짓지 않는 한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하겠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결국에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하는 여직원의 모습과는 달리 속내를 알 수 없는 시크한 표정의 탐정. 자신감이 빠진 도도함으로 치장한 건방짐이랄까. 탐정의 모습은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 도배를 했는지 베이지색 줄무늬의 실크 벽지가 계단을 올라오면서 빨라진 심박수를 누그러뜨렸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이 타인의 그늘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오셨나요?” 예의 바른 직원의 의례적인 질문.

   “누굴 좀 찾으려는데요. 2시에 예약한.. 조금 늦었네요.” 소장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 테이블로 안내한다.

   “이쪽에 앉으시죠. 워낙 노쇼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혹시나 했습니다.”

   “노쇼라는 게…” 나도 노쇼가 뭘 의미하는지 알지만 잘난 체 하는 소장의 허영심에 맞장구를 쳐준다.

   “아.. 예약을 하시고 오시지 않는 분들을 노쇼 한다고 하잖아요. 좋은 일로 이런 곳을 찾지는 않으시니 망설이는 게 당연하죠”

   “아 그렇군요. 저도 머뭇거리다 늦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시는데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려우신지?

   “이복동생이요. 어머니가 다른 동생.”

   “음.. 그러니까 배다른 동생을 찾으신다는 말씀이죠?”

   “네”

배다른 동생이라는 말이 왠지 귀에 거슬렸지만 비속어도 아니고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을 찾는 비용은 착수금 300만 원이고요. 찾으면 500만 원 더 주셔야 합니다. 기준은 한 달 기준이고요. 어떻게, 찾아 드려 볼까요?”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 경험이 많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불쑥 돈 얘기부터 하는 게 미덥지 않아 망설이는데, 연실 히죽 거리며 말을 잇는다.

   “이름만 아신다고요. 연락처도 없고, 생년월일도 모르고.. 친모도 모르고.. 정말 찾으시려는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그것도 50년 전의 사람을?”

   “그러니까 여기를 찾아왔죠.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찾을 수는 있겠어요?”

   “뭐 찾아는 보겠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조금 더 주시면 좋겠는데요. 언제쯤 어디에 살았다든가, 뭐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아실 만한 분들께 알아보시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텐데… 이거 가지고는 한 달이 아니라 1년이 지나도 찾기 어려워요.”

벌어진 어깨만큼이나 꽉 차 있던 자신감은 어디 가고 새가슴만 남은 듯하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다면 그냥 돌아서 나왔을 텐데 그래도 양심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일단은 일을 시작해 주시고요. 나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쓸 만한 정보가 있으면 알려 드리도록 할게요.”

   “우선 알고 계신다는 이름이랑 대략적인 나이가 어떻게 되죠?”

   “이름은 강주희, 나이는 48세에서 51세 정도요. 물론 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의 이름이고 나이는 좀 더 정확하게 알아내서 알려 드릴게요.”

   “솔직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확한 나이와 거주했던 장소 정도를 알게 되시면 그때 연락 주시고 착수금 입금해 주세요. 지금은 의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저희도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예, 이해합니다. 그러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누가 의뢰인인지 헷갈린다.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내가 이러고 있는지 나 조차도 이해가 안 간다.


   집에 돌아와 팔십이 다 된 노모가 차린 식탁에 마주 앉았다. 며느리가 차린 밥상을 한 번도 받아 보시지 못한 어머니. 당신의 선택을 속죄라도 하듯이 자식들의 행복이 당신의 의무라고 믿고 한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어가니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인지, 오늘따라 죄송스러운 마음에 더해 울컥해진다.

   “감자볶음 하셨네요. 맛있겠네요.”

몇 달 전부터 손이 떨려 당신 이름 석자도 삐뚤빼뚤 쓰시는 분이 채칼을 써도 될 것을 손수 칼로 채를 쳐서 만든 감자볶음이 어찌 맛이 없을까.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변함이 없다. 50년 넘게 맛보다는 정성이 깃든 음식이다.

   “햇감자가 나왔길래. 제철에 먹는 음식이 제일이지. 윤희네 보낼 것까지 샀으니까 시간 날 때 택배로 보내줘.”

   “윤희네까지 뭘 챙겨요. 감자가 지천일 춘천에 사는 애들한테.”

   “그래야 옥수수를 보낼 것 아니야. 윤희네가 보내는 찰옥수수 맛있더라”

당신도 딸이었고 며느리였고 여자면서 왜 자신이 낳은 딸한테까지 이렇게 계산적이신지. 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어도 지금까지 같이 살며 뒷바라지를 하셨을까?

   “오랜만에 윤희도 볼 겸. 주말에 다녀올게요.”

   “그럼 같이 가자.”

   “어.. 그게.. 동행이 있을 것 같아서…”

아차 싶었다. 같이 가자고 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윤희만 따로 만나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급한 데로 동행이 있을 거라고 둘러댄다.

   “여자냐? 여자면 내가 양보하고…”

   “더위 좀 가시면 밤 따러 같이 가세요.”

여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라는 더욱 할 수 없어 말을 돌린다. 아직도 50이 넘은 아들이 노총각으로 있는 것을 못내 서운해하시는 분이다. 굳이 사실도 아닌 한마디 대답에 괜한 실망감이나 기대감을 안겨 드릴 필요는 없다. 어머니에게 안겨 드려야 할 것은 며느리 일 테니.

   “그러지 뭐. 그런데 무슨 고민 있어? 잠을 못 자서 그런 거니 여름철이라 더위 때문에 그러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뭐.. 특별한 건 아닌데..” “….”

   “왜. 특별한 건 아닌데 왜, 말을 하다 말어.”

주희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했는데, 마침 구실을 찾아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선뜻 말이 떼 지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저 밑바닥에 잠가 놓았을 지난 시간들을 어찌 되감아 달라고 할까.

   “어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아버지가 주희를 찾더라고요..” 거짓말이라도 해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혹시 최근에 주희에 대해서 들으신 거나 알게 되신 거 있어요?”

   “기억할 일도 없고 기억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마음만 아프지 뭐. 근데 니 아버지는 왜 니 꿈속에 나와서 주희를 찾고 난리야. 죽을 때가 되었나. 뭐 나이가 들어가니 그럴 만도 한데 여직 뭐 하다가 이제서..”

   “아버지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제 꿈속에서 그랬구요. 그건 그렇고 윤희보다 한 두 살 아래라고 들은 것 같은데, 정확히 몇 년 생이예요?”

염려와는 달리 무덤덤한 어투라 괜한 기우였구나 싶었다. 물론 아버지라는 단어에 여전히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 인간’ 안 나오는 걸로 봐서는 아직은 괜찮다.

   “두 살 아래니까.. 윤희가 72년생이고, 그러면 74년생이겠네. 그래 그럴 거야. 그러고 보니까 벌써 50년이 지났네. 참 세월 빠르다. 어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으면 좋으련만..”

   “다른 거 뭐 기억나시는 건 없어요. 사진 이라던가 뭐 그런 게 있으면 더욱 좋구요”

   “사진 같은 게 뭐 있겠냐. 좋은 인연도 아니고. 사진이 있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애 낳고, 그러니까 주희를 낳고 얼마 안돼서였을 거야. 애를 업고 우리 집에 찾아왔더라. 그때는 그 인간이 아예 집을 나가서 살 때였지. 온 이유가. 참 어이가 없어서. 생활비 달라고 왔더라. 아니 서방까지 뺏어간 년이 애까지 달고 와서 돈을 달라는 게 정상이냐. 미친년이지. 그런데 더 미친년은 누군지 아냐. 나다. 내가 미친년이지. 돈 달란다고 생활비 모아둔 거 2만 원을 줬단다. 그때 2만 원이면 쌀 두 가마니를 살 수 있었어. 그 돈을 주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 인간도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그 인간’이 나올 때부터 긴장하며 물병을 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컵에 물을 따라 드리면서 흥분이 조금 가라앉길 기다렸다. 다행히도 금방 진정이 되신 건지 속에 있던 응어리가 터진 건지 3살짜리 아이가 말문이 트인 듯 계속 이어 나가신다.

   “그게 그 여자와 아이를 본 마지막이었어. 그래도 염치는 있었는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 인간은 돈 떨어지면 찾아왔지만.”

   “돈 떨어지면 찾아오는 그 인간을 받아 주었어요?”

   “그 무렵에는 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그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지. 너희 친할아버지가 차려주신 중국집을 꾸려가며 살았어. 머리에 든 것은 없고 겉 멋만 들어서 중국집 차리라고 주신 돈의 일부로 오토바이를 사서는 그걸 타고 밖으로 나돌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 여자 만나서 아이까지 낳게 만들고. 그 인간은. 지가 힘들여서 돈이라는 것을 벌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알기로는 평생을 그러고 살았으니까. 여하튼 그래서 악착같이 중국집을 하며 너희 삼촌 고모 학교 보내고 그랬어. 그 인간이 불쌍해서 줬겠니. 할아버지 생각해서 줬지.”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렇게라도 살아갈 힘이 나왔을까.. 어머니의 삶에는 당신이 존재했었던 때가 있었을까? 먹먹하다. 계속 이어 가시는 말씀이 희미해지다 주희라는 이름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그 인간이랑 이혼을 했지. 나중에 너희 큰고모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주희가 국민학교 입학을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야.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말문이 막히더라. 그 인간은 인간말종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년은 뭐냐고. 지 새끼 출생신고도 안 하는 년이 어딨 냐. 후~후우.”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화가 치밀어 올라오시는 걸 보니 그 당시에는 어땠을까 싶다. 물을 따라 드리는 내 손이 다 떨린다. 화도 났지만 출생신고가 안돼 있다는 말에 허무감이 아득히 밀려온다. 이제 어쩌지. 파묘를 해서 큰고모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머니의 흥분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이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묻는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그 국민학교가 있던 동네가 어딘지는 아세요?”

“아마 천호동일 거야. 큰고모한테 그렇게 들은 것 같다.”

다행이다.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주희의 생모를 찾으면 수월하지 않을까?

“혹시 그 여자 이름은 아세요. 주희 생모?”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성은 송 씨로 기억해. 그때 그 인간들을 간통죄로 고발을 하려고도 했는데 너희 큰외삼촌이 말리셨지. 그 애기는 또 어떡하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둘 다 감옥에 보내 버리고 주희를 데려와 키웠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첩의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드물기는 했어도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캐묻는 거 보니 찾아보려고 그러니?”

“…”

들키고 말았다.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한 거지. 대답을 머뭇 거리는 사이에 말씀을 이어 가신다.

“행여나 찾을 생각은 말아라. 생각에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늘 잘 헤아려서 살아온 네가 찾고자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때로는 수면 아래의 것은 그냥 그 아래에서 살게 해 두는 게 좋단다.”

“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감자 한 상자를 싣고 춘천으로 길을 잡았다. 광주를 지나 양평을 거쳐 가는 길을 택한다. 할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선산을 들러 갈 작정이다. 가끔 풀지 못할 문제를 가지고,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찾아가던 곳이다. 아무도 없는 산속의 무덤 앞에서 한껏 울고 나면 문제도 마음도 풀려 버렸던 곳. 산을 내려와 다시 얽힌 삶 속으로 오면 모두가 그대로였지만 공기는 달랐다. 같은 여름이라도 소나기가 내리기 전과 후의 공기가 다르듯이. 한차례 소낙비 퍼붓듯 울음을 쏟아내면 가슴속엔 빈 공간들이 늘어난다. 시원하게.

선산에서 내려와 물안개 공원을 걷는다. 팔당댐으로 저수지 아닌 저수지가 되어 버린 한강. 저 잔잔한 수면 밑에는 강제로 몰수되다시피 한 할아버지의 논이며 밭이 있다. 아마도 그 돈의 일부는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되었을 것이며, 중국집으로 바뀌었을 것이며, 내 삶의 밑천이었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텀블러에 내려온 커피를 마신다. 잔잔한 강물. 댐은 흐르는 강물을 가두어 호수를 만들었다. 평온한 수면에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이지 않는 댐은 내 생각마저 가두려 한다. 파장이 얼마나 굵고 멀리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파장 역시 소멸하고 말 것이다. 돌멩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파장을 남긴 채로. 그리고 수면 아래서든 위에서든 잔잔해지며 사라질 것이다.

조금 걷다 보이는 연꽃밭. 경안천과 북한강 줄기가 만나 만들어 낸 습지에 피어난 연꽃. 탁한 물을 먹고서는 어찌 저렇게 해맑고 고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좋은 것만 깨끗한 것만 먹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왜 이렇게 혼탁할까. 저 멀리 섬이 되어 버린 구릉은 알까.

한 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이 춘천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잘 지냈어? 웬일이래 오빠가 춘천까지.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그냥. 겸사겸사. 감자도 주고 옥수수도 받고.”

“내가 오빠를 몰라. 그냥은 아니고 겸사겸사는 맞는 거 같고. 그 겸사에 감자와 옥수수는 별식일 테고 특식은 따로 있지?”

“눈치는 여전하구나. 늙지 않는 거 하고.”

하긴 눈칫밥을 먹고 산 세월이 얼만데 그걸 눈치 못 채면 내 동생이 아니지. 너나 나나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이 만들어 낸 부산물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나마 아버지라는 인간이 동생에게만 물려준 유일한 것이 깨끗한 피부다. 그리고 위로 살짝 올라간 눈매는 쌍꺼풀이 져서 그런지 선한 기운이 살짝 감돈다. 거기까지만 아버지를 닮아 다행이다. 성격까지 닮았으면 지금까지 보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동생은 몇 년 전부터 아버지에게 용돈도 보내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아가 보기도 한다. 아들과 딸의 차이 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 무슨 일인데 먼 길을 행차하셨을까.. 우리 집에도 안 들어오고 밖에서 따로 보자고 하는데 내가 바보야.. 다른 뭔가가 있지 않고서야..”

“이제 와서 이런 거 묻는 게 좀 황당할 수도 있는데…”

“뭔데 뜸을 드려… 뭐 여자 문제야?”

어머니도 그렇지만 나에게 무슨 여자 문제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주희 기억하니?”

“그 여자 애? 기억하지. 그래도 핏줄이라면 핏줄인데. 그 애가 왜? 찾아왔어? 죽었데?”

우리는 50이 넘었는데 주희는 여전히 그 애로 남아 있다.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당연히 그럴 것이 그저 기억 속 아이로 잊혀 있었으니까. 또다시 그 아이를 꺼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싶다.

“찾아볼까 해서…”

“오빠 그 애를 왜 찾아? 찾아서 어쩌려고. 오빠가 찾아야 할 사람은 주희가 아니라 오빠가 사랑할 사람이야. 오빠를 보면 음식은 맛있게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사람은 좋은데 답답한 구석이 있다니까”

이렇게 나오는 것을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오빠인 나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 나에겐 주어진 숙제는 주희라는 배다른 동생을 찾는 일이다. 그 숙제를 풀고 싶어 밀어붙인다.

“맞아. 그래서 내가 사랑을 못하나 봐.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둘 중에 하나일 거야. 죽도록 사랑해서 죽거나 속 터져 죽거나. 한마디로 살 수가 없다는 거지. 그건 그렇고 아버지한테 뭐 들은 얘기는 없니?”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봐. 내가 아는 거나 오빠가 아는 거나 별반 차이 없을걸. 내가 아는 건. 아버지한테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가 하나 있다. 여자 아이다. 나 보다 두 살 정도 아래다. 이 정도. 이 정도는 오빠도 아는 얘기잖아?”

“그렇지. 그래도 네가 아버지랑 가까이 지내니까 혹시 해서. 그동안 아버지가 주희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는 거지? 찾아 보라던가, 슬쩍 운을 뗀다거나 한 적도 없고?”

“없어. 이제 와서 찾는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모르는 사람한테서 성남 중원국민학교 나오지 않았느냐는 메시지를 받고 난 후부터 계속 그 아이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하하하.. 오빠, 진짜 답 없다. 그 메시지를 주희와 연결을 지은 거야? 나 같으면 국민학교 시절 오빠를 짝사랑했다던가 아니면 첫사랑이 오빠를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했을 거 같은데. 그게 상식적인 거 아닌가? 왜, 로맨스를 스릴러로 몰고 가지. 오빠 지금 소설 써?”

누가 자기 인생을 공포물이나 스릴러로 쓰고 싶을까. 기왕이면 판타지나 로맨스코미디로 쓰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난 로맨스가 호러보다 더 무섭다. 아니 두렵다. 진짜 겁쟁이는 불행보다 행복을 더 두려워한다. 난 겁쟁이다. 그래서 스릴러로 가기로 하고 질문을 이어 간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계시니?”

15년 전 할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를 만날 일이 없어졌다.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연락도 일부러 피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도 오지 않고 가끔 윤희를 통해 소식을 듣곤 했다. 그것도 듣기 싫었지만 윤희는 한사코 소식을 전했다.

“답하기 곤란하면 얘기를 바꾼다니까. 엄마처럼. 한 가지만 답해주면 아버지 있는데 알려줄게.”

“뭐가 궁금한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중요한 거 아니면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야. 그냥 아버지 있는데 알려주지.”

“오빠는 왜 결혼을 안 해?”

“그게 질문이냐? 그게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거야?

“혹시나 성소수자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니까? 그런 이유도 있었고..”

“소설은 니가 쓰고 있구나.. 아주 코미디를 쓰지?”

함께 자란 시간들이 넉넉지 않았으니 당연히 서로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해할 만하다. 윤희는 조부모 슬하에서 자란 시간이 많았고 나는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니까. 거기에 둘 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을 충분히 받아 보지도 못했으니까.. 가장 아쉬운 건 어머니와 아버지랑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들이 아니라 윤희와 내가 따로 보낸 시간들이다. 나보다 더 어렸던 윤희가 보내야 했던 시간들 속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없었으니까.

“그게 왜 코미디야. 성소수자가 어때서?”

“차라리 성소수자라면 좋게. 요즘엔 성소수자도 결혼할 수 있지 않나? 결혼은 못한다고 해도 같이는 살잖아.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눌 수는 있잖아.”

“성소수자는 아니라고 치고 그럼 아버지 때문이야?”

“요즘 비혼이 대세라며.. 대세에 따르는 것뿐이야.”

“오빠가 뭐 20대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음… 난 두려웠고 지금도 두려워. 과연 내가 가정을 일궈 살아왔다면 처자식을 제대로 책임지고 살았을까? 또 다른 불행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싶어. 솔직히 자신이 없어.”

“역시 아버지 때문이구나..”

“아버지는 구실이나 핑계일 뿐이야. 네가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직장생활에 시집살이까지 견뎌내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고 어떨 때는 존경스럽기까지 한다니깐. 나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테니까. 물론 너도 그 안에서 불행과 행복을 모두 맛보았겠지만. 네가 짊어진 짐이 상상이 안돼.”

“그래서 오빠가 십자가를 등에 메려고 주희를 찾는 거야? 질 짐이 없어서?”

“교회 다니는 거 티 내냐? 십자가까지 나오고, 또 교회 다니라고 전도하려고 그러지.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내가 편하려고… 짐을 지는 게 아니고 짐을 벗으려고 그런다. 잘 살고 있는 거 알면 좋지 안 그래. 그냥 평범하게만 살아도 좋겠고.”

“다른 건 몰라도 오빠도 교회 다녔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목사라는 이유로 더 반감이 가겠지만. 그래도 아버지고 지난 일들을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이제 오빠도 아버지를 용서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사셔야 얼마나 더 사시겠어?”

과연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나 하나뿐일까? 목사가 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 것일까? 하나님은 아버지를 용서했을까? 아니 모두가 용서해도 난 용서가 안된다. 그리고 내게 아직 사과도 하지 않았다.

“용서는 내 몫이야. 얘기가 길어졌네. 이제 아버지 어디에 사는지 답할 차례야”

“아버지한테 물어본다고 주희를 찾을 수 있을까?”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지. 그리고 아버지 죽기 전에 한 번은 봐야지.”

“홍천에 있는 베드로기도원에 계셔.”

춘천의 남쪽이 홍천이니까 그리 멀지는 않다. 네비로 검색을 해보니 48킬로미터 정도 거리로 나온다. 지금 가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리다.

“그런데 너는 아버지를 용서한 것 같다. 나는 이해가 안 돼. 너는 결혼도 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도 책임을 다하고 있잖아. 그러면 가정을 지킨다는 것, 자식들을 양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자기 자신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 텐데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나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

“오빠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 마. 삶은 학문이 아니야. 문학이야. 소설 같은. 내게도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있어.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방법이 오빠와는 다를 뿐이야. 당연히 아이들 때문에 아플 때도 있고 엄마나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 하지만 아이들도 부모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의 인연이야. 그런 건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잖아.”

코 흘리게 윤희가 철학자 윤희가 되어 버렸다. 그 뒤에는 그만큼의 아픔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기에 더욱 가슴이 아리다. 뭉클하다 못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애써 농담으로 마무리한다.

“부처 나셨네.. 이만 가봐야겠다. 아버지한테 들렀다가 집으로 가려면 일어나야지.”

“절보다는 교회가 나을 거야. 교회 좀 나가라..”

“잘 지내. 추석에 보자.”

“엉 오빠도 잘 다녀가”



홍천강 강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달린다. 속도를 줄인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강변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것인지 즐기려는 것인지 모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도로의 오른쪽으로는 펜션과 민박집들이 우후죽순 솟아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즐거운 소리와 맛있는 냄새를 섞어 소소한 행복을 만들고 있었다. 문득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지리에 위치한 베드로기도원. 시골 동네의 작은 교회 정도 크기다. 아마도 예전에 교회로 쓰던 예배당을 기도원으로 개조한 듯하다. 그 옆에는 직원들의 숙소 겸 식당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별도의 건물이 있다. 예배당보다 커 보였다. 강가 도로에서 500미터 정도 들어가 있다. 뒤로는 빽빽이 소나무가 병풍을 치고 있다. 배산임수에 맑은 공기. 이런 데서 살면 수명이 10년은 족히 늘어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더 오래 살겠다 싶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가로 간다. 지나온 홍천강 줄기의 수심들은 낮아 보였는데 여기는 조금 깊어 보인다. ‘익사사고 발생지점’이라는 경고 푯말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하지만 나에게 용서를 빌면 어떡하지.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울며불며 사죄를 하면 받아들일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그런데 왜 내가 겁을 내고 있지.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나는 피해자라고. 들어가자.

안내와 접수를 겸하는 데스크에서 강신호 목사를 찾는다. 기도원이라는 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일반 교회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옛날 시골 교회 같은 느낌이지만 예배용 탁자 같은 것은 없고 방석들이 바닥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나만 신도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함에 두리번 거린다. 신도인지 직원이지 모를 몇몇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중에 한 여자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살짝 위로 올라간 눈매에 쌍꺼풀로 커 보이는 눈. 살이 조금 붙었을 때의 윤희 모습이다.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로워 보였고 나이는 윤희보다 조금 더 들어 보였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가 이내 지나가 버렸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을 따라 목사 사무실로 갔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문을 연다.

“아들 왔니?”

마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말하듯 한다. 당황스럽다. 얼굴을 본 지 15년이 지났다. 그렇다. 만나도 말을 섞지 않았다. 당신은 내 아버지로서 자격을 잃었으니까. 내가 답해야 할 의무도 없고 예의를 갖출 만한 일말의 정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여기에 온 목적은 따로 있다. 아버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고 주희를 찾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 온 것이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워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나를 다 찾아오고.”

“바쁘신데 얼른 용건만 말씀드리고 갈게요.”

“그 날 선 말본새 하고는 나이가 들어도 달라진 게 없어. 그래 용건이 뭐냐?”

날을 갈다 갈다 이제는 칼 등만 남았다는 걸 아는지 사뭇 여유가 있다. 비꼬는 듯한 당신의 말투도 여전하고.

“주희는 어떻게 지내는지 아세요?”

“찾아오지도 않는 걸 보면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뭐. 왜 너를 찾아갔던?”

아버지가 할 소리인가. 버린 게 맞는구나. 나도 윤희도 그리고 주희도 버렸구나. 버린 자식을 부모가 찾을 이유는 없으니, 버린다는 것은 이미 찾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찾으려면 버려진 자식이 찾아야지. 그런 논리구나. 어처구니가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다. 외국으로 입양 보내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들을 찾는 게 이제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가슴속 불덩어리가 욕지거리로 변해 꿈틀 거린다.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할아버지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처음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선거자금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아버지. 그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못 해준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씩씩 거리며 나가던 아버지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욕을. 그때 할아버지의 손이 날아와 내 입을 막았다.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같지 않아도 내가 한 행동은 할아버지 눈에는 폐륜으로 보였다.


아직은 감정이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

“찾아보려고요.”

“니가 왜 주희를 찾어. 니가 뭐라고. 뭘 어떻게 하겠다고 찾어.”

“그럼 아버지가 찾으시던지요.”

“내가 왜 갤 찾아.”

지금까지도 주희를 아버지의 치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국회의원에 낙선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잖아요. 윤희, 주희, 저 모두 아버지 자식들 아닌가요? 낳았으면 책임져야죠. 싸질러만 놓고 나 몰라라 했잖아요. 그래 놓고는 어느 누구한테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한 마디 하신 적 있으세요. 없잖아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목사가 된 거다. 하나님께 다 용서를 구했다.”

“우리에게 구할 용서를 하나님한테 빌었다구요. 그래서 목사가 된 것을 하나님이 용서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설마. 그런 거예요.”

“그래 난 구원받았다.”

어이가 없다. 목사가 되셨다고 해서 달라진 줄 알았다. 기대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50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당신이 이겼다.

“책임감이 없으니 죄책감은 더욱 있을 리 없고 자기 죄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찌 사과를 바랄까요. 그렇게 편히 사시다가 가세요. 너무 오래 살지는 마시구요. 아 그리고 다른 목사님들은 모르겠지만 당신 입에서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는 역겹네요.”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고 피해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당신은 지옥을 만들어 놓고 그 지옥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당신 손을 잡으라고 한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높아진 언성은 기도원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리로 흩어진다. 그 여인이 또 보였지만 삭이지 못한 분을 안고 잰걸음으로 기도원을 나선다.


액셀을 밟는다. 이 공간을 가급적 빨리 벗어나고 싶다. 검게 그을린 구름은 비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행락객들도 서둘러 짐을 챙긴다. 비를 피하며 즐거움을 잠시 접어 두는 것조차 부러워 보였다. 비바람에 망가진 파라솔이 나뒹군다. 다시 접을 수도 펼 수도 없겠지. 버려야겠지.



열흘이 지나 흥신소에서 연락이 왔다. 그 아이, 배다른 동생을 찾았다는. 주희는 홍천 읍내 재가복지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홍천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아버지도 주희도 흔적이 없다.


다시 모든 것들이 수면 아래로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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