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전, 사람들이 MBTI를 잘 모르던 시절에 지인인 아영의 집에 강사를 초빙하여 함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아영이 우연한 기회에 MBTI를 알게 되었는데 같이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관심 있는 사람을 모았다. 나는 친구 은수가 불러서 갔는데 그 당시 은수는 아영과 같은 직장 동료였다. 그 집에 은수와 아영의 직장 동료인 은희 언니,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성혜, 나 이렇게 모였던 것 같다. 검사비를 내고 수백 문항에 달하는 질문에 답을 했는데 결과는 INTP였다. 우리나라에 잘 없는 유형이라는 말에 괜히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다. 남과 다르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MBTI가 유행하며 너도, 나도 어떤 유형인지 물어본다. 인터넷에 무료로 떠도는 검사, 회사에서 지원한 비용으로 검사해 본 결과는 매번 다르게 나온다. INFJ, INTJ, INTP 등으로. 어떤 유형을 읽든 모두 내 얘기 같다. 어떤 사람은 일할 때와 놀 때 마음 상태가 달라서 결과가 다른 것이라고 한다. 어떤 상태든 변하지 않는 건 IN인데, 나 자신도 확신하는 건 내향적이라는 거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후천적으로 사회성이 길러진 탓에, 일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내향적"이라는데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하고, 먼저 말 걸고 사람들 앞에서 곧잘 말하기 때문에 회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무척 외향적인 사람으로 본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 온 에너지를 쏟고 난 후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다. 말하고 싶지 않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다 씻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중 낮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톡, 문자, 전화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하지만 퇴근 후, 주말에는 모든 걸 잊는다. 친구가 낮에 보낸 카카오톡이나 문자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경우 퇴근 후라도 연락하면 되는데 잊을 때가 많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기억해 내고 늦은 답을 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종종 무심하다고 했다.
모임이 여럿 있다. 대학 동창 모임, 첫 직장 입사 동기 모임, 일하다 만나 친해진 모임, 업계 친구의 친구와 함께하는 모임 등. 그 모임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다. 모임의 특정 누군가와 더 친한 관계는 분명 있다. 그렇다고 절친인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절친은 자주 연락하고 약속 없이 갑자기 만날 수 있고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의에 딱 맞는 친한 친구 경미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 후 절친은 그 당시 그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힘들 때 하소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은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시간대가 맞아 만날 수 있는 친구였다. 일하면서 알게 된 은수는 동갑이다. 은수는 자기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서로 소개한 뒤 다 같이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이다. 극 내향인 나는 그런 자리가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을 한, 두 번 보게 되자 아는 사람이 되었고 불편하지 않게 되자 모임 구성원이 되고 때로 절친이 되기도 했다. 은수 중학교 동창 민정이가 그렇다. 은수가 결혼하면서 나와 더 자주 만났다. 둘이 같이 여행을 여러 번 갔다. 그렇다고 자주 만나지 않았다. 몇 개월에 한 번씩. 그래도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20년 전에 만났던 은수의 업계 친구 성혜는 동병상련으로 태국 여행을 함께 했다. 내가 실연으로 힘들었을 때 성혜는 이혼으로 힘들었다. 그때 아픈 시기를 서로 옆에 있어 주는 것으로 위안이 되었다.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다르지만, 크게 보면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하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현재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는 일이 창피하고 부끄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친구들은 모두 절친이다. 원래도 내 공간, 내 영역에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단짝 친구는 없었다. 대학 동창이든, 첫 직장 입사 동기들이든 함께 놀러 가고 속내를 말해도 어디든 함께 가고 무엇이든 함께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거리 두는 내 모습을 보고 첫 직장 입사 동기인 정인이는 나를 "서울깍쟁이"라고 했다. 좀 차갑다고 했다.
거리를 일정하게 두는 관계. 난 이런 관계가 좋다.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끼리 친밀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소속된 느낌은 중요하지만, 그 소속감을 위해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는데도 대충 이해하며 눈 감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갈등하고 미워하며 지내고 싶지도 않다. 딱 붙어 있으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기 어렵고 자율성보다 통제하려는 경향이 크다. 왜냐하면 상대방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 성향, 취향을 죽이고 마지못해 동의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친하다고 내 주장을 더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가 변할 것을 강요한다. 내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을 쉽게 얘기한다. ‘친하니까’, ‘편하니까’라고 합리화하면서. 한발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나는 또한 울타리 밖의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 소외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편 가르기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전을 불러온다. 혈연, 학연, 지연이 다 그렇다. 연결망이 필요하지만, 울타리로 그 연결망을 구획하여 단절시킬 필요는 없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되, 마음은 충분히 가까운 촘촘한 연결망을 유지하고 싶다.
오래된 친구들은 그래서 더 좋다. 이미 알고 지낸 시간으로 어렸을 때처럼 달라붙지(?) 않는다. 이제는 내게 무심하다거나 냉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월이 쌓인 만큼 약속 시간에 늦게 오는 친구의 사정을 이해한다. 이번 정기모임에서 못 만나는 친구는 다음 정기모임에서 만나면 된다. 모일 때마다 모든 구성원이 모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생일을 챙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섭섭하지 않다. 때때로 카톡에 뜬 생일 표시를 보고 친구에게 케이크, 과일 등을 보낸다. 그거로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올해 내가 선물했다고 내년에 돌려받을 생각을 안 한다. 친구도 그렇다.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나에게 다시 꼭 생일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 슬픈 일을 겪으면 슬픈 대로 기쁜 일을 겪으면 기쁜 대로 소식을 전하며 산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슬프고 기뻤던 일을 한참 후에 전하기도 한다. 때로 서운하지만, 의 상할 정도는 아니다. 그 순간 친구를 위로해 줄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그거로 족하다. 어떤 해에는 자주 만나고 어떤 해에는 일 년에 한 번 보며 지낸다. 어느 날엔 엊그제 만난 줄 알았는데 그게 1년 전, 심지어는 수년 전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고는 한다.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 어떤 때는 그 빠른 흐름 때문에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좋다. 오랜만에 만나면 할 말이 없어 어색하다는 얘기는 어렸을 적 얘기다. 나이 들면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침묵의 공백시간이 없다. 게다가 서로 자기 말을 먼저 하느라 상대방 말을 놓칠 때가 부지기수다. 나이 든 사람의 특징이다. 그래도 대화는 물 흐르듯 잘 흘러간다.