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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20. 2024

취향을 존중하는 느슨한 관계

TV에서 처음 야후(yahoo) 광고를 봤을 때 ‘뭐지?’ 갸우뚱했다. 뭘 선전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다음(daum)도 마찬가지였다. 두 회사 광고의 정체를 어렴풋이 이해할 때쯤 봤던 광고가 지금도 기억난다. 야후인지 다음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뚱뚱하고 우락부락한 남자가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함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매개가 만화, 더구나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내용으로, 남자가 남몰래 흘린 눈물은 순정만화를 보느라 그랬다는 반전이 있는 광고였다. 남들은 “남자가 순정만화라니!” 하며 한심한 사람 취급하지만, 그 취향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만나 자존감을 키운다는 내용이 그 당시 내게 충격을 줬다. 취미, 취향을 나이와 성별에 따라 사회가 획일적으로, 일방적으로 구분 짓던 때다. 인형은 어린애 때나 좋아하는 것이라거나 순정만화는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로맨스 소설은 통속소설이라고 치부하여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 등. 그런데 성인 남자가 순정만화를 좋아하고 그런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광고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놀라움이 곧바로 인터넷 이용자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뭔가 진입장벽이 느껴졌다. 지금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변하는 세태를 빨리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막차를 타지는 않는다. 뒤처지는 건 싫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후에 수용하는, 안전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재테크도 가능하면 원금 보장을 선호한다.     


공연을 마치면 항상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공연 참가자뿐만 아니라 단원들이 다 같이 모여 서로 소회를 말하고 연습 과정에 생겼던 갈등을 봉합하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던 끝에 한 단원이 극단 생활하는 이유를 ‘느슨한 연대’가 좋아서라고 했다. 그 단어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아! 그래서 이 극단 사람들의 익숙한 듯 친하지 않은 어색함이 불편하진 않았던 이유가 이거구나!'라는 깨달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가 추구하는 관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원들과 공연을 위해 모였다 흩어졌다가를 반복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의외로 삶의 활력과 신선함을 준다. 마치 매일 밥을 먹다가 색다른 음식을 먹듯이. 희곡 읽기로 작품을 토론하고, 단체관람으로 관극평을 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배운다. 살아온 환경과 배경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다른 관점을 듣게 된다. 연극이 아니었다면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었을까. 공연을 준비하게 되면 수개월 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다. 당연히 친해진다. 사적으로 친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연극이라는 공통 관심사에 머문다. 사람에게 집중하기보다 서로의 관심사에 집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심사를 나누는 사람 중에는 본명이 아니라 부캐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본명을 밝히지 않는 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도 않다. PC통신 동호회 활동부터 아이디로 소통했기에 다른 사람이 부캐로 활동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나처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아주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키는 사람도 있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어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취향 맞는 사람끼리 만나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얘기하는 일은 일로 만난 사람들과 나눌 수 없고 가족, 친한 친구와도 나눌 수 없는 제3의 영역이다. 일과 관련된 공적인 관계가 아니므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일 얘기를 할 필요 없고, 일터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떠오르지 않아 기분전환 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 험담, 하소연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대개 그 행위는 스트레스가 풀리기보다 더 쌓이게 만든다. 언뜻 그 순간에는 풀리는 것 같지만 뒤돌아서면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가족에게 느끼는 애증의 감정을 나누지 않아 평화롭다. 친구에게 때때로 느끼는 유치하고 치사하며 서운했던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좋아하는 것을 얘기한다. 필요할 때 만나고 헤어진다. 그렇다고 일회성 만남은 아니다. 꾸준히 몇 년간 아는 사이가 되면, 속 마음을 좀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서로 죽고 못 사는 친밀한 관계로는 아니다. 아주 친밀하지도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관계. 사적인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관계. 부담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 내게 취미는 그런 관계를 만나고 유지하는 것으로 쉼을 준다.      


직장 후배 미영도 독서 모임에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하면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독서’라는 공통 관심 분야로 만난다. 또 다른 직장 후배는 차(tea), 다도를 배우는 사람들과 차밭을 다니고 차 전문 카페 정보를 교환한다.      


나이 들수록, 남편과 자식 없는 나 같은 혼자는 더욱, 나만의 삶을 외롭지 않게 꾸려갈 필요가 있다. 덩그러니 혼자 남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기운을 불러일으켜 주는 일. 그게 취미가 아닐까 싶다. 생계를 위한 일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생활의 만족, 내가 잘살고 있다는 충족감을 주는 것. 그 취미로 연결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소속감을 느끼되 푹 빠지지는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는 일.


무언가를 배우고 시작하기에 오십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분야에 대해 쌓이는 나만의 경험치가 있고 그 경험치가 능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과 연극이 점점 좋아지고 관심이 더 커지고, 그것으로 뭔가를 해볼까 궁리하게 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일이 있는 한, 어느 날 이 세상에 혼자 툭 떨어진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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